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피 지망생 Jan 14. 2023

난 이거면 됐다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12 - 엉또 폭포, 월평 바닷가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까?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고 '해도 되는 일'의 목록은 무한에 가까운 유일한 시기. (살면 살수록 '해도 되는 일'은 줄어들고 '해야 할 일'은 늘어갈 것이다) 뒤집기, 옹알이, 목 가누기, 가끔씩 한번 씨익 웃어주기... 그땐 사소한 몸짓 하나만으로도 내 곁에 있는 모두를 웃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됐다. 부모라는 절대자가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날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재워주었기에 나는 달리 할 게 없었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또 뭐가 행복일까?

다만 그땐 그게 행복인지 몰랐을 뿐. 마땅히 행복해야 할 어린 시절마저 피 터지는 경쟁 체제에 강제 편입되어 인생 '제1의 전성기'마저 빼앗겨버린 대한민국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눈에 밟힐 뿐.

  

다행히 나는 어린 시절 말고도 '제2의 전성기'라 할만한 시기를 두어 번 더 보냈다. 첫 번째 제2의 전성기는 대학 시절이었다. 5교시 수업을 듣다가 옆 친구와 눈이 맞으면 학교 뒷산에서 맥주 한잔하고 7교시에 들어와도 되었던(심지어 학교 뒷산이 별도봉이었다), 수업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으면 수업을 시원하게 째버리던, 덕분에 학점이 선동렬의 전성기 방어율에 가까워지던 그때, 나의 절친도 옆 대학에서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말에 뭐 하냐? 내가 기막힌 곳을 하나 발견했는데 같이 가볼래?"

"당근이지. 내 친구들 데리고 가도 되지?"

"당근빠따쓰리쿠션(당시 유행어)"


약속 당일, 친구는 아버지가 농사용으로 쓰던 트럭을 끌고 왔는데 하필 앞자리가 2인승이었다. 처음 보는 친구를 조수석에 태워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없었기에 별 수 없이 내가 데리고 온 친구 둘을 트럭 뒤 짐칸에 실어야 했다.

"미안하다. 너네 둘은 여기 타야겠다"

친구 둘이 재밌겠다는 표정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라 사진은 찍지 못했다. 대충 요런 느낌이었다.


트럭은 설렘 셋을 싣고 우리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연식이 20년도 넘은 트럭에는 완충 장치가 없어서 나는 허리로, 뒤에 실린 친구 둘은 온몸으로 충격을 흡수해야 했지만,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뒤에 탄 두 친구도 지금 이 순간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뒤에 실린 둘 중 한 명은 당시 내가 눈여겨보던 여자 동기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잠시 후 트럭은 좁은 골목길에 멈춰 섰다.

"다 내려. 여기서부터는 길이 없으니까 조심해서 따라와야 해"


이때부터 장르가 로맨스에서 코미디로 바뀌었다. 친구 말대로 진짜로 길이 없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길도 안좋았다. 흙탕물에 발이 빠지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풀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고, 모두의 옷에 흙탕물이 튕기고, 이 여행을 설계한 내 얼굴은 굳어져가고... 잠시 후 도착한 목적지에 기대를 뛰어너는 장엄한 경관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행히 장르를 코미디에서 판타지 어드벤처물로 바꿀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온 다음에만 폭포가 됨

Keane의 「somewhere only we know」의 가사와 멜로디가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I walked across an empty land

나는 텅 빈 땅을 걸었지

I knew the pathway like the back of my hand

어디로 가야 할지 손에 쓰여 있는 듯 잘 알았지

I felt the earth benethe the my feet

내 발 밑의 땅을 느끼며

Sat by the river and it made me complete

강가에 앉았을 땐 영혼이 가득 차는 기분이었어

- Keane, 「somewhere only we know」 중


우리가 도착한 그곳의 이름은 엉또폭포였다. 그땐 몰랐지만 이곳은 훗날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이 곳에서 미션을 수행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나무 데크가 깔리고, 길이 편해지니 사람들이 더 몰리고, 큰 비가 내린 다음 날엔 입구부터 차가 막혀 주차 전쟁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첫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그날 이후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들리곤 했지만 사람들이 몰린 다음부터는 애써 찾지 않게 됐다.


엉또 폭포, 황우지 해안, 구두미 포구, 대평 마을... 시간이 흐르고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발명하고 모두가 손에 검색이 가능한 초소형 컴퓨터를 쥐게 되면서 나의 'Somewhere only we know' 리스트는 점점 가짓수를 줄여갔다. 나는 보다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마음 쉬고 싶을 때마다 편히 쉴 수 있는, 반경 수백 미터 내에 인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무장지대를 찾아서.


세월이 흐르며 그런 곳을 몇 군데 더 찾아냈다. 월평 바닷가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이다. 그곳에서 보이는 바다가 남태평양이라는 건, 때문에 언젠가는 이 앞을 지나가는 돌고레 떼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는 건 분명 선물 같은 일이다. 일몰, 적당한 BGM, 캔 맥주 하나. TPO(Time, Place, Occasion) 삼박자의 완벽한 조화! 여기서만큼은 더 바랄 게 없다.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그래, 이거면 됐지 뭐. 난 이거면 됐다.


이전 15화 우연의 일치, 자연의 이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