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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Sep 20. 2021

내 친구 어디 갔오요?

예쁜 꽃을 궁뎅이로 깔고 앉아서는 해맑해맑 슈렉이


89세이신 할머니의 치매는 날로 심각해져 갔다. 다른 사람이 된 듯이 평생 입에 담지 않으시던 욕설을 날카롭게 뱉어내셨고, 요양보호사들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교체됐다. 그때마다 그분들에게 사과하고 성의를 표시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뾰족한 비난과 불같은 화를 묵묵히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할머니 치매의 화살은 강아지 슈렉이도 피해 갈 수가 없어서,


“얘가 보통 똑똑한 강아지가 아니야. 천재야 천재. 사람 말을 다 알아들어.”

“눈동자가 어쩜 이렇게 다마(=구슬) 같니. 인형이네!”


라고 예뻐하시다가도, 돌연


“쟤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기분이 나빠. 내다 버려. 집에서 얼른 치워”


라 소리치기 일쑤였다.

  


2살 베이비 슈렉이 우리 할머니 다리에 자기 앞 발 떡하니 올려놓기.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슈렉은 가장 친한 친구로 보냈다. 할머니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셨고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식구들이 모두 나간 후의 적적한 시간을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보냈을 것이다.


나에게는 잘 안기지 않는 슈렉이가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을 때 둘이 이미 친한 친구가 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추측컨대, 매끼 식사 때마다 정이 넘치시는 할머니는 슈렉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을 것이다. 그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 작은 강아지의 애처로운 눈빛과 한 입만 달라고 애원하는 표정을 보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워낙 베풀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분이시니 말이다. 강아지에게 맛있는 것을 주는 사람은 곧바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언제나 왕할머니 옆에 궁뎅이를 꼭 붙이고 있는 껌딱지 슈렉이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외출 대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정된 공간에서 부딪히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혼자 계실 때는 얌전히 낮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가 눈앞에 식구들이 보이면 언성을 높이고 분노를 쏟아내셨다. 독이 섞인 말에 식구들은 조금씩 시들어갔다. 그 말들이 진심이고 아니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독은 가치 판단 없이 그 자체로 독이니까.


평균수명이 길어지며 맞닥뜨린 아이러니한 사실은, 치매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엄마 역시 65세의 노인이라는 것이다. 65세는 손주를 품에 안고 인자하게 놀아주실 할머니 역할을 할 나이이다. 치매 어머니의 호통을 들으며 견뎌야 할 나이가 아니란 말이다. 결국 할머니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도록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제 슈렉이는 혼자 빈집을 지키게 되었다. 슈렉이도 11살의 노견이라 나이가 들어서인지 딱히 분리불안은 없어 보였다. 그저 낮잠을 늘어지게 자기만 했다. 함께 놀 친구가 사라지니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외로움 때문에 잠만 자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늙은 슈렉이는 왕할머니와 함께 있었던 때 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소파 위에 엎드려 지낸다.


긴 시간 동안 65세의 엄마가 89세의 할머니 병시중을 들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체력 덕분이다. 따로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원을 다니시지도 않는 분이 잔병치레 없이 생활하시는 것은 분명 슈렉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슈렉이는 무려 하루에 4번씩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슈렉아, 지금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 당분간은 안전하게 집에 있자.’


강아지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정해진 시간에 밖에 나가서 풀냄새, 흙냄새, 다른 강아지 냄새를 맡고 대소변을 해결해야 한다. 강아지들에게는 냄새 맡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라고 했다. 그러니 엄마는 비가 오면 강아지에게 우비 입히고 우산 씌우고, 눈이 오면 패딩 입혀서 슈렉이를 산책시켰다. 그게 벌써 11년이다. 매일 그렇게 몇 천보씩을 걷다 보니 그 흔한 복부 비만도, 대사 질환도 없는 날씬한 중년 여성이 바로 우리 엄마다.


슈렉이와 함께 공원 나간 우리 엄마 아빠. 슈렉이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임. 왜냐하면 내가 슈렉이 엄마니까! ㅎㅎ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긴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면회는 금지되었다. 문병을 가지 못하고 간병인이 보내주는 사진으로만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식의 마음은 어떨지, 나는 경험해보지 않아 모른다.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짐작하고 있는 그 마음을 보듬어준 것은 남편도, 자식도 아닌 슈렉이일 것이다. 슈렉이는 집에서는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고, 때때로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자주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퇴원 후에는 아기 유아식을 끓이는 세심한 노력으로 강아지 영양식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엄마에게는 우울감이 찾아올 틈이 없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포함한 남은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돌봐주며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슈렉이는 가장 친한 친구, 왕할머니가 어디 갔는지 여전히 궁금하겠지만.


다리사이, 엉덩이 옆, 어디든 파고들어 붙어있는 껌딱지 슈렉이. 이제는 할머니 대신 우리 엄마한테로.



P.S.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할머니는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작아졌고 야위었지만, 여전히 고우셨다. 그리고 오늘 돌아가셨다.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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