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 아로마 - 타다아사나
어두워져서야 도착한 강릉의 해변에서 올 한 해 내가 잃은 사랑과 일하며 받은 상처를 파도에 실어 떠나보냈고, 내게 온 사랑과 성취한 도전을 바람에 얹어 온 몸으로 받으며 즐겼다.
그리고 그 시간을 서로 묵묵히 기다려줬다. 밤과 바다와 바람과 그 안에 서있는 우리. 한없이 아름답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 아파했던 것도 고통스러웠던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을 했고, 일을 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충만하게 살았구나.
깊어가는 밤을 살뜰히 잡아 알차게 놀고 돌아와, 숙취로 무거워진 몸과 수다로 가뿐해진 마음으로 '12 수리야' 를 하러 요가원에 갔다.
수리야나마스카라, 그러니까 한번 또 한 번 태양을 향해서 경배를 할 때마다 2019년의 1월, 2월,,,12월을 떠올리고 추모하겠다고 마음먹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여느 때처럼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바람에 추모를 못했다. 심지어 중간중간 아사나들이 들어가며 시퀀스가 만들어지니 수리야나마스카라를 몇 번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이 9번만 리드했더라도 아마 난 12번을 했다고 믿을 것이다.
수리야나마스카라의 시작은 타다아사나, Mountain Pose이다. 아헹가의 <요가 디피카>에 첫 번째로 언급되는 이 아사나는 산처럼 굳건하고 곧바로 서있는 자세이고, 서서 행하는 자세의 기본이다. <요가 디피카>에서는 제대로 된 타다아사나에 대해 ‘엉덩이는 수축되고, 복부는 들어가고 가슴은 앞으로 내밀어진다. 이로 인해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경쾌해진다’고 설명한다. 흔들리는 기초 위에서는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 고정된 지지기반, 타다아사나가 중요한 이유다.
기본자세이고 쉬운 자세라고 여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세였었는데 새해가 되니 달리 보이고, 근사하게 와 닿는다. 새해를 맞는 초심이 주는 축복이다.
자연스럽게 예수 탄생에 바쳐졌던 동방박사의 세 가지 선물 중 하나인 멀 Myrrh 아로마가 떠올랐다. 로즈나 재스민처럼 황홀하지도, 오렌지나 레몬처럼 상큼하지도, 유칼립투스나 티트리처럼 시원, 상쾌하지도 않은, 확 끄는 매력이 없이 잔잔한, 그러니까 기본자세 타다아사나 같은 아로마이다. 미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예수의 탄생뿐 아니라 죽은 예수의 몸을 묻기 전 ‘멀과 알로에를 바르고 린넨 천으로 감싸는’데 사용되기도 했던 이 아로마는 프랑킨센스 아로마처럼 부드러운 진정작용이 있어서 과도한 생각, 근심을 붙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상실로 인한 치유, 슬픔을 경감하는 평안, 고독을 달래는 힘을 실어준다. 또, 살균, 치유 효능 덕분에 고대부터 다양한 종류의 연고와 고약으로 사용되었고, 항박테리아, 항진균, 항염 효과가 있어 유칼립투스, 티트리, 파인 에센셜 오일과 블렌딩 하여 사용하면 좋다.
라벤더와 멀 에센셜 오일을 넣어 마음에 안정을 주는 페이스 앤 바디용 밤을 만들었다.
호호바 오일, 코코넛 오일, 그리고 상처 회복 효과가 뛰어난 카렌듈라 오일을 가열해 밀랍으로 농도를 맞추고 상처 치유를 촉진시키면서 오일 산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E를 넣은 후, 온도가 55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 라벤더와 멀 에센셜 오일을 넣으면 된다. 만들어놓고 보니, 응급약이라도 구비한 듯 든든하다.
이 정도면 소박하고 고요하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2020년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를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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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디 (http://instagram.com/edihealer)
그림: 제시 (https://instagram.com/jessiejihye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