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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ug 09. 2024

제철 노래

<봄> - 이소라

제철 과일은 제철에 먹어야 하듯, 제철에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다. 이소라의 <봄>이 그렇다. 다만 이 노래는 제목에 함정이 있다. 봄보다 겨울에 들어야 더 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거짓말 한 스푼 보태면, 언젠가부터 겨울의 초입에 이 노래를  듣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연례행사가 됐다. 거짓말 두 스푼 보태면, 붕어빵 없이 보내는 겨울은 (힘겹게) 상상할 수 있어도 이 노래 없는 겨울은 상상이 안된다. 거짓말 세 스푼 보태면, 나는 차가운 겨울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이 노래가 귓가에서 자동재생된다.

다시 말해, 나에게 겨울은 이소라의 <봄>이다.

(그나저나 불볕더위가 한창인 이때 이 노래를 소개하다니 시의성 무엇?)


그렇다고 겨울에만 들어야 하는 노래는 아니다. 지금처럼 바깥은 불처럼 뜨겁지만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울 ,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에 마음이 심란해질 때, 간만에 내린 봄비에 마음이 촉촉이 젖어들 때, 언제 들어도 좋다. 앞에서 제철 노래라는 게 있다고 써놨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계절에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는 뜻일 뿐, 사실 좋은 음악은 듣기 좋은 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들어도 좋으니까 좋은 음악이  것이다.


나는 음악을 감정 증폭제로 용하고 있고, 음악을 듣는 소중한 시간의 감정을 증폭시켜 줄 '감정별 플레이리스트'를 갖고 있다. 이소라의 6집 [눈썹달] 앨범은 '오늘따라 누군가가 그리운 어느 날'의 해안도로 밤산책 BGM이다. 그날그날 그리움의 정도가 다를 뿐 루틴은 비슷하다.


1번 트랙 <tears>로 멜랑꼴리의 문을 열어젖히며 그리움의 빌드업을 시작한다. 3번 트랙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 가사(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를 따라 부르며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감탄한다. 그렇게 그리움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8번 트랙 즈음에는 법환 해안도로 입구에 도착한다. 10번 트랙 <봄>을 들을 즈음 법환 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때 들리는 가사는 하필...


그대와 나 사이 눈물로 흐르는 강

그대는 아득하게 멀게만 보입니다

그리 쉽게 잊지 않을 겁니다

- 이소라의 <봄> 중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눈앞의 바다가 보고 싶은 가족과 나 사이 눈물로 흐르는 강처럼 느껴져서. 그때마다 몸 안에 뜨거운 뭔가가 퍼지곤 했는데 아마도 그건 그새 그리움으로 데워진 내 피었을 것이다. 뜨거운 피가 온몸을 순환하다 눈물샘 근처에 닿으면 얼어있던 눈물샘을 녹였고, 고체에서 액체가 되어버린 물은 수위를 높여갔다. 더 이상 눈시울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그것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왠지 그 장면은 봄이 오면 눈이 녹는다는 비유를 이미지로 나타낸 상징 같았고, 나는 그때마다 역시 이 노래는 봄보다는 겨울에 가까운 노래라는 생각을 했다. 신경 써서 들어야 들리는 이소라의 들숨소리에선 입김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았고.


다행이라면 이때 흐르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보다는 환희의 눈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다시 며칠만 기다리면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럴 때마다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라 뒤이어 흐르는 눈물의 3할 정도는 슬픔의 몫으로 돌아갔다. 기다리면 그리워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기다려도 그리워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건 얼마나 깊은 슬픔인가.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봄도 겨울도 아닌 여름에 이소라의 <봄>을 들으며 이젠 그때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과 함께 사는 와중에 글을 마무리하려니 마무리가 잘 안 된다. 아무래도 이번 글의 마무리는 올 겨울에 그리운 사람이 생겼을 때 이소라의 <봄>을 BGM으로 틀어놓고 해야할 것 같다. 오늘은 일단 날이 푸르르니, 적당히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걸로 퉁-.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푸르른 날>, 송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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