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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Sep 13. 2021

할모니, 왜 아침밥 안 줘요?

“할모니, 산책도 다 하고 쉬도 다 했는데 왜 나는 아침밥 안줘요?”


오늘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날이라 아침을 먹을 수 없다. 나도 평생에 거쳐 할까말까한 전신마취를 8kg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강아지가 도대체 몇 번째 하는 것인가.


슈렉이는 두 달에 한 번 미용을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온다. 나는 유난히도 병원, 약 처방, 수술 등에 거부감이 있는 옛날 사람(?) 혹은 자연치유 신봉자 같은 면모가 있는 사람이라, 내 몸이 아플 때는 허브차, 아로마테라피, 마사지, 요가 등으로 자가 치유를 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니, 내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만져보고, 비교해보고 이상한 점이 있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설명하고 확인을 받는다.


“요즘에는 슈렉이 눈이 빨개요. 눈을 비비는 것 같기도 하고.”

“(슈렉이 눈꺼풀을 뒤집어 까며) 그러네요. 눈에 mass 가 두 개나 있으니 충혈되죠. 수술로 제거하면 됩니다.”

“네? 수술이요? 그럼 또 전신마취 아니에요?”

“재우지 않고 눈 수술을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전신마취를 하는 김에, 그동안 미뤄왔던 이빨 스케일링, 귀털 제거(슈나우저는 귓병이 자주 걸려서 귀털을 잘 제거해줘야 한다고 했다.). 발톱 깎기(발톱만 깎으려면 미용사 선생님을 물겠다고 난리를 치기 때문에 마취한 김에,,,,,,)까지 하기로 했다.


이번 수술은 눈꺼풀을 뒤집어 까야했기에 먼저 뒤트임을 하고, 눈꺼풀을 뒤집어서 속에 있는 혹을 제거해냈다. 강아지가 쌍꺼풀 수술을  것도 아닌데, 뒤트임을  놓은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자꾸 눈곱이 껴서 닦아주려고 휴지를 갖다 대면 피가 섞인 눈곱이 묻어나오니,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강아지가 내는 신음소리를 듣는 것도 고역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눈이 찢어져있는데, 얼마나 아플까.


요새는 아파서 주로 누워지내심. 다리 다소곳이 모으고.

작년 말에 시작된 방광, 요도 결석 제거 수술, 올 상반기 췌장염 입원, 하반기에 눈 종괴 제거 수술까지 반기마다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


친구네 강아지가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었다. 병원비는 매달 수백만 원씩 나오는데 친구의 경제적 상황은 그걸 부담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데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이미 본인의 월급을 넘어선 병원비를 몇달째 내고 있었고, 그렇다고 아픈 강아지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고, 그 간극에서의 고민은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강아지를 안락사시킨 후 친구는 꽤 오랜 시간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본인의 무능력함 때문에 한 생명을 보냈다고 자책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표면적으로만 공감했던 친구의 일이 슈렉이가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일로 다가왔다. 우리 집은 엄마가 ‘공평하게’ 엄마, 아빠, 나, 동생이 똑같이 병원비의 1/n을  부담하도록 공지하신다. 그리고 고맙게도 모두가 군말 없이 병원비를 내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친구처럼 나의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우울증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강아지가 아기 때는 알 수 없다. 아기 때 드는 병원비 라야 예방접종 정도뿐이고 그때는 장난감 사는데 돈이 좀 들 뿐이다. 하지만 10살이 넘어가는 노견이 되면 그때부터는 인간의 노화와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에 화상 입어서 붕대를 뚤뚤 감았을 때/ 발이 다쳤을때는 핥지 않도록 넥카라를 씌워야 한다./ 슈렉이의 병원 치료 역사들


몇 년 전 처음 스케일링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치석 하나 제거하겠다고 그 위험한 전신마취를 하면 안 된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냐, 이빨 하얗게 하려다가 애 잡는다, 등의 걱정이 앞서서였다. 그때 나를 설득한 사람은 강아지를 오랜 시간 가족처럼 키워온 내가 매우 신뢰하는 친구였다.


“지금 전신 마취를 하고 스케일링을 하던지, 나중에 치통 때문에 강아지가 괴로워해서 이빨을 뽑느라고 전신마취를 하던지.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전신마취를 해야 해. 지금 하고 건강한 치아를 선물할 거야, 나중에 해서 이빨 없는 강아지를 만들 거야?”


그래서 스케일링을 결심했다.

 

신난거 아님. 병원이 너무 무서워서 호흡곤란이 왔음.


이틀 연속으로 설사하고 토하는 귀리를 보고도 처음에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구조한 다음날 병원에 데리고 가서 기본 검사를 했을 때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다시 병원에 데려갔다. 홍역이었다. 의사는 귀리를 입원시켜서 수액을 맞히고 홍역 항체가 있는 개의 피를 수혈받아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귀리는 동물병원에 있는 아주 작은 방에 입원했다.

- 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


슈렉이는 홍역에도 걸렸었다. 막 우리 집에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니까, 3개월 때의 일이다. 갑자기 슈렉이가 먹은 사료를 몽땅 토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린 강아지는 자기가 게워낸 것을 다시 먹으려 했었다. 강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 큰일이 난 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슈렉이를 안고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24시간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이 작은 강아지가 내 손 안에서 꼬물거리는 것이 무서웠고, 털 사이에 세균이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결벽증이 있었다. 그래서 아픈 강아지를 담요로 둘둘 말아 들고 집 앞 병원으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편의점 앞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담요를 들고 울면서 걸어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당직을 서는 의사는 인턴이었던 것인지, 자다가 일어나서 귀찮은 것이었던지, 아픈 강아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나에게 수많은 서류를 작성하게 시켰다. 결국 약만 달랑 지어주는 그 병원을 나는 분노하며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슈렉이의 생모 강아지가 다니는 조금 먼 병원으로 운전을 해서 갔고 그 후 슈렉이는 그 병원에 꽤나 오랜 시간 입원해 있어야 했다.    


아팠던 슈렉이가 어떻게 나았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3주인지 4주인지, 어쩌면 두 달인지 모를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돌아온 슈렉이가 굉장히 많이 커져서 돌아왔다는 것, 그래서 내 침대에 올라올 생각도 못했던 아기 강아지가 집에 돌아오던 날 점프를 하며 침대 위로 올라와 나를 놀라게 했다는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외출복을 입은 채로는 침대 위에 앉지도 않던 결벽증의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홍역에 걸리게 했다는 죄책감, 아픈 아이를 내 손으로 만지는 것조차 꺼려했다는 미안함에 그동안의 모든 규율이 봉인 해제되었고, 이 침대는 슈렉이의 것이 되었다. 지금은 슈렉이와 몸을 맞대고 잘 잔다.


우리는 마주보고 잘 자요.


강아지에게 홍역이 치사율 90%의 심각한 전염병이라는 것은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최근에야 알았다. 슈렉이는 그 10%의 가능성으로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그걸 이제 알았다. 다만 그 여파였던지 한동안 이 아이는 직선을 걷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게 들며 사선으로 걸었었다.  


슈렉이는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 용감한 강아지이기에,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앞으로 10년은 더 건강하게 살 것이라 믿는다.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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