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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오전주부반'의 정글

by 고미젤리

어쩔 수 없이 수영장을 옮겨야 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수많은 독서 클럽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책모임을 갈 때는 새로운 사람과 다양한 의견들을 기대하며 두근대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 '수영장 월드'는 독특한 문화, 분위기가 있다. 물론 주 구성원에 따라 천차만별인 건 맞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 6시나 오후 8시에 수영할 때는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인사하는 정도로도 나는 싹싹하고 예의 바른 수영인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평일 오전' '주부반'에 참여하면서 나는 그 '정글'에 적응하느라 정말 한참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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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달은 암묵적인 규칙들은 다음과 같다.

1. 첫날, '나이'로 언니/동생 호칭을 정한다.
2. 수영 순서는 선생님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뒤에 가서 선다. 한 사람이라도 앞에 서려면 리더를 포함한 여러 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3. 정기적 친목 모임에 동참해야 한다. 주로 '티타임', '점심'모임이지만 때로는 '술모임'이나 '등산' 모임이 되기도 한다.
4. 월 회비를 내기도 한다. - 주로 정기 모임을 위해 쓰거나 가끔 떡과 음료수를 맞춰 돌린다.
5. 촌지를 걷는다. 스승의 날, 설날, 추석 선물로 선생님께 현금을 드린다. 물가에 따라, 회원수에 따라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내가 겪었던, 또는 지금도 겪고 있는 수영장 주부모임 친목단의 모습이다.

이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냥 말 그대로 왕따가 된다.

수영장 안에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뒤에서 수군댄다. 조금 늦게 가도, 빨리 가도 이래저래 잔소리를 듣는다. 지난번 월회비를 거절했을 때는 '우리 반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납부(?)를 거절한 건 아니었다. 그냥 얌전히 상납(?) 하지 않고 '이런 거 안 하면 안 돼요?' 한마디 한 것이 문제였다. 말이 돌고 돌았는지 하루가 지나고 나서 리더가 나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정확히는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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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에 평점이 떠돌고 맘카페에 이런 내용이 다 올라갈 수 있다 보니 스포츠 센터들도 쓸데없는 '텃세'를 단속한다. 새로운 회원이 돌고 돌아야 이익이 남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센터의 조율(?)로 그 반에 살아남았고, 아직도 꿋꿋이 수영중이다.


'나가라'라고 말한 분과는 서로 '투명인간'이지만 말이다.



난 그냥 열심히 수영만 하고 싶다.

같이 수영하시는 분들과 화기애애 지내고 싶긴 하지만, 끝나고 나서 밖에서까지 친목을 이어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오늘도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모든 친목의 제안을 거절한다.

'제가 좀 바빠서요.'

'술은 못 먹어요.'

이런 뻔한 핑계가 통하지 않을 때는 다른 강력한 무기를 내보인다.


'아픈 시어머니랑 같이 살아요.'

이제 아무도 나를 건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불쌍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상한 세계, 그것이 평일 오전 주부반의 정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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