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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Nov 01. 2021

내가 날씬한 이유

날씬한 슈렉이 뒷태


지난 주말에는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셔서, 내가 독박 개육아를 담당했다. 슈렉이는 자동차를 타면 병원이나 미용실에 가는 트라우마가 있는 강아지라, 아무리 좋은 곳을 데려가고 싶어도 차를 태우는게 쉽지 않다. 부모님께서는 이번 여행에도 데려가고 싶어하셨지만, 몇 시간을 차에서 떠는 것을 볼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서 데려가실 수가 없었다.


자동차로 인한 상황은 독박 개육아를 담당하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말마다 요트장을 가는 사람이고, 그곳에는 애견을 데려와서 요트를 타는 동호인이 많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가면 강아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차 타는 것을 이렇게나 싫어하니...... 내가 주말 요트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슈렉이에게만 전념해서 집순이 모드를 보냈다.


포즈는 드라이브 좀 해본 개 같겠지만, 실은 차타기 싫어함


아 그런데 우리 슈렉이, 보통 체력이 아니다.

말로만 듣던 하루에 4번씩 산책을 혼자 도맡아서 하고 난 후, 나는 다음날 바로 잇몸이 퉁퉁 부었다. 나도 한 운동, 한 체력 하는 사람인데......


슈렉이는 유난히 나와 산책을 하면 한번에 1시간씩 장거리를 걷고 들어온다. 내가 자주 못 놀아줘서, 한 번 만날 때마다 길게 놀아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생긴 습관이다. 그런데 하루종일 나와 있으니 매번 저렇게 긴 산책을 하자는 것이었고, 나는 정말로 힘들었다.


길고 힘든 산책 후 집에 돌아오면 바로 주둥이와 발을 닦이고 칭찬간식을 챙겨 먹여야한다. 그러면 슈렉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햇빛이 잘 드는데 자리를 잡고 휴식모드에 들어간다. 자고있나~ 싶어서 가까이 가면 눈을 말갛게 뜨고 있지만, 코를 고는 것으로 봐서 자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산책 후 자기 침대에서 휴식모드/ 엄마 다리 베고 낮잠 중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어서, 집에 돌아오면 슈렉이 발 닦이고, 간식 먹이고, 다음끼니 슈렉이 죽 끓이고, 내가 먹을 밥하고 그 밖에 청소 등등을 하고 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한 임무는 계속 슈렉을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쉬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엄마! 쉬지말고 나 쓰다듬어 주세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산책하고, 들어와서 아침 먹고 산책하고 간식 먹고 한 숨 자고, 또 점심 먹고 산책하고 간식 먹고 낮잠 자고, 저녁 먹고 산책하고 간식 먹고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슈렉이는 8kg의 몸무게를 유지하는 날씬한 강아지이다.


“비만이에요. 살 빼야 합니다. 이러면 나중에 늙어서 관절에 무리가 와요.”

슈렉이가 어렸을 때, 내가 멋모르고 강아지가 달라는 대로 각종 과자, 고구마 오리고기 말이, 닭가슴살 육포 같은 간식을 끊임없이 주었을 때 몸무게가 9kg를 넘어가고 10kg에 육박한 적이 있었다.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은 단호하게 다이어트를 시켜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라고 하셨다.


‘10년 밖에 못 사는 애가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무슨 재미로 사나? 엄마가 너 먹고 싶은 거 다 줄께. 걱정하지마, 우리애기.’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쾌락주의자적 가치관을 갖고 있던 나는 의사 선생님 말을 귓등으로 듣고는 슈렉이가 달라는 대로 다 내줬다.


슈렉이 전용 마켓컬리 주문과 슈렉 식단 밀프렙


그런데 강아지를 우리엄마가 전적으로 맡아 키우게 되면서, 슈렉이는 철저한 식단 관리에 들어갔고 몇년째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사료가 항상 부족해 보여서,


“엄마가 슈렉이한테 사료를 너무 박하게 주니까, 얘가 산책하면서 버려진 치킨 조각 같은 것에 환장하잖아. 집에서 배불리 먹이면 안 그럴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슈렉이 늙어서 관절 나빠져서 다리 수술해야하면 어쩌려고 그래? 개들은 많이 먹어도 음식 냄새 쫓아다니는 법이야.”

라며 대립을 하곤 했다.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풀 속에서 먹다 버린 치킨 조각을 물고 나온다는…..


슈렉이가 11살의 노견이 된 지금, 우리 엄마의 말씀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릴 때는 강아지가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저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가 도대체 어떻게 아플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우리 슈렉이처럼 체력이 좋고 건강하고, 각종 예방접종과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강아지도, 늙으면 어디든 고장이 나고 병이 생긴다. 가공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슈렉이가 췌장염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슈렉이의 날씬한 몸매의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인 것이다. 인생의 진리라는 것은 그런 것인가보다. 왕도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개나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엄마랑 커플룩 입고 산책중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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