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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ug 16. 2021

우리집 문지기

대부분의 시간을 현관에 앉아, 아니 엎드려 보냄. 현관 지킴이 슈렉이


집 안의 왕이자 보디가드인 슈렉이는 우리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사냥견 출신이라 그런지 목소리도 우렁차고, 끈질긴 면모가 있어서 외부인이 집 밖으로 나가는 후퇴를 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짖어댄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택배를 받는 것은 굉장한 미션이다. 초인종을 누르면 짖기 시작하기 때문에, 배달원이 도착하기 전에 문 밖에 나가서 음식을 받아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최근에는 비대면 배달, 배송이 일반화되었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 밖에 음식과 택배를 놔두고, 앱이나 문자로 배송 완료 연락이 오는데 그 덕에 이제야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초인종이 울리면 바로 짖기 시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슈렉이가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나던 날은 살짝 긴장해야 했다. 퇴근 후에 데이트는 해야겠고, 슈렉이 산책도 시켜야겠고 하니, 슈렉이 산책을 데이트 코스에 넣기로  날이었다. 동네에서 저녁을 먹고 슈렉이를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산책을 하는  말이다.


엄마를 보호해야 하는 보디가드 슈렉이에게 낯선 사람으로 인식되는 순간 바로 짖을 테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아파트를 나와 평소처럼 걷다가 슈렉이가 앞서 갈 때 뒤에서 목줄을 그에게 건네줬다.


한참을 걸어가서야 “넌 누구냐?” 는 식으로 처음 보는, 그렇지만 자신의 목줄을 잡고 있는 그를 쳐다봤고,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무(의 다른 강아지 흔적) 냄새 맡기와 마킹에 집중했다. 그다음부터는 비교적 수월했다. 밖에서 만나면 반갑게 달려가서 두 발로 서서는 격하게 환영했고, 함께 장난을 치고, 산책을 했다. 성공!


간식 뺏기 놀이 중

문제는 그가 집에 들어오던 날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러 올라왔다가 현관에 발을 들이자 슈렉이가 얼음이 되었다.


‘타인이 침입했으니 짖긴 짖어야겠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고, 냄새도 익숙하고?’


짖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인 슈렉이는

“슈렉아 안녕? 나야 나. 잘 지냈어?”

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며 강아지 멘붕이 온 듯했다. 우리 식구가 아니니 짖어서 쫓아내긴 해야겠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워서 꼬리는 눈치 없이 흔들리고……


 ‘침입자이니 짖어볼까?’ 싶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아닌가? 그때 같이 놀았던 친구인가?’ 싶어서 힘없이 내뱉기를 반복했다.


“에라 모르겠다. 우선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자.”


슈렉이는 내 뒤에 숨어 다리사이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는 그가 나갈 때까지 쳐다보기만 했다.


누구냐 넌?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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