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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Nov 22. 2021

슈렉이의 선물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 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라야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일방적인 사랑을 듬뿍 담아 꿋꿋이 슈렉이 이야기를 썼다. 처음 시작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함께 한 에피소드가 20개 정도는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번이 20번째 글이다.


이 글들을 쓰는 동안 지난 10년간 나의 iCloud에 잠자고 있던 슈렉이 사진을 꺼내보고 그때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을 통해 슈렉이와 보낸 시간을 회상해 볼 수 있었고, 충분히 행복했다. 심지어 내 머릿속에 있던 슈렉이와의 추억들을 모두 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있으며 언젠가 슈렉이가 우리 곁을 떠낼 때가 오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은 후련함이 있다. 슬픔과 별개로 말이다.


슬리퍼만큼 작았던 베이비 슈렉이 3개월/ 12개월 때 모습(눈썹이 별모양)


글을 쓰면서 슈렉이가 더 좋아졌고, 애틋해졌고 신경이 쓰였다. 사실, 지난 10년을 한결같이 슈렉이를 돌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진을 찾아보다 보면 사진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몇 년간의 공백이 있는데, 나 하나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던 그때 나는 강아지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규칙적으로 하던 일이 슈렉이와 걷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강아지 산책시키는 것뿐이구나.’라는 생각 밖에는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행복을 있는 그대로 누릴만한 여유가 그 때의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느라 현재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었다.


그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 생산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슈렉이 이야기를 쓰며 비로소 글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요가나 요트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지만 워낙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이다 보니, 슈렉이 글을 쓰고 나서야 발행하는 글마다 족족 수만의 조회수가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다. 그동안 조회수에는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조회수 알림이 오니까 이게 또 기분상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슈렉이와 함께 한 이후로 다른 강아지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공감하듯이, 글쓰기는 굉장한 자존감을 가져다준다. 내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 기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상황을 해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김민섭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 언어를 갖게 된 후에는 무서운게 없어지는 것 같다’며, 상황을 내 언어로 통제하고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슈렉이를 만나 비로소 나는 현재를 살게 되었다. 인간의 것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살고 있는 강아지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낭비할 새가 없다는 것, 매 순간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그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나는 쓰는 사람의 강인한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이 두가지가 바로 슈렉이의 선물이다.


우리는 교감 중


그동안 슈렉이와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또 올게요^^)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슈렉이 이후에 태어난 동생들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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