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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r 10. 2024

그때 그 가사가 들렸고, 나는... 울었다

<가시나무>- 조성모

*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앞두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서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을 잡고, 다시 글을 써보려 합니다.

** 아래 글은 작년 이맘때쯤 아내에게 썼던 손 편지를 편집해 현 시점에 맞게 재구성한 글입니다.


다쓰고 보니 9장 ㄷㄷ


뭐 때문에 싸웠더라?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이유로 너와 다투고는 세 시간을 내리 걸었던 그날, 겨울바람이 어찌나 시리던지. 다행히 외투에 후드가 달려있어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냅따 바닷가를 향해 걸었지. 이런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그 와중에 이어폰을 챙긴 건 신의 한 수였어. 파도 소리가 지겨워질 만하면 슬픈 음악 틀어놓고 걷는 거야. 마음의 얼룩이 모두 씻겨내릴 때까지. 나만의 씻김굿 같은 루틴이지. 


그나저나 오늘은 뭘 들으면서 걸을까? 때마침 읽던 책에서 추천한 노래가 생각나서 첫 곡으로 선곡했어.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캬~ 역시 명곡은 언제 들어도 좋더라. 한곡 반복재생으로 듣다 보니 다른 가수가 부른 버전이 듣고 싶어졌어. 검색했더니 조성모의 리메이크 버전이 뜨더라? 어쩐지...


대학교 때 이 앨범 진짜 질리도록 들었었는데... 앨범 전곡이 다시 듣고 싶어져서 전체 재생을 눌렀어. 그땐 몰랐지. 이 앨범의 첫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가시나무], 조성모  (원곡 : 시인과 촌장)



내 나이 스물 들리지도 않던 가사가 어쩜 이리 콕콕 박히던지. 듣다 보니 너무 내 얘기 같은 거 있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쉴 곳 없는 너. 너한테 잘해주고 싶은데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그러나 절대 이길 수는 없는) 슬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시가 되어 온 몸을 찔러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지 뭐. 울면서 걷는 건 아닌것 같아서 눈물을 참아보려했는데 다음 가사에서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더라.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어린 새. 그 새가 우리 단비, 다온이처럼 느껴졌던 게지. 우리 둘이야 싸워도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죄야? 일 년에 이런 날이 며칠 되겠냐마는, 단비, 다온이는 그저 쉴 곳 찾아 날아온 어린 새들일 뿐인데... 어린 새들이 괜히 우리 가시에 찔려 아파하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더라. 나이 마흔 넘어서 무슨 청승이냐 하겠지만 그냥 요즘 내 마음이 그래. 요즘은 눈물샘의 수도꼭지를 반쯤은 열고 사는 같아. 하필 노래가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버렸을 뿐.


이제 내 마음이 왜 가시나무 숲이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해 볼게. 아마도 넌 이게 제일 궁금할 테니까. 술 김에 간만에 편지 쓰고 있다만, 결혼기념일에 쓰려던 연애편지가 이런 편지가 되어버려 매우 유감이다만, 이렇게 손 편지 세장째 이어갈 수 있는 남편 많지 않다?ㅋㅋ (앞으로 몇 장이 될지 모른다는 게 함정) 벌써 맥주 2캔, 예거밤 1병째. 현재 시각 AM 01:55. 이왕 시작한 거 갈 때까지 가보자.


너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좀 불안하잖아?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제2의 삶시작한다는 건 둘 중 하나지. 생각이 없거나, 무모하거나. 더군다나 행위의 주체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면 더더욱. 나라고 불안하지 않겠어? 그래서 다들 말리는 거 나도 알아. 요즘엔 직장 동료들도 다들 나를 말려. 여기가 전쟁터라면 바깥은 지옥이라고, 나 같은 사람이 남아서 현실을 바꿔야 된다고, 세상에 그만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이것도 다 한때 지나가는 마음이라고... 막상 주변에서 날 걱정해 주는 사람들 보면 인생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내심 뿌듯하긴 한데, 날 걱정하며 툭툭 던지는 그 말들이 진심이라 나또한 진심으로 고맙긴 한데, 내가 뭐라고 사람들이 이렇게 챙겨주나 싶긴 한데...


난 그들에게 말할 수밖에 없어. 지금 이대로 삶이 끝까지 흘러가버리면 그거야말로 가장 확실한 지옥이라고.. 언젠가 죽음을 앞두고 내 삶을 되돌아볼 날이 올 텐데 그때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만큼 내게 비극적 결말은 없다고... 너도 알잖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 '후회'라는 거...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현재 시각 AM 03:57. 맥주 500ml 3캔, 예거밤 2병째. 술도 다 떨어져 가고 글씨도 개발새발이고 이젠 결론을 내야 할 것 같아. 나는 인생의 한 시절을 지독한 불행 속에보낸 억울해서라도 남은 삶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우리 가족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줘서 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다만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에는 괄호가 하나 빠져있지.


나는 (직장 밖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직장 안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거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꿈이겠지. 가까이 가려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꿈.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내겠다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왔는데, 물론 쉽진 않았어. 여행사를 차리는 꿈도, 독립서점 주인이 되는 꿈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 산산이 부서졌지.


그러던 어느 날 밤, 아이들 재우고 유튜브에서 짤막한 영상을 하나 봤는데 정말 무섭게 빠져들더라. 최근에 뭔가에 이렇게 깊게 빠진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알고리즘을 타고 상상의 바다에서 신나게 서핑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새벽 4시 반. 무려 6시간을 앉은 자리에서 몰입했던 거야. 너무 늦었다 싶어서 자려고 누웠는데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새벽 밤을 시간동안 걸었어. 그때 깨달았지.아직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스물한 살의 꿈을. 길을 늦게나마 가보려 해. 그게 뭔지는 빠른 시일 내에 말해줄게. 벌써 예상했으려나.


현재 시각 AM 04:10. 이젠 진짜 끝내야겠다. 지금도 무한반복으로 들리고 있는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여전히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편지 안에 무슨 말을 늘어놓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편지 안에 담긴 마음은 모두 내 진심이라는  알아주길. 누가 그러더라. 술은 '억제하는 걸 억제한다'고. 술 마시면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뜻이지. 지금 이 편지는 술과 음악의 시너지로 쓴 글이니까 100퍼센트 내 진심이야. 그러니 내일 술에서 깨도 다시 읽어보지 않을 거야.


내가 늘 말하지? 세상 사람 모두가 날 사랑한대도 우리 가족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세상 사람 모두가 날 싫어한대도 우리 가족 셋만 날 사랑해 주면 난  바랄 게 없다고. 내 마음 속 가시는 잘 다듬어서 새 둥지처럼 만들어볼테니 지금처럼 내 곁에만 있어주길.


마지막으로 비밀 하나 알려줄게. 편지지 사이사이에 얼룩 보여? 그거 내 눈물이야.

졸리다. 이제 잔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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