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 살이 되던 무렵에 부모님은 마침내 이혼을 했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십수 년에 걸쳐 갈등이 쌓여왔기 때문에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이 항상 부끄러웠다. 같은 반 아이들이 가족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특히 더 움츠러들었다. 나에게는 가족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년기 시절에도, 스무 살이 넘은 어른이 되어서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것이 나의 아주 큰 결함이라 느껴졌다. 나쁜 습관이 생기거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함 때문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마음이 맞아 가깝게 지내게 된 여러 지인들의 가정사를 듣게 되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았던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정이 화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은 화목하지 않은 가정이 훨씬 더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집단이 우연히 그랬던 건지, 아니면 비슷한 경험을 거쳐온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특히 더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성격이 아주 온화하며, 사교성이 좋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들의 존재였다. 가정사를 들어보면 내 경험을 몇 배나 상회할 정도로 몹시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셨음에도 그토록 부드럽고 따뜻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완전히 끊어 내지 못하는 혈연 때문에 가족과 관련된 문제가 터질 때 마다 고통스러워 하시긴 했다. 하지만 현재 그 분의 주변은 친구가 됐든, 연인이 됐든, 동료가 됐든 당사자 만큼이나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사회적 관계가 화목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저토록 사회적 관계를 화목하게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의 화목하지 않은 가정 콤플렉스에 의문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사와 상관없이 다들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잘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장환경이 개인의 인격 형성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건강한 사회성을 갖추지 못하게 된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던 사례들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한 경험은 큰 충격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렜다. 그런 분들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나쁜 점을 가정사와 연결 짓는 습관이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렇게 나는 길고 길었던 화목하지 않은 가정의 주박에서 마침내 풀려날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혈연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완전히 운에 의해 결정된다. 거기에는 나의 어떠한 의사 결정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책임 또한 없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사는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운이 나빴던 거라고 생각하고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두기 위해 신경 쓰는 편이 낫다. 혈연은 선택할 수 없지만 관계는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