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연이라는 단어는 세상에 필요 없는 단어였을 수도 있다. 세상에 우연 아닌 게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경우의 수는 한 가지인 반면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음을 떠올리면 그렇다.
나와 어느 그네와의 만남도 그랬다. 그날 나는 '행기소 습지'를 찾고 있었다. 지난해 겨울에 찾았던 습지는 겨울철적은 강수량 때문에 물이 메말라있었고, 나는 물이 가득 찬 행기소 습지를 보기 위해 폭우가 쏟아진 며칠 후그곳을 다시 찾은 터였다. 그런데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오름을 반대편으로 삥 돌아가면 그곳에 닿을 수 있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반드시 현위치에서 길을 찾아야만 했다.
작년 겨울, 행기소 습지. 내가 찾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덤불이 모든 길을 덮어버려 도저히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나처럼 이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꺼내 '행기소'를 검색했다. 검색된 이미지 중 낯선 그네가 눈길을 끌었다. 행기소 그네? 여긴 어디지? 오늘 습지를 찾아가는 건 시간상 무리인 것 같고 여기나 가볼까? 다행히 습지와 멀지 않은 곳에 그네가 있었다. 목적지 공략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네는 습지로부터 몇 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행기소라는 물 웅덩이를 찾아가봤더니 실제로 그네가 있었다.
그네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무 판때기 하나와 밧줄을 엮어 만든, 만듦새가 좋은 그네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찾지도 않을 이곳에 애써 그네를 설치한 마음이 예뻐서 기분 좋게 마음에 담았다. 다음에 올 땐 딸을 저기에 태워야지.
그네가 있던 곳 입구에는 이곳이 행기소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행기소라 불렀다고 나와있었다. 그렇다면'행기소 습지'는?이건 정식 명칭이 아닌 듯하다. 어디서도 행기소 습지의 이름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행기소 습지라는 이름은 누가 처음 지은 걸까?누군가 우연히 발견한 습지의 이름을 지으려다 근처에 있는 행기소가 떠올라 행기소 습지라 이름 붙였고 이게널리 알려진 건 아닐까?
어쨌든 누군가가 이곳을 행기소 습지라 부른 덕분에 내가 이 그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내가 아는 한, 후회라는 감정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후회라는 감정도 지금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해지기에.날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모든 우연에도 새삼 감사인사를 전한다.그 모든 우연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