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언니 Oct 04. 2021

폭풍성장 중


강아지는 간식을 눈으로 찾을까? 코로 찾을까?


슈나우저는 청각 신호 수용에 취약하기 때문에 시각적 신호로 정확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슈렉이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발로 굴리면 사료가 한 알씩 나오는 노즈워크용 장난감이 하나 있다. 장난감에서 사료가 나오는 게 내 눈에는 뻔히 보이는데, 슈렉이는 보지 못하고 굳이 킁킁킁 냄새를 맡아서 찾아내 입에 넣고 있었다. 그래서 노즈워크 장난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본 이후로 슈렉이는 원래 눈이 안 좋은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책을 나가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강아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자기를 봐달라고 짖기 시작한다. 그런 걸 보면 눈이 안 좋은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참 희한한 일이다.


며칠 전에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하얀 말티즈를 본 슈렉이가 같이 놀자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 강아지가 슈렉이를 못 본 척 쌩 지나갔다.


‘새침한 아가씨인가보네. 우리 슈렉이 할배 냄새나서 그냥 지나가는 건가?’


라 생각하며 나는 살짝 삐졌지만, 슈렉이는 굴하지 않고 하얗고 작은 강아지를 줄기차게 따라가며 냄새를 맡았다. 그제야 흰둥이도 고개를 돌려 슈렉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눈이 안보여요. 14살인데, 백내장이 빨리 왔어요.”

“어머, 그렇구나. 가엾어라. 그래서 그냥 지나간 거였군요.”

“네, 수술을 시켜줄까 했었는데, 워낙 눈이 약하다고 안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요.”

“그래도 너무 씩씩하게 산책도 잘하고 예쁘네요.”


처음 보는 상대 견주와 나는 강아지 노화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하는 대화를 한참 나눴다.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사는, 그러니까 더 빠른 속도의 시간을 사는 강아지들은 노화의 속도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개의 성장은 사람보다 빨라서, 생후 첫 1년 사이에 인간으로 치면 열두 살이 될 만큼 큰다고 했다. 이후의 강아지의 1년은 인간의 4~6년이라고 하니, 개 나이로 열 살은 인간의 육십에서 칠십세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슈렉이의 어릴 때와 지금의 모습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1살 어린이의 에너지 발산의 예시

가장 크게는 산책의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많은 에너지를 발산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강아지처럼 통통통 경쾌하게 걷거나, 토끼처럼 촐싹촐싹 뛰어다녔다면, 요새는 뒷짐 지고 걷는 양반처럼 천천히 걷는다.


“어머 얘는 어쩜 이렇게 의젓해요? 우리 애는 이렇게 천방지축인데.” 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늙어서 만사 귀찮아서 그래요. 11살이거든요” 라 대답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창밖을 내다보면서 지나가는 사람, 지나가는 개 모두에게 그렇게 참견을 하며 짖어댔었다. 이제는 창밖을 쳐다보고도 그냥 무료한 듯 기지개나 켤 뿐이다.


11살 노견은 창 밖 한 번 보고, 재미없어서 기지개 한 번 켜고/ 요가의 다운독 자세에 주목!

슈렉이는 엄마랑 살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생활을 해서인지 생활패턴이 아주 노인스럽다. 한 번은 부모님께서 1박 2일 여행을 가시게 되어, 내가 부모님 댁에 가서 잔 적이 있다.


마침 주말이었고,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내일을 가진 나는 그 밤을 맥주와 넷플릭스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9시부터인가 슈렉이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불러도 오지 않는 슈렉이는 딱 자기 침대에 가서 자고 있었다. 같이 놀자, 먹을 것을 달라 그런 것도 없다. ‘10시니까 나는 잔다.’ 이거였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나의 꿀맛 늦잠 따위 관심 없다는 듯, 바닥에서 침대로 1차 점프, 침대에서 내 배 위로 2차 점프를 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나를 깨웠다. 배고프니 밥을 달라는 게다. 벌떡 일어나서 밥 차려 먹이고 바로 산책을 다녀왔다. 내 소중한 주말 아침은 그렇게 사라졌다.


나중에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개들은 본래 안정된 생활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안정된 장소, 안정된 기후, 안정된 냄새, 그리고 안정된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개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인간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모든 것이 키우는 반려견의 리듬에 맞춰지고 규칙적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슈렉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드니 할아버지 색깔이 되었다. 우리 슈렉이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에 집에 올 때만 해도 새까맣고 새하얀 털의 블랙엔 화이트 대비가 너무나 아름다워 ‘어쩜 이렇게 고급스러울 수가 있는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베이비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염색 물 빠지듯이 털색이 연해지더니 진회색 강아지가 되었다. 기분 탓인지 중간 중간에 흰머리도 나는 것 같다.


3개월 vs 11살, 많이 컸죠?

빠지는 것은 털의 검은 물만 아니니, 근육도 마찬가지이다. 슈렉이가 양 손에 들어가던 베이비 시절에는 세면대에 올려놓고 목욕을 시켰었다. (지금은 욕조 안에서 시킨다.) 내 팔을 지지하고 두 발로 섰을 때 다리에 선명히 드러나는 근육들을 보면서 ‘어머 얘 봐, 근육이 있어!’라고 말하던 것이 기억나서 슈렉이 다리를 만져봤는데 그런 울퉁불퉁한 젊은이의 근육은 더 이상 없는 듯하다. 나이 들면 근육이 빠지는 것은 개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나보다. 그나마 하루에 4번 산책을 해서인지, 철저한 식단관리를 해서인지 똥배가 안 나오는 것이 용한 일인지도 모른다.


슈렉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그래서 그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글을 쓰면서 슈렉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많이 남겨놓지 못했다는 것, 인스타그램 따위에 관심 없는 게으른 사람이었다는 걸 후회하고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의 모습이라도 남길 수 있음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P.S. 마지막 영상은 1살과 11살 슈렉이의 계단 오르기 비교 체험.


1살: 한 번에 두 칸 점프 VS  11살: 양반처럼 걷기



이전 18화 네 번 산책하는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