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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ug 02. 2021

강아지 여름나기

멋쟁이 재동이의 여름 콘셉트 포토


"이제 미용 좀 시키자. 슈렉이가 얼마나 덥겠어. 지금 얘는 이 더운 날씨에 모피코트를 입고 있는 거라고."

"아니야. 개들은 털 때문에 덥지 않아. 그리고 얘는 털 바싹 밀면 부끄러워하고 스트레스받아."


여름이 시작될 때 엄마와 나는 슈렉이의 미용을 놓고 대립되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슈렉이의 털을 아주 짧게 바짝 미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슈렉이가 빗질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빗질을 제대로 해주면야 당연히 길고 곱슬곱슬한 털이 귀엽다. 하지만 빗질을 제대로 못한 털은 엉키기 시작하고, 그 엉킨 털을 몇 번이나 가위로 잘라낸 후에는 웬만하면 털을 짧게 자른다. 어려서부터 매일 빗질을 해줬어야 했는데, 습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관심을 많이 주지 못하고 방치를 했던 터라 지금은 빗질만 하려고 하면 으르렁거린다.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겨울에 털을 빡빡 밀면 한동안은 몸을 공처럼 말고 지낸다. 엄마 말씀대로 추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폭염이 시작되고는 엄마도 마음을 바꾸셨고, 슈렉이가 털을 짧게 깎았다고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슈렉이 미용했다."

"잘했네. 더운데 티셔츠는 왜 입혀? 얼른 벗겨"

"애 화상 입어."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신나게 서핑을 하다가 숙소에 돌아왔는데 정수리가 너무나 아팠던 적이 있다. 서핑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혔었나 되돌아봐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두피 화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드니 서퍼들은 나에게 징크가 들어간 강력한 선크림을 건내며, 귀까지 꼼꼼히 발라야 한다고 알려줬지만 두피에도 선크림을 바르라고는 말해주지 않았다. 머리숱이 적어 훤히 드러난 가르마를 중심으로 두피가 뻘겋게 익었고 밤마다 알로에로 열기를 빼내고 화상 약을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발라줘야만 했다.


냉감티 입은 슈렉이. 사람 기능성 운동복과 동일한 소재.


털의 목적 중 하나는 피부를 보호하는 것인데 그걸 싹 밀어버렸으니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건 엄마 말이 맞았고 내가 경험했던 일이기도 해서 바로 수긍했다. 그래서 하루에 네 번 산책 나가는 슈렉이는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는 맨몸으로 나가지만, 오후 산책 두 번은 꼭 티셔츠를 입고 나간다. 이름하여 냉장고 셔츠, 냉감티 말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재동이는 여름에 수영장도 가던데


여행을 자주 다니는 친구네 아들 재동이는 여름이면 수영장도 가고 강아지 펜션으로 피서도 다니던데, 차 타는 것을 싫어하는 집돌이 슈렉이는 집- 아파트 앞 공원이 일상의 전부이다. 그러니 우리 가족으로서는 슈렉이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최선의 돌봄과 사랑이다.


우리 식구들은 체질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지 않아서 집에서 에어컨을 트는 일이 많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름이면 유난히 헥헥 거리는 슈렉이 때문에 처음으로 쿨링매트라는 것을 사게 되었다. 물론 우리 몫은 없고 슈렉이 침대에만 깔려 있다.


에어컨 틀어놓고 전용 쿨링매트에서 쉬는 중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이상기후 때문인지 여름이 견딜 수 없이 더워졌고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가보니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슈렉이가 요새 밤만 되면 현관에 배를 깔고 자. 안쓰러워서 에어컨 설치했다."


남향집의 이점으로 태양을 고스란히 받아 후끈해진 집안에서 그나마 시원한 곳이 현관의 대리석 바닥이었던 것이다. 열대야를 힘들어하는 슈렉이 때문에 엄마는 슈렉이가 돌아다니며 자는 방마다 에어컨 설치를 결심하셨다.


하지만 에어컨을 트는 것에도 원칙이 있으니, 배탈 나면 안 되니까 배는 꼭 덮어주기!

  

강아지를 손주 돌보듯 키우시는 우리 엄마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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