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춤 삶의 춤

영화 <어나더 라운드>

by 씨네진

스무 살 무렵 열병처럼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고 또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이 말하는 병이 '고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었다. 절망이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절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잃은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절망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어나더 라운드>는 바로 그 절망의 문을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열어젖힌다.

“사랑의 꿈을 꾸는 한 젊다는 것을 의미한다.”

– 키에르케고르-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젊음이란 꿈이다. 사랑은 그 꿈의 내용이다." 실존의 깊이를 품은 이 문장을 영화의 서두에 둔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단순한 음주 코미디가 아님을 예고한다.



영화는 삶에 지쳐 열정을 잃은 네 명의 고등학교 교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조차 잊은 듯한 얼굴로 살아간다. 수업은 지루하고, 학생들은 무기력하다. 삶의 동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저녁, 그들은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라는 심리학자의 가설에 흥미를 느낀다. “그 정도의 알코올 농도가 유지되면 사람은 창의적이고 활기차진다.” 그 말에, 마르틴은 실험을 시작한다. 그의 수업에 웃음이 흐르고, 가족과의 관계에도 온기가 돈다. 친구들도 실험에 동참하며, 모두가 ‘덜 채워진 삶’에 술이라는 윤활유를 붓는다.


그러나 술은 양면적인 존재다. 약이면서 독이다. 영화는 알코올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삶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술도 그렇다.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기쁨은 중독으로, 해방은 파멸로 기울어진다. 체육 교사 토미는 결국 중독에 무너진다. 반면, 마르틴은 절망을 통과해 스스로를 다시 만난다.


<어나더 라운드>는 중년의 권태와 무력감을 짚어낸다. 동시에 청춘의 열정을 다시 불러낸다. 술은 그 수단일 뿐, 진짜 회복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네 교사의 심리 구조는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겪는 실존의 균열은 한 줄기로 모인다.


마르틴은 무기력한 남편, 지친 교사로 자신을 상실한 인물이다. 니콜라이는 실험을 이끄는 이론가지만, 감정에 쉽게 무너진다. 토미는 아이들과의 유대를 가장 잘 맺지만 결국 삶을 견디지 못한다. 피터는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현실에 회의적이다. 이들은 모두 사랑의 결핍과 정체성의 위기에 처한 중년이다. 술은 그 위기를 뚫고 나아가는 시도이자 도피의 수단이다. 하지만 결국 마르틴은 춤을 선택한다. 술이 아닌 몸, 생각이 아닌 감각, 절망이 아닌 생의 리듬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르틴이 젊은 제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그것은 단순한 해방의 몸짓이 아니라, 절망 이후의 부활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 춤에는 삶을 통제하려 애쓰던 태도를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어떤 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실패했지만 괜찮다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듯 춤을 춘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장면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나란히 놓는다. 조르바가 탄광 사업에 실패한 뒤에도 기꺼이 춤을 추듯, 마르틴 역시 무너진 삶의 끝에서 다시 몸을 흔든다. 춤은 끝의 선언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의 고백이다.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춤출 수 있다.” 그 말은 이 영화의 숨겨진 주제가 아닐까.


<어나더 라운드>에서 술은 단지 이야기의 장치일 뿐이다. 진짜 주제는, 실존의 권태와 그로부터의 회복 의지다. 절망은 피할 수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무너진 자신과 마주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 속에서 다시 사랑하고, 다시 웃고, 때로는 춤출 수 있다.


삶은 늘 통제 밖에 있다. 예측할 수 없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함께하는 순간의 기쁨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비극을 견디는 방식이며, 여전히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이유다.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는 이 영화를 딸 ‘이다’를 위해 만들었다. 이 작품은 원래 이다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녀는 촬영 4일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모두 그녀의 학급 친구들이다. <어나더 라운드>는 단지 중년 남성의 알코올 실험기가 아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만든, 한 편의 애도의 춤이다. 절망 속에서도 춤추기를 선택한 자의 영화다.


우리는 불안해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사랑한다. 그렇게 절망을 통과해야만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절망은 삶의 징검다리같이 존재하는 장매물이면서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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