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고 두 시간 걸리는 지역에 우연치 않게 모여 살게 된 대학 친구들과 후배를 만나러 갔다. 단톡방에서만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던, 줌마인 듯 줌마 아닌 사람들이 환상 속의 인물들이 아님을 묵직한 분위기의 백화점 밥집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입학식 날부터 대학 4년 내내 커플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는 신발을 덮는 린넨 트라우저를 입고 있었는데, 내가 바지단을 들어 올려 샌들 굽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 볼 정도로 여전한 다리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찌나 관리가 잘 되었는지 20대 때 보다 더 군살 없는 몸에 편안하고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여행 대신 안방에 시몬스 더블 베드를 들여놓아 잠자리를 분리해서 편하게 자고 있다고 했다.
학부 졸업 후 전문직 양성 대학교에 재입학한 다른 친구는 아직도 주 5일 근무를 9 to 6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 회사의 대박으로 백억 주식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몇 년 전에 들었었는데, 백억 부자 맞냐고 할 정도로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수수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근황토크에서 자신은 백억 거지가 되었다고 하면서 작년에만 세금을 십억 현찰로 내서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이 부부도 아이들이 다 커서 대학교 근처에 사니 빈방이 생겨 서로 저 방 가서 자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후배 한 명은 소위 잘 나가는 과의 사모님인데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명치끝이 무거워졌다.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벤트들의 연속이었다. 교류하는 사람들이 백억 대 자산가들이라 우리 셋은 입을 떡 벌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른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귀를 쫑긋 하고 들었다.
단짠단짠 하는 생이 아니라 단짠짠짠 하는 짠내 폴폴 나는 얘기들을 듣고 나니 쉬운 인생 하나 없구나 싶으면서, 갑 오브 갑은 자기가 능력 있어서 자기 노동으로 돈 버는 사람이고, 거기에 플러스 친정집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노동 가능한 연령으로 집계될 때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