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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Nov 15. 2021

깨끗한 게 좋아


, 슈렉아   하는 거야? 못살아 정말.”

“응~ 우리 슈렉이는 지렁이 냄새 좋아해.”


예전에는 펄쩍 뛰었던 상황을 지금은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가 온 다음 날, 아스팔트 위로 올라와 있는 지렁이에 슈렉이는 새하얀 얼굴을 비빈다. 촉감이 좋은 것인지, 냄새가 좋은 것인지 왜 그러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이제는 슈렉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즐기게 놔둔다.


요트 타는 강아지 피코는 잔디밭이 아닌 요트 세일 위에 몸을 던진다


슈렉이는 아파트 단지에 조경으로 심어놓은 키 작은 풀들을 꼭 등으로 쓸고 지나간다. 어렸을 때는 아토피처럼 보이는 피부병이 있었던 터라 ‘등이 가려워서 긁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강아지는 동물이니까 흙에 뒹굴고 잔디에 몸 비비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몸을 던지게 놔둔다. 새로 사 입힌 옷은 하루 만에 더러워지고, 실밥이 터지곤 하긴 하지만 말이다.   


런던의 한 공원에서 흰둥이 강아지 두 마리가 진흙탕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초콜릿 퐁듀에 빠진 마시멜로꼴이 되어 나왔을 때 견주들이 “재미있게 놀았어? 집에 가서 목욕하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떤 것이 강아지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몸이 더러워지는 것이 무서워서 자연을 즐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처럼, 강아지의 기회도 빼앗지 않으려고 한다.


막 건조된 새 빨래 냄새가 조크등요~ 빨아놓은 옷에 강아지 냄새 뭍히기


강아지들이 잔디밭이나 흙 밭에 뒹구는 것을 좋아하니까 더러운 것을 잘 모르거나 혹은 좋아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슈렉이는 주로, 빨래를 게기 위해 걷어놓은 새 옷 위에 떡 하니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빨아야 할 더러운 옷 더미에는 안 올라가는데 귀신같이 새로 한 깨끗한 빨래 위에만 올라가는 것을 보면 새 빨래가 뭔지 아는 것 같다. 새 빨래 냄새가 좋은 건가.


새 빨래 중에서도 선호하는 것들이 있으니 주로 보들보들한 촉감의 의류, 이를테면 팬티 같은 것들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강아지들의 새 팬티 사랑


한 번은 베개 커버를 빨기 위해 벗겼더니 그 새하얀 솜통 위에 턱 하니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몸을 똬리처럼 말고 자리를 잡고 편안히 휴식을 취한다. 각질이나 머리카락 떨어질까 봐 사용하지 않고 따로 빼 놓은 베개속인데…… 그래, 너는 우리 집 왕이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그러니까 이게 다 서열의 문제란 말이다. 슈렉이는 자기가 이 집의 왕이니까 새로 빨아놓은 옷에도 자기 냄새를 묻혀야 하는가 보다.


빨아 놓은 방석과 베개 커버 위, 혹은 커버 벗긴 솜 위. 아무튼 깨끗한 곳을 찾아서

서열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다. 슈렉이는 마사지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이 집에서 슈렉이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은 쉼 없이 슈렉님 마사지를 해 드려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서열이 낮은 사람은 엄마인 나이다. 여기에 올해 새로 추가된 서열이 낮은 사람이 있으니, 남동생의 아내인 나의 시누이이다. 새 식구이므로 서열상 꼴찌라는 것을 슈렉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집에 오면 그녀는 쉬지 않고 슈렉이를 쓰다듬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남동생과 그의 아내가 상반신, 하반신을 나누어 마사지하는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인간 둘에게 전신 마사지 받는 개 하나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들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들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장 그르니에, <섬>


프랑스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짐승들의 휴식은 인간의 노동에 비견할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원하는 데에서 마음껏 쉬세요, 슈렉님.


저기요, 여기는 소파 테이블인데요? 여기는 책상이고요? 관종 슈렉.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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