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거리: 2478.68km, 누적시간: 504시간 28분
표지사진: 서울시 여의도동 여의하류 IC, PM 21:42
저의 1년 걷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글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낮 동안은 한참을 자고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몸은 무겁고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큰일이다. 오늘 여러 계획 중 가장 중요한 ‘걷기 전,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출발하기’를 실천하지 못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아니, 진짜 출발하려고? 꼭 그래야 돼?
아내의 걱정 반, 체념 반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렸다. 아빠, 꼭 가야 하냐고 딸아이마저 만류다. “응, 가야 해. 그래야만 아빠 이야기가 완성이 되거든.” 아무도 관심이 없는 내 이야기를 왜 완성해야 하는지 묻는 말에 더 이상 대답을 하진 않았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오늘 나의 미션은 ‘진짜, 리얼, 오리지널 미친 짓’이다.
누가 종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잠도 못 자고 쉬이 출발도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오늘 하루를 넘길 것 같아서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처럼 무심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섬주섬 걷기에 필요한 용품들을 챙겼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빠, 진짜 다녀올게. 잘 갔다 올게
아이고,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마치 비장한 전쟁터에 나가는 모양새로 포옹을 하고, 어깨 툭툭 두들겨주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에서 시간을 재고, 걷기 프로그램을 켰다. GPS가 가동된다. 그리고 출발 사진을 찍었다. 24년 6월 6일, 저녁 8시 42분. 오늘 나는 ‘나의 1년간 미친 듯이 걷기’의 마지막 미션으로 ’24시간 잠 안 자고, 쉬지 않고‘ 걷기에 나섰다. 어디 플래카드라도 만들어서 걸어 놓을 정도로 이름도 멋지게 지었다. ‘24 Hours Nonsleep, Nonstop’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얼마큼 걸어야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내일 밤 8시 42분까지, 24시간을 쉬지 않고 걷기만 하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잠을 못 자고 출발했다는 거, 최소한의 목적지도 불분명하다는 거, 그리고 나는 지금 엄청 피곤하다는 것이다.
진짜 큰일이군.
스스로에게 정말 큰일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걷기의 마지막은 진심 비장해야 하고 의지가 굳건해야 하는데, 나는 출발도 전에 패장(敗將)의 모습이었다. ‘꼭, 24시간을 걸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찌질한 생각이 벌써부터 들었다.
마음을 잡기 위해서라도 외부에 선언을 해야 했다. 쪽팔려서라도 마지못해 걸을 수 있도록, 얄팍한 동아줄 같은 것이 필요해 보였다. 우선 실시간으로 SNS에 출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비장의 카드, 회사 사장님께도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는 내가 미쳤지 싶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거든.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나는 미친놈에서 대단한 놈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엔 만류했던 지인들도, 나중에는 나의 지독함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식구들도 그렇게 바뀌어 갔다. 몇 번 걷고 그만둘 거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그들은 나의 행보에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나 스스로가 걷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통해 알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응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여남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쉬지 않고 걸으려면 가장 평안한 곳으로 걸어야 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신호등과 같이 강제 끊김이 없어야 했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크게 고민은 되지 않았다. 평지를 걷거나, 오래 걷거나 또는 야밤에 걷기에도 ‘한강’밖에 답이 없었으니까. 우선 마포대교를 통해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강서구 개화동과 고양시를 연결하는 행주대교까지 갔다가 북단으로 건너서 다시 마포대교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어디로 갈지는 그때 고민하기로 했다.
여의도 한강 둔치에는 돗자리를 깔고 쉬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밤중이라 해도 국회의사당은 해처럼 밝았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같이 맑았다. 한강공원 포플러 나무 사이로 걷는 길이 그렇게 좋다. 졸린 기운이 살짝 오기는 했지만 막상 걷다 보니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아직은 모든 게 괜찮았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가양동을 지나 행주대교로 걷다 보면 운동하는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경기도 김포시의 접경 구역이라, 사람은 없고 갈대만 가득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한낮에도 걷는 사람이 없는데, 밤에는 오죽하랴. ‘어쩌지? 이 야밤에,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이 맞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 큰 어른이 무엇이 무섭겠냐만은... 사실 무섭다.
아무래도 행주대교까지 걸을만한 이유가 딱히 없어 보였다. 그곳은 옛 전투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장소고, 어쩌면 원한에 가득 찬 귀신들이 잔뜩 있을 수도 있다. 음… 어차피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괜히 행주대교까지 가서 귀신에게 해코지당할 이유는 없었다. 행주대교까지 가지 않을 거면 그 이전의 방화대교까지도 걸을 이유는 없다. 방화대교는 인천공항길이라 오직 차량만 이동이 가능하고 걸어서 건널 수가 없다. 나는 방화대교 가기 전, 마곡대교까지 걸은 다음 다시 가양대교로 돌아와 북단으로 넘어갔다.
이제 시간은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양대교 북단에서 난지도를 지나 망원, 다시 마포까지 돌아오는 길도 한적했다. 천천히 걸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걸음이 빨라졌다. 여기서 체력을 너무 소비하면 안 되는데, 무슨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속보로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멈추어 쉬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걷는 것도 아닌데 잠이 온다는 것은 ‘큰일이 났다’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일까? 살짝 헛것이 보였다. 눈앞에서 멧돼지 한 마리가 어슬렁 거렸다.
헉! 저거 뭐야? 멧돼지야?
마포대교를 지나 원효대교로 걸어가는데, 저 앞에 멧돼지 한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잠이 깨었고, 걸음을 멈추었다. 헛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나를 보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멧돼지 새끼인지 크기는 작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어미는 어쩌라고? 괜히 새끼를 건드렸다가 저 뒤에서 덩치가 산만한 멧돼지 한 마리가 돌진해 올 것 만 같았다. 잠시 근처를 둘러보다가 벤치가 있길래, 그 위로 올라가 피신했다. 멧돼지 새끼는 내 쪽으로 오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한강변 풀숲으로 사라졌다. 어미가 아직 확인이 안 되었지만, 딱히 어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다시 후다닥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녀석 동영상을 찍었는데, 걸어가면서 보니 왠지 멧돼지는 아닌 것 같다. 수달인가? 삵? 아직도 진짜 녀석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끔 한강변에 야생 너구리가 나타난다고는 쓰여 있었다. ‘어이쿠, 그냥 여길 빨리 벗어나자.’ 이촌동을 지나 반포대교까지 왔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 가장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이다.
쉬지 않고 걷는 중에도, 딸아이가 나의 생사여부 확인차 시간 단위로 계속 전화를 했다. 아빠가 걱정된다고, 길 가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냐면서 불안이 가득하다. 걱정 말라고, 여기 운동하는 사람들 많다고 안심을 시켜줘도, 또 한 시간이 지나면 전화를 했다. “아직도 안 자? 새벽 3시가 넘어가는데 얼렁 자야지!” “아니야, 아빠 걷는 게 걱정되어서 잠이 안 와” 효녀 심청이 따로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것은, 정말 잠이 쏟아질 때마다 전화가 걸려 온다는 것이다. 몽유병 환자처럼 한강을 걷고 있는데, 게다가 주변 사람도 없다 보니 여러모로 딸아이의 전화가 생명수처럼 느껴졌다.
새벽 4시 30분이 지나면서 하늘에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로등 불빛이 없어도 앞이 훤하게 보였다. 딸아이에게 전화가 또 왔길래, 날이 밝았으니 걱정 말고 자라고 했다. 그제야 “아빠 잘 다녀오세요, 나 잘게”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이 녀석, 나 때문에 이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미안하면서도 애처롭다. 오늘 걷기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저 앞에 잠실 월드타워가 보인다. 영동대교를 지날 때쯤 다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새벽 5시, 앞으로 15시간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이대로 팔당대교까지 갈까 하다가, 잠실종합운동장의 ‘탄천’을 지나면서, 탄천의 발원지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검색을 해 보니, 그 시작이 용인 에버랜드 근처로 나온다.
지도상으로는 길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먼데?’ 끝까지 다녀오기에는 24시간이 지날 것 같고, 그 사이 대중교통으로 귀가하고 싶어도 애매한 위치에서 걷기가 끝날 것 같았다. 조금 걷다 보니 탄천으로 유입되는 양재천이 나오길래, 양재천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 싶었다. ‘그래, 양재천으로 가자.’ 지체 없이 나는 양재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회고 #1> 그래서, 뭐가 바뀌었어?
지난 1년 동안 걸으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풍경 다음으로 사람들이다. 내 앞사람의 뒷모습, 그리고 내 앞에서 오는 사람의 앞모습. 특히 걷는 동안, 나는 앞사람의 뒷모습을 평생 많이 본 것 같다. 얼굴을 마주하며 그를 골똘히 관찰하기란 쉽지가 않지만,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 자세나 몸의 형태를 통해 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다리 모양새도 다르고, 꾸부정한 사람, 덜 꾸부정한 사람. 빨리 걷는 사람, 천천히 땅을 보고 걷는 사람 등, 각자 살아온 인생만큼 수많은 몸들은 삶의 자취를 저장한 채 지구 위에서 버텨주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마치 운동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밤 중에 걷다 보면 남들 다 자는 시간에도 운동하는 사람, 새벽에 걷다 보면 그 이른 아침에 나와서 일터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각성을 얻기도 했다. 물론 그들 눈에 나는 미친놈이었을 수도 있었을게다. 뜨거운 폭염에도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보도블록을 걷거나, 때로는 폭우 속에 비를 맞아가면서 걸어 다니는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으로는 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생애동안 보도블록이나 땅의 꺼짐, 땅의 갈라짐을 얼마나 보면서 살아봤을까? 동네마다 보도블록의 생채기가 다르고 도로의 짓무름을 통해 그 동네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득한다. 나는 걷는 동안에는 동네 골목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동네는 정방형으로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골목이 큰 반면에, 또 어떤 동네는 사람 한 두 명이 서로 겹치면서 지날 정도의 크기를 지녔다. 그 길을 걸으면 누가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나는 소설을 쓴다. 누군가는 겨울마다 지게에 연탄을 짊어지어 이 길을 힘겹게 걸었을 것이고, 여기저기 동네 꼬맹이들의 구슬치는 모습도 상상이 간다. 골목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의 골목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또 하나의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보다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인생의 꼬인 생각을 자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게 되었고, 걷기를 소통의 주제로 하여 사람들과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 타인의 거주지를 마치 내 동네처럼 구석구석 돌아다닌다는 것은, 나만의 독점작을 집필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여 더욱 확장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렇게 걸어보고 저렇게 걸어봐서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엮어 지인들에게도 추천하는 일이 생겼다. 어디에도 없는 워킹 코스를 만들어 동료들을 이끌고 가이드를 해봤고, 반응이 매우 좋았다.
양재천이 시작하는 곳을 검색해 보니 지하철 4호선 ‘과천역’에 위치해 있었다. 과천은 나름 익숙한 동네지만, 양재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잘 꾸며져 있는 양재천길을 걷다가 ‘양재천근린공원’을 지나니 갑자기 도로가 협소해졌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 주변은 온통 고요하고 이제 걷는 사람은 나 혼자다. ’이 길도 참 쓸쓸하네.‘ 지금 일어난 태양은 내 등에 업혀 천천히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10시간을 넘게 걸었지만, 아직 반도 안 와서인지 힘들어할 수는 없었다.
시작부터 졸린 몸은 한참을 걸어도 깨어날 줄 몰랐다. 내내 걸으면서 졸기는 처음이다.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양재동 우면산을 빙 둘러 돈다. 하늘은 맑고 내천은 조용하다. 바글바글 달릴 것 같던 물줄기도 이렇게 게으른 녀석은 처음 봤다. 한쪽으로 잉어 떼가 푸르륵 헤엄쳐 간다. 참 많기도 하다. 물길도 없고 깊이도 없는 이곳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다 모여 살고 있을까. 예전 같았으면 이 동네가 참 풍요로웠겠다 생각이 든다. 굴곡진 곳도 없고 산 아래에 넓은 고요가 태양빛을 받아 꿈을 꾸듯 자장자장하다.
7km를 더 걸었다. 몸에 힘이 없으면 안 되는데, 이미 에너지는 절반도 남질 않았다. 집에서 챙겨 온 스니커즈를 한 입 물고, 그의 당을 내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힘이 쉬이 나질 않는다. 과천 시내가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시계가 오전 8:42분을 가리켰다. 드디어 집에서 걸어온 지 만 12시간이 된 셈이다. 마포를 떠나 여의도, 가양을 건너 다시 마포, 잠실, 양재천을 따라 과천까지 오게 되면 12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국내 최초로 내가 발견했다. ‘오! 놀라워라. 누군가 기네스북에 등재 좀 해 다오!’ 눈물겨웠지만, 사실 나는 지금 아무 생각도 없다. 그저 자고 싶었다.
양재천의 발원지는 청계천의 발원지와 크게 비슷했다. 시에서 인위적으로 설치해 놓은 곳에서 물이 콸콸콸 쏟아져 나와 내천을 만들고 있었다. 정갈하고 단순하다. 아… 양재천이 이렇게 단순한 데서 시작하는구나. 서울 시민의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을, 난 사진 한 장을 찍어 증빙으로 남겼다. 이제 걸어온 만큼 다시 걸어가면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이미 정했다. 과천에 도착하면 안양천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안양천의 발원지도 찾아가려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 마지막 여행에서 근원을 찾아 걷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먼저 고장 나는 것 중 하나가 ‘눈’이다. 나름 동년배들 중에서는 노안이 늦게 온 편이지만, 이제는 핸드폰의 작은 글씨나 그림은 잘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도를 켜고 안양천의 발원지를 찾는데 실수를 했다. 안양천을 따라 지도를 확대해 보니 발원지가 ‘백운호수’로 나왔다. 나는 당연히 호수에서 안양천이 시작된다고 믿고, 그대로 백운호수로 출발했다.
안양천은 고려 왕건에 의해 ‘안양사’가 만들어지고, 그 주변을 흐르는 하천을 안양천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 안양시는 하천을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그 후에 천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백운산 서쪽에서 발원한다. 백운호수에서 발원하는 천은 ‘학의천’이며, 안양천으로 유입되는 안양천의 지류이다.
백운호수까지는 약 8km의 거리이며, 과천 시내를 가로질러 간다. 과천시도 오래된 교육 도시 중 하나이고, 나이가 든 만큼 여기저기 재개발이 한창이다. 특히 갈현동 주택지구는 도시 전체를 뜯어고치는 듯, 도로 공사도 병행하고 있다. 고르지 않은 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발목의 힘을 가급적 풀고 보도블록의 비뚤어진 각도에 어느 정도 맞추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성큼성큼 걷다 보면 반드시 발목에 힘이 들어가고 어느 순간 삐끗해질 수 있다.
예상에 없던 도시를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걷다가 신호등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것은 쉼이 아니라 맥이 풀리는 일이다. 그 짧은 찰나를 멈추다 보면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부터 누적거리는 61km가 되어간다. 서둘러 시계를 풀어 가져온 배터리에 충전을 시작했다. 워낙 오래 걷다 보니 계속해서 가동되는 GPS 때문에 배터리가 하루를 못 간다. 지난번 10만보를 걸을 때에도 69km 지점에서 배터리가 끊겨 난감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충전기기를 미리 챙겨 왔다. 가는 길에 요기를 할 겸 김밥집을 들러 김밥 한 줄을 산다. 쉬지 않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걸으면서 먹을 생각이다. 생각보단 먹을 만했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화장실 한 번을 안 갔다. 내 몸의 수분은 전부 땀으로 배출되나 보다. 그렇게 걷다 보니 드디어 과천시를 지나 안양시, 그리고 의왕시 학의동에 위치한 백운호수에 도착했다.
백운호수를 한 바퀴 돌까 했는데, 그 거리도 3km가 넘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리지만, 이제는 안양천을 따라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빠듯했다. 오랜 시간 호수를 구경할 수는 없어서, 대충 사진만 찍고 발원지를 잘못 알고 따라온 ‘학의천’을 거쳐 안양천으로 걸었다. 집까지의 거리는 40km 정도가 남았고, 시간상으로는 9시간을 걸어야 한다. 졸린 것만 빼면 몸 상태는 아직 괜찮다. 문제는 오후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더운감을 넘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양천은 안양에서 시작하여 광명, 시흥 그리고 금천으로 흘러 성산대교 한강으로 유입된다. 하천의 길이가 총 32km라고 하니, 성산대교에서 집까지 대략 7~8km인 것을 보면 앞으로 남은 거리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작년 7월 즈음, 문래동을 탐방하면서 안양천을 처음 걸어 본 적이 있다. 저녁 시간대였는데, 아직도 그 백합꽃길이 기억에 난다. 안양천은 봄이면 벚꽃으로 군락을 이루고, 7월이면 백합이 온 길에 향기를 내려 밤이면 천국길이 따로 없다. 오늘은 그 아름다웠던 길이, 점점 고행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김밥 한 줄로 에너지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어쩌랴. 안양천길에는 편의점이 단 한 군데도 없었고, 광명까지는 화장실도 안보였다. 그러니 물도 마시지 말고 그냥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2시가 넘으면서 태양은 극도로 뜨거워졌다. 게다가, 가는 길에 그늘도 없다. 항상 걸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시와 시의 경계는 늘 허허벌판이고 쓸쓸하다. 안양에서 광명으로 넘어가는 안양천길은, 특히 여름 한낮에는 절대 걸을 길이 못된다.
안양천을 따라 광명시에 도착하니 드디어 그늘 구간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이어지는 ‘금천고가교’가 안양천 위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그 위치적 특성을 살려 편의시설들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한 동안 안 보였던 화장실도 1km 간격으로 있었고, 여기저기 운동하는 사람들과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복작댔다. 화장실에 잠시 들러 머리에 물을 한 바가지 적셨다. 아… 이제는 정말 못 걷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누적 83km 구간, 남은 시간은 5시간이다.
눈이 훽 돌은 건가? 먹을 것도 없고 오랫동안 참으니 먹고 싶은 마음도 안 난다. 그저 자고 싶을 뿐이라고 되뇌고 되뇐다. ‘에휴… 진짜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들, 어차피 집은 들어가야 했고 버스 정류장도 한참이다. 길가에 벤치를 보면 딱 10분만 자고 가고 싶었다.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면 확! 뺏어서 타고 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집 근처에서 어디 들어가서 한두 시간 자고, 8시 42분에 맞춘다고 해도 정말 아무도 모를 텐데. 그렇게 할까? 정말 온갖 말도 안 되는, 유혹 같지도 않은 유혹들이 머리를 윙윙대며 날아다녔다. 정말 한숨도 안 자고, 쉬지 않고 걸어서 83km는 마의 지점이었다.
<회고 #2> 그래서, 뭐가 바뀌었어?
1년간의 걷기를 끝내고 나니 몇몇 분들이 축하를 해 주셨다. 그리고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 시작할 때, 1년간 미친 듯이 걸으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궁금해했잖아. 그래서 뭐가 바뀌었어?“
사실 나는 한 동안 대답을 하질 못했다. 나 또한 그 질문의 답이 무척 궁금했다. 막상 1년이 지났는데 무엇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살이 특별히 많이 빠진 것도 아니고, 건강해졌나?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마침 걷기가 끝나는 그 달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이건 뭐지 싶었다. 답을 찾아서 멋지게 엔딩을 맺고 싶었는데, 정말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한동안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1개월 정도가 지나니 그 해답이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눈을 감고 지난 1년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행복했다. 걷는 것 자체가 좋았고, 걷고 나서 다음에 또 걸을 생각을 하니 좋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도 행복했다.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 연재를 하는 과정이 기다려졌다. 지금까지도 1년이 훌쩍 지난 그 거리, 그 골목, 그 날씨와 풍경들이 정말 잊히지 않는다. 내 발로 걷고, 내 땀으로 적셨던 그 동네와 그 길은 아직도 잘 있을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제 나를 보면 걷는 이야기를 한다. 나 때문에 걷기 시작한 분들도 생겼다. 나는 의학적 지식이 아닌 체험적 경험을 가지고 걷는 이야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Q. 오래 걸으면 살이 빠지나요?
A. 아니요, 걷는 것보다 더 먹으면 안 빠집니다
Q. 많이 걸으면 무릎이 나간다는데, 어떠셨나요?
A. 무릎이 나간다고 하신 그분은 저처럼 오래 걸어보고 말씀하시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Q. 걸으면 건강해지나요?
A. 모르겠습니다. 다만 행복해집니다. 원래 무릎이 안 좋으신 분들은 오래 걸으면 더 안 좋아집니다.
나중에 따로 걷기 Q&A만 묶어서, 또 다른 책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래 걸으면서 나만의 타이틀도 생겼다. 1년간 2500km 달성, 석 달간 1000km 달성, 하루 10만 보 달성, 하루 100km 달성, 24시간 논스톱워킹 달성, 하루 1만 kcal 빼기 달성 등… 내가 스스로 만든 타이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 누구도 베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느낌은 이런 건가 싶었다. 100km를 최대한 단시간 내에 돌파하는 일은, 어쩌면 더 쉬운 일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리와 상관없이 24시간을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고 걷는다는 것은 체력뿐만이 아니라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이런 미션을 나는 왜 생각했을까? 아마도 작년 10월, 산을 세 개나 타면서도 79km, 10만 4 천보를 걸었을 때 그런 자신감을 가졌었나 보다. 당시에도 무척 힘들었지만 ‘만일 내가 산을 타지 않았더라면, 좀 더 걸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객기가 시작이었다.
안양천을 빠져나와 구로역으로 향했다. 성산대교에서 한강변을 타고 마포로 가지 않고, 구로를 지나 영등포, 여의도를 통해 집으로 가려고 한다. 가는 도중, 구로역 부근에서 엄청 헤맸다. 길을 한 번 잘못 들어섰는데, 다시 한참을 돌아 나와야 했다. 모로 가도 영등포로 빠지면 되는데, 구로역 부근은 그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걷는 동안 후회를 많이 했다. 너무 힘든 건 고사하고, 정말 5분만이라도 어디 앉아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럴 수는 없었다. 나와의 약속이자,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 딸아이가 계속 전화했던 지난 새벽도 꿈만 같다. 신도림역부터 집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거리보다 걸어야 할 시간이 더 남아서, 아주 천천히 곧은길이 아닌 구불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고 나서야 집 현관에 도착하니 23시간 53분이 나왔다. 남은 7분? 상관없었다. 그 7분을 못 지켰다고 탓할 사람은 없었고, 나 또한 너무나 만족했다. 나는 기절하듯이 힘들었지만 쓰러질 듯이 행복했다. 나의 1년 걷기 마지막 프로젝트를 이렇게 완성 지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게임만 한다고 구박하던 그때, 아내의 잔소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었을까? 아내의 잔소리가 처음으로 고마웠다.
- 끝
지난 1년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함께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항상 기어나간다고 잔소리는 했지만 끝까지 지원해 준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고맙습니다. Like Crazy라는 컨셉으로 1년에 하나씩, 그 첫 번째 프로젝트 ‘나는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를 완료합니다. 이제 두 번째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 년에 하나씩, 10년간 10개의 라이크 크레이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나는 10년 뒤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정말 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