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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 Sep 06. 2021

간식에 진심입니다

이렇게 활짝 웃는 슈렉이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렌즈 앞에 간식을 보여주면 됩니다.


슈렉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나는 초보 엄마조차도 되지 않는 무자격의 엄마였다. 임신한 친구들을 보니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임신육아백과를 사서 공부를 하던데, 그와 마찬가지로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에는 충분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무지한 나는 강아지가 간식을 주는대로 잘 먹길래, 그리고 딱히 내가 이 작은 강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간식을 ‘많이’ 주기만 했다. 5종 예방접종이 끝나기 전에는 산책도 못하니, 이 작은 강아지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재미도 없어 보였다. 사료는 하루 급여량이 정해져 있었는데, 간식은 그렇지 않으니 그냥 내키는 대로 내줬던 것이다.


그나마도 내가 아는 간식이라야 동물 병원에 파는 개껌이나 쿠키 정도가 전부였으니 사료와 함께 매일 개껌을 양껏 주는 것이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4개월밖에 안 되는 베이비 슈렉이에게 개껌을 한 번에 두세 개씩, 하루에 두세번을 주었다. 위가 작은 베이비 슈렉은 당연히 그걸 다 먹지 못하고 남겼으며 매끼 변을 봤고, 나는 매일매일 슈렉이가 먹다 남긴 간식을 버렸다. 무지한 사랑은 이렇게나 위험하다.


이건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베이비 슈렉이 개껌 뜯는 모습. 바닥에는 다 먹지 못한 개껌이 굴러다니고 있다.


나름 반려견 책을 사서 공부를 한 후에는 소변을 가리는 습관을 만들어준다며, 배변패드에 가서 쉬를 하면 과자를 한 개씩 주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똘똘한 4개월의 베이비 슈렉은 규칙을 금방 이해해버렸다. 배변패드에 올라가서 한 번 쭈그리고 앉았다가 (쉬는 나오지 않음. 그냥 쉬 하는 시늉만 하는 것임.)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과자를 얻어먹고, 다시 배변패드를 찍고 나에게 오기를 반복했다. 규칙은 규칙이니까 쉬 하는 시늉을 하는 슈렉이에게 과자를 안 줄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하루 만에 계란과자 한 봉지를 다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아기 슈렉이가 탈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면서 아찔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의 무지 때문에 아기 때 홍역에 걸려 장기간 입원 치료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4개월 베이비 슈렉이를 데리고, 지금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이런 장난도 쳤었다. 슈렉이는 이때부터 간식에 진심이었다.


“이 대왕 멸치는 뭐야?”

“디포리야. 멸치랑 비슷한데 크기가 커서 강아지들이 먹기 딱 좋아.”


이모는 집에서 직접 강아지 식사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식품건조기를 활용해 간식도 만드신다. 디포리를 물에 담가 염분을 뺀 후 말려서 디포리 포를 만드시거나, 닭가슴살을 잘 썰어 말려 닭가슴살 육포를 만드신다. 그밖에 오리 오돌뼈, 오리 안심, 북어 등이 강아지의 간식 재료들인데, 당연히 사람이 먹어도 (술안주로) 손색없는 품질과 맛의 별미들이다.


이모의 홈메이드 간식들. 식품 건조기는 식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강아지를 위해 구입했다는 사실.


그러다가 췌장염 진단을 받은 후부터 슈렉이의 할머니는 철저하게 슈렉이 식단 관리를 시작하셨고 그 이후로 간식은 일절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슈렉이로서는 영문도 모른 채 날벼락을 맞은 것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오늘은 두 달에 한번 슈렉이 건강 체크하러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랜만에 아기 때 먹던 계란과자 한 봉지를 사 올까? 아니면 이모한테 홈메이드 간식을 만들어달라고 할까? 간식에 진심이던 베이비 슈렉이 모습이 그립다. 건강관리를 하느라 그 재미를 빼앗긴 늙은 슈렉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안쓰럽다.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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