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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Nov 08. 2021

미용이 싫어요


슈나우저 미용의 정석. 풍성한 가슴털과 다리털

전통적인 슈나우저 미용은 흰 주둥이와 눈썹을 살리고, 흰 가슴털과 다리털을 풍성하게 남기되, 검은색인 뒤통수, 등의 털은 짧게 깎는 것이다. 이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둥이와 가슴, 다리털을 매일 빗어줘야 한다. 하지만 슈렉이는 자유롭게 자란 강아지라(= 버릇없는 강아지 + 훈련 안 된 강아지) 빗질 습관을 못 길렀다. 빗질만 하려하면 물려고 난리여서, 서열 후순위인 내가 진다. 그렇게 가슴과 다리털을 빗어주지 않았더니 다 엉켜서 몇 번을 그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야만 했었다. 그 이후로 슈렉이는 삭발하는 강아지가 되었다.


너무 빠싹 밀었을 때의 예. 발가벗은 느낌 때문인지 스트레스 받아서 구석으로 숨는다.


빡빡 미는 것이 털이 엉키지 않아 강아지도 고통스럽지 않고, 자주 미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제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빡빡 밀어서 강아지의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것을 보고 나서야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피부에 자극이 있었던 것인지 슈렉이는 며칠이고 온 몸을 핥아댔다. 몇 번의 시행착오 후에야 차차 요령이 생겨서 털은 1cm 길이로 자른다는 것, 발은 털이 소복하게 보이도록 잘라야 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이를 전문용어로 슬리퍼 컷이라고 하는데, 그 반대의 옵션은 닭발 컷이다. 닭발 컷을 하면 사람 손처럼 발가락과 발톱이 보여 귀엽지만, 그렇게 짧게 깎으면 슈렉이는 또 훤히 드러난 발등을 며칠이고 핥는다. 핥는 행위는 어쨌든 강아지가 불편하다는 뜻이기에 견주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미용실 드라이 기계에 들어가서 떨고 있음 (With 신스틸러 몰리)


어릴  한번은 미용실에 갔다 왔는데 꼬리에 시뻘건 땜빵을 발견했다. 슈렉이가 하도 말을  듣고 움직이니까 미용사가 면도기로 슈렉이 꼬리를 아프게   같다고 의심하며 펄펄 날뛰었지만,  심증만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미용실을 몰리스 펫샵으로 바꿨다. 이유는  하나였는데 유리문을 통해서 미용하는 것을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견주들은 강아지를 미용실에 맡기고 이마트로 쇼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때의 나는 미용사가 슈렉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노이로제에 걸렸던 몹시 피곤한 부류의 신경과민 견주였기 때문에  시간이고  시간이고 그걸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 노려보고 있었다.  같은 고객을 만난  미용사 선생님은 매우 괴로웠을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그 피곤한 짓은 딱 한 번으로 끝났다.


슈렉이 목욕하고 미용하는 것 끈질기게 지켜보는 극성 엄마


“어라, 이 놈 조순이네?”


지나가던 아저씨는 눈썹이 하얀 슈렉이를 보고 예전에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흰 눈썹의 정치인 같다고 껄껄 웃으며 신기해하셨다. 슈나우저에게 눈썹은 트레이드마크이자 자존심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눈썹을 마음에 들지 않게 잘라주시던 미용사 선생님도 있었다. 일명 더듬이 스타일.


한동안 미용사 선생님은 저렇게 까만 속눈썹 한가닥을 길게 남기셨었어요. 더듬이 같이. (이상해….)


집에서 미용을 해줄 수 있다면, 항상 깔끔하게 정돈된 눈썹과 주둥이를 뽐내며 다닐 수 있을 텐데, 집에서 미용은 절대 불가능하다. 미용실을 가는 것 또한 슈렉이에게는 고역이라 최대한 미용실 가는 것을 미루고 털을 기른다. 그러면 슈렉이는 ‘털이 찌는’ 상태가 되는데, 분명 뒤룩뒤룩 뒤뚱뒤뚱 걸어 다녀 살이 쪄 보이는 슈렉이는 털을 싹 밀고 나면 앙상하게 뼈만 남는 날씬한 강아지가 된다.


지금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더 이상 털을 밀지 않고 겨울을 나게 한다. 사람도 모피나 후리스, 하다못해 기모만 입어도 따뜻한데 강아지에게 털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래서 겨울은 평소보다 좀 더 꼬질꼬질하고 퉁퉁하고 못생긴 슈렉이가 된다. 그래도 내 눈엔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곱쓸곱쓸 털찐 슈렉이. 겨울에는 부시시해도 따뜻한게 최고!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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