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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ug 26. 2022

뜬구름 잡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8 - 속골

재작년캠핑카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의 자유가 제한 그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자유는 무한 확장되었다. 퇴근하고 캠핑카로 돌아오면, 책 보고 밥 해 먹고 산책하고 넷플릭스 보고... 이런 소소한 행복들이 물처럼 솟아났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게 의외로 몇 안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 행복도 별 게 아니더라.


다만 '매일 이사 다니면서 여행하듯 살자'던 처음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긴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잘못이 아니라 속골 잘못이다. 속골이 캠핑카 정박지로 너무 환상적인 장소였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장소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 거다.



속골은 밴 라이프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일단 사람이 별로 없었고 바다와 범섬이 보였다. 시냇물 소리가 24시간 내내 ASMR로 깔렸고 개수대에서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었다. 화장실이 있었고 심지어 와이파이도 터졌다. 이 모든 게 갖춰진 곳은 속골이 유일했다.


속골의 바다는 다른 바다와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야자수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고, 앞바다 앉기 좋은 바위들 의자를 대신했다. 시야이 뻥 뚫려 있어서 구름과 노을을 감상하기에도 금상첨화였다. 자연스럽게 일몰 시간은 산책 시간이 되었다.


산책 시간은 뜬구름 잡는 시간이었다. 걷다가 쉬고 싶으면 아무 데나 걸터앉아 뜬구름을 한없이 바라봤다. 누군가 그때의 나를 보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뜬구름 잡고 앉아있네.


그러고 보면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뜬구름 잡는 사람이었.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상상 속에서라도 꿈꿨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내 세대에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올 거라고 말했다. 남들이 이유도 모르고 바쁘게 달릴 때 나 혼자 뜬구름 잡으며 천천히 걷는 느낌은  든든했다. 물론 뜬구름을 실제로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손에 쥔 건 없었지만, 나는 양손에 재미와 의미, 이 둘만 쥐고 있으면 되는 사람이기에 뜬구름 잡는다는 표현이 나쁘게 들리지 않았.


영국에는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하루 종일 뜬구름을 관찰하고 구름의 모양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모임이 있다고 다. 모임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지만 이런 모임이라면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모임 이름은 '뜬구름 잡고 앉아있는 모임'


서로 얼굴도 안 본 사람들이 SNS에서 만나 이러고 노는 거다.

"지금 서귀포 지역의 북서쪽 하늘을 보세요. 새털구름이 예쁘게 떴어요"     

"지금 부산 남포동 지역의 남동쪽 하늘을 보세요. 솜사탕이 수백만 개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다가 OECD 평균 노동시간 2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낮 시간에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닿자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참고로 1위는 멕시코다. 현재 멕시코에는 '하루 6시간 근로제' 도입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이 다시 1등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이런 건 1등 하지 말자. 제발) 그래도 끝 뜬구름 잡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잡고 있는 지금 뜬구름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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