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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l 12. 2021

처음으로 밥을 남겼다

왜 이 표정이 아련해 보이는 걸까



슈렉이가 사료를 남겼다. 11년 견생 중에 처음 있는 일이다.


슈렉이로 말할 것 같으면, 식탐이 엄마인 나를 꼭 빼닮은 강아지이다. 요리를 하고 있으면 싱크대에 두 앞발을 올리고 나와 나란히 서서 음식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오이, 파프리카, 사과 등을 얻어먹곤 한다. 우리 식구가 다 같이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 자신의 사료를 재빨리 먹고는 식탁으로 달려와 사람이 먹는 음식을 또 달라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엄마, 내 밥 잘 만들고 있는거죠? 참견 중인 슈렉이


방에 있던 강아지가 거실로 나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슈렉아~ 어디 있니?”라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아 거실로 나가보면 꼭 부엌에 배를 깔고 엎드려있곤 한다. 그곳이 가장 편하고 좋은가보다.


여기는 부엌, 싱크대 앞. 얻어먹을 것이 있나 배 깔고 대기 중


처음으로 저녁밥을 남겼던 그날 밤, 얼마 먹지도 않은 사료를 모두 토했고, 집 안에서는 볼일을 보지 않고 밖에 나가야만 해결하는 신사가 거실에 실례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간 슈렉이는 그대로 입원했다. 췌장염이 재발했다.


5일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염증 수치가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낯선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집에 데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따랐다. 꼭 6개월 만에 똑같은 병으로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니, 이번에 돌아오면 언제 또 발병할지, 아니면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핥지 말라고 씌우는 넥카라를 사용할 일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패브릭으로 준비해놨다.


불현듯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슈렉이가 평생 내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10살이 넘어가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강아지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나는 슈렉이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현관문을 열면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존재이니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강아지니까 평생 그럴 줄 알았던 것이다.


내가 엄마이고 슈렉이가 아들인데, 슈렉이는 나에게 잘 안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 잘 안아주지 않아서 이 강아지는 사람에게 잘 안기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을 핥는 일도 없다.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이제와 후회한다.  


“아기 때부터 슈렉이의 귀여운 행동들을 기록으로 남겨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다 끝이야. 너무 늦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직도 슈렉이는 건강해. 그동안 이 강아지로 인해서 기뻤던, 슬펐던 일이 얼마나 많았니? 생각해봐 봐.”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기록하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출근하는 사람이라서, 집에 강아지를 혼자 놔두면 안 된다는 핑계로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긴, 그리고 고작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가는 매정한 엄마이지만 나는 슈렉이 엄마이니까. 이 글은 내가 써야 하고 이 기록은 내가 남겨야 한다.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엄마와 아들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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