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저녁에 술 안주하기 좋은 반찬이 나와서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갈 때도, 간만에 모임이 있어서 룰루랄라 회식 장소로 걸어가는 중에도, 서쪽 하늘을 한 번은 바라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는 행위만으로도 나는 금세 행복해진다. 이보다 '소요되는 에너지 대비 큰 행복감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그날도 그랬다. 클린하우스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무심코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와아...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손이 갔다. 이건 찍어야 해!찍자마자 뜬잡모(뜬구름 잡는 모임)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지금 당장 서쪽 하늘을 바라보라는 지령(?)과 함께.
뜬잡모. 영국에 현재의 구름 사진을 회원들 각자 위치에서 찍어 실시간 공유하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비밀리에 결성한 단체다. 잠시 후 제주 각지에 퍼져있는 요원들로부터 현재 위치 하늘의 동향을 보고하는 사진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사진 잘 받았음ㅋㅋㅋ 요원들 각자 생계 일선으로 복귀 요망. 앞으로도 하늘에 이상동향 발견 즉시 단톡방에 신고 바람. 이상'
무던하고 지루한 일상이라는 벽에 기분 좋은 균열을 일으켰던작당모의는 그렇게 심심하게 끝났다. 하지만 나는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황홀은 매일 저녁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선물을 예쁘게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포장한 선물은 내 마음 속 서랍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넣어뒀다. 일상이 지루하고 무료해질때마다 바로 꺼내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