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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에 필요한 애도의 시간

14. 진저 아로마 - 비우기

by 요가언니

관계를 정리하는 것처럼 물건을 버리는데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요가는 나의 육체보다 정신과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줬다. 요가 선생님들을 보고, 명상을 하면서 매트 한 장 안에서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꾸릴 줄 알게 되었고, 소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다.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아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져야만 했던 나는 부모님 인생의 상승곡선에 편승해 끊임없는 소비를 했다.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안목을 장착하자 취향이 확립되었고 더 귀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찬 삶을 살았다.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자 바로 밑천이 드러났다. 내 능력만으로는 10대, 20대 때의 생활수준을 누릴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가야 하는 길은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리를 시작했다.

옷과 구두를 비웠다. 30대 체형에 맞는 옷만 남기고 20대의 사이즈를 버렸다.
책장을 비웠다. 내 지적 능력의 상징인 줄 알았던 것들이 비우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CD와 DVD를 비웠다. 이제 DVD, CD 플레이어도, 심지어 이를 재생할 컴퓨터도 없다.
편지와 일기장은 난이도가 높았다. 의미 있고, 아름다운 추억들이지만 과거까지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나의 현재 삶의 무게는 결코 녹록지 않다.

구매할 때의 기쁨과 소유하는 동안의 뿌듯함만 기억하기로 했다.


비워낸 방에 남은 것은 요가매트와 아로마 발향 램프.


아로마 램프 위에 물을 올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로마를 몇 방울 떨어뜨린 후 캔들라이트를 켜 물을 데워주면 빈 방은 사이프러스 숲이 되었다가, 라벤더 밭이 되었다가, 오렌지 나무가 된다.


많이 사용하는 아로마 블랜딩은 레몬-진저의 조합이다. 진저 아로마는 대표적인 워밍 오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무기력하거나 지쳤을 때 자신감을 일깨우는 등 감정을 회복하게 도와준다. 위를 안정시켜서 구토 멀미를 완화시키기도 하고 근육경련, 관절염, 생리통 등에 진통제로도 사용한다.


무소유를 실천할 만큼 큰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만, 비워낸 공간을 아로마로 채울 줄 아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매주 월요일에 만나요


글: 에디 (http://instagram.com/edihealer)
그림: 제시 (https://instagram.com/jessiejihye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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