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199.35km, 오늘: 7.86km, 걸음 수: 10,923
표지사진 | 서울 종로구 신영동 ‘255살 느티나무’
선배님! 아무래도 우리가
산을 잘못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날따라 길이 유난히 미끄러웠다. 봄이 온 듯하여 가볍게 나섰건만, 산길은 녹지 않은 눈으로 질척거려 자꾸만 미끄러졌다. 회사 후배가 웃음 띤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다. “이쪽 길이 맞겠죠? 하하”
지난해 가을부터 회사 동료 3명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 21개 구간을 정복 중이었다. 몇 날에 걸쳐 하루 약 20~25km를 걸으며 네다섯 개의 코스를 공략해 왔다. 그렇게 20개 구간을 완료하고, 마지막 21 구간 '우이령길'만 남겨둔 채 올해를 맞이했다.
우이령길은 6.5Km밖에 안되니까,
코스를 크게 잡아 볼게요!
북한산 둘레길의 하이라이트 ‘우이령길’은 예약제로 운영되었다. 가는 날, 이상하게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봄이 오는 겨울 끝자락의 우이령길은 얼음이 녹아 진창에 가까웠다. ‘아! 이래서 예약한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좀 날이 지나서 왔어야 했나 보다, 생각했다.
결국, 문제는 우이령길이 아니었다. 우이령길의 끝은 경기도 ‘송추’로 연결되었고, 우리는 한참을 돌아 뜻밖의 북한산 ‘비봉’을 넘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워메~ 여기가 어디다냐?’
속으로 한참을 욱하며, 미끄러지고 엎어지듯 북한산 얼음길을 기어올랐다. 그나마 그 반대편은 남향이라 태양빛에 산길이 말라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내려오니 ‘구기동’이다.
말로만 듣던 구기동을 얼떨결에 만났다. 북한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니, 언젠가 책에서 본 ‘이북5도청’도 보인다. ‘이런 곳이 있었네?’ 하며 신기해하는데, 이미 오후가 한참을 지나버렸다. 여기, 나 혼자서라도 다시 와야겠다 마음먹은 후, 그날은 그렇게 회사 동료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만에 다시 구기동을 찾았다. 지도를 찾아보니 구기동 절반이 산이다. ‘이걸, 어떻게 코스를 잡아야 하나…’ 우선, 구기동 아래 ‘신영동’부터 걷기로 했다. 백사실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는 곳, ‘세검정’ 일대의 정취가 너무나 좋은 동네이다.
세검정초등학교 정거장에서 내려 육교를 통해 신영동으로 건너갔다. 북한산 기운이 차고도 넘쳐, 구기동을 채우고도 남은 공기가 신영동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낮은 산자락에 단정하게 앉은 집들은 오래되었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 조용한 바람이 모든 집들을 방문하고, 다시 서울 시내로 흐른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밝다.
신영동(新營洞)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새로운 막사를 세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구기동(舊基洞)이 ‘옛 군사 막사’를 뜻하니, 서로 이웃하면서 새것과 옛것의 의미를 나누어 갖고 있다.
동네길은 고요했다. 세검정과 백사실 계곡 인근이라 집들 면면이 자연이다. 오래된 길과 그 옆에 세워진 새로운 건물도 감정을 다채롭게 한다. 마을 한가운데로 가니, 250년이 훌쩍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창공을 찌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가늘게 다이어트한 몸으로 서로 한들거리며 눈을 어지럽히는데, 너무나 좋았다.
골목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좁은 길을 찾아 걸었다. 내 몸 두세 개가 부딪히며 걸을만한 사잇길이다. 흰 담장에 ‘양심’이 묵직하다. 쓰레기 하나 없이 골목길을 지키는 것 같았다. 품격에 인사를 하고 빠져 내려오니, 저 위로 ‘구기터널’이 보인다. 이제 구기동으로 간다.
구기동은 구기터널 입구 옆으로 길게 뻗은 동네이다. 동네는 한눈에 봐도 매우 작고 아담하다. 집들은 ‘여기가 진정 부촌’이라는 듯, 단정하고 단단하다.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평지가 아닌 대체로 오르막이다. 크게 비탈지지는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구기동 계곡물이 아주 맑다.
구기동(舊基洞)은 서울 종로구 북서쪽 끝자락, 북한산 자락 아래 자리한 동네다. 행정동상으로는 부암동에 포함되며, 백사실계곡과 구기터널, 세검정로 등이 이 지역을 가로지른다. 이름은 조선시대 훈련도감이 설치한 군영(군사기지)의 ‘옛 터’에서 유래되었으며, 바로 인접한 ‘신영동(新營洞)’은 이후 새롭게 조성된 진영을 뜻한다.
구기동의 절반 이상은 산지로, 전체 면적 대부분이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덕분에 서울 도심에서는 드물게 숲과 계곡, 옛 골목이 공존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과 고급 주택이 어우러진 이곳은 과거부터 외교관, 예술가, 정치인의 거주지로도 유명하다.
백사실계곡의 물소리와 세검정 일대의 한적한 풍경은, 걷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가라앉힌다. 도시 같지 않은 서울, 그 속에 구기동이 있다.
북한산 ‘비봉’으로 이어지는 왼편의 산길과, 구기동 ‘구기계곡’으로 올라가는 오른쪽 등산로가 마을 전체를 이룬다. 그 길 양 옆으로는 오래전 지은 빌라와 새로이 지어진 단층의 아파트들이 낮게 깔려 있다. 등산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냄새 없이 때깔이 좋다.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우렁찰 듯 상상이 간다.
대략 20분만 둘러봐도 마을을 지나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동네 한 바퀴를 뱅 둘러 돌까 하다가, 구기동에 왔으니 ‘구기계곡’은 꼭 봐야겠다는 심산이 생겼다. 누구보다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리 높지 않은 길이라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그래! 여까지 왔으니, 전부는 아니어도 딱, 계곡까지만 올라가 보자.’
계곡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여기가 ‘계곡’이라는 증명은 충분했다. 마른 돌덩이 사이로 흐르는 물, 양 옆으로 깎아지른 협곡이 종종 그것을 말해준다.
등산길 군데군데 스러진 고목나무도 인상적이다. 산 자체가 매력덩어리지만, 이곳을 지켜온 그들도 다양한 몸짓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 인위적이지 않은 꺾임 그 자체는, 나무의 인생이다. 그의 삶을 다 하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제 몸은 썩어서 다음 세대에게 자양분이 되고 주고 있다. 새 봄을 기다리는 숲의 정령들이 산새 소리를 따라 어슬렁 거리는데, 귀가 즐겁다.
간혹 보이는, ‘부부인가?’ 싶은 다정한 남녀 등산객이 때로는 부럽다. 혼자 걷는 것은 사색을 위한 최고의 조건이다. 하지만 호적한 길은 둘이 같은 기억으로 만들어, 늘그막이 추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렇게 많이 걷지 않았어도, 지도를 보니 거의 ‘구기계곡’의 정점까지 걸어왔다. 20분도 채 걸리지 않은 듯. 처음에 상상했던 ‘폭포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맑은 물엉덩이만으로도 좋았다. 걷기에 좋았고, 가슴에 찬 그의 숨공기가 좋았다.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폭포수를 찾아 올라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되었다. 겨울에도 말라버린 떼창의 물줄기는 다음 여름에나 기약해야겠다. 이쯤에서 뒤돌아 다시 걸어 내려오는데, 태양도 슬슬 정점에서 내려앉는다. 퇴근 준비하느라 신이 나 있다.
작지만 멋진 구기동을 전부 다 훑지 못해 아쉬웠다. 구기동의 지도를 펴면 왼쪽 머리 끄트머리에, 많은 단독 주택들이 보인다. 산의 정기를 지붕으로 받아 집 내면으로 받아들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건강해질까? 클래식 같은 삶이다. 때로는 비가 와도 집 안의 난로 같은 것을 켜 두고, 조용한 음악에 책 읽는 상상을 한다.
다시 원래 왔던 길로 내려왔다. 올라오는 길에 눈여겨봤던 유일한(?) 동네 카페에 들어갔다. 주인장께서는 예술에도 관심이 많으신지, 1층에서는 커피를 팔고 2층은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었다. 구기동에서의 마지막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영혼에 쌓인 때가 많은 나의 가슴을 한 점의 그림이 천천히 씻어 내리고 있었다.
- 제1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