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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18. 2021

개 키우는 집의 흔한 모습

슈렉이 수석. 꼬리 디테일이 포인트.


“정말이지 몇 년째 하루 종일 애기어만 사용해. 내 지능이 딱 3살에서 멈춘 기분이야. 이럴 거면 대학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


두 아이를 육아 중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육아가 아닌 육견을 하는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슈렉이에게 자연스럽게 애기어를 대방출한다. 강아지는 아기가 아닌데도 무의식 중에 아기라고 인식하나 보다.


“에이! 거기 지지, 지지!!”

“개한테 지지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는 커플이 비웃었음.)


“슈렉이 맘마~”

“슈렉이 응가해쬬요오? 아이고 잘했네 우리애긔~”



우리 집 거실 한복판에는 미끄럼 방지 패드가 깔려있다. 쌍둥이를 키우는 친구네 거실에 깔려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마룻바닥을 전력 질주하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는 슈렉이가 몇 번이나 미끄러지는 것을 발견한 이후에 관절 보호를 위한 선택이었다. 관절 보호를 위해 설치한 다른 하나는 계단인데, 소파로 폴짝 점프하고 껑충 뛰어내리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고 엄마가 설치해 놓으셨다. (하지만 계단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슈렉이는 집안에서 볼 일을 보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어릴 때 쓰던 배변패드가 항상 깔려 있고, 시원한 물을 담아놓는 물그릇, 그리고 밥그릇을 올리는 슈렉이 식탁이 놓여있다. 그밖에 노즈 워크 장난감 몇 종은 기본이다. 그나마 슈렉이는 이제 베이비가 아니라 인형 장난감 같은 것은 잘 안 갖고 노니 이 정도이다.


강아지 계단, 배변패드, 물그릇, 밥그릇, 장난감. 그리고 미끄럼방지 패드까지.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


이 정도면 개를 키우는 것과 애를 키우는 것이 그다지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깟 개 한 마리 키우면서 왜 이렇게 유난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들만이 느끼는 심리적 무게라는 것이 있다고 토로하고 싶다.


산책 중에 동네 강아지를 만났다. 그런데 이 아이가 갑자기 뒷발을 들며 걷지 못했다. 주인 할머니가 뒷발을 확인하니 발톱은 멀쩡했는데 발바닥 패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할머니 손에 피가 꽤 많이 묻어난 걸 보니 말이다.


“어머, 발에서 피나요! 얼른 여기 아파트 단지 앞에 동물병원 데리고 가셔야겠어요.”

“에이! 병원은 무슨! 병원비가 얼마나 비싼데. 집에 가서 후시딘 발라주면 돼.”


이 강아지는 그렇게 할머니에게 목줄이 잡힌 채 바닥에 핏자국을 찍으며 집까지 걸어갔다. 이 아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더 아파질까 봐 너무 걱정되었지만,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마다 형편과 원칙이 다르니 내가 관여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반려견의 삶은 전적으로 주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은 먹는 것, 입는 것을 포함한 생활환경과 체험 가능한 경험의 범위를 포괄한다. 여기에서 주인의 책임감의 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한다.


‘송혜교네 반려견은 수백만 원짜리 펜디 가방 안에 담겨서 이동하고 옷도 펜디꺼 입는다고 하는데 우리 슈렉이는 맨날 자기 발로 걸어 다니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는 티셔츠만 입잖아. 더 좋은 것을 못해줘서 미안해’.


당연히 개들이 원하는 것은 명품 옷과 수많은 장난감이 아닐 것이다. 캐롤라인 냅은 <개와 나>에서 “개가 지루해하는 것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거나 운동을 충분히 못 하거나 자극이 부족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것은 주인의 욕심이라는 것일 테다. 더구나 슈렉이는 혼자 지내지도 않고 산책도 많이 하니 장난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웰컴 투 슈렉월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욕심과 일방적인 사랑은 끝이 없어서 장식장 하나를 슈렉이로 채우는 이런 광경이 펼쳐. 정작 슈렉이는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만.




슈렉이는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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