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228.48km, 오늘: 18.73km, 걸음 수: 19,636
표지사진 |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언덕배기’
아직 그 동네가 남아 있을까?
후다닥 검색을 해 봤다. 이런… 이제 거의 철거 결정이 나고 곧 재개발을 들어간다는 소식이 떴다. 그리고 방문객을 사절한다고 하던데. 꼭 마지막으로 가 보고 싶은 동네, 중계동의 ‘백사마을’이다.
’10년도 더 되었으려나?‘
중계동의 ‘백사마을’은 매년 회사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던 곳이다. 사실 그때는 백사마을이라는 장소를 몰랐다. 일 년에 한 번 ‘의무’ 봉사 활동을 다녀와야 하는 이유 말고는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회사 단체 버스를 타고 자다 일어나면, 그냥 어떤 마을에 도착해 있었을 뿐이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백사마을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일대에 위치한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1960년대 말, 청계천·창신동 등지의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형성된 마을로, ‘산 104번지’라는 지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부에서는 마을 뒤편의 흰 모래 언덕에서 ‘백사(白沙)’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정식 기반시설 도입이 어려워졌고, 이후 수십 년간 도시 외곽의 빈곤주거지로 남았다.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가 많아 겨울철 연탄 봉사활동이 자주 이루어졌고, 방송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널리 알려졌다. 2009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23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거쳐 2025년부터 본격 철거가 시작되었으며, 2028년까지 2,400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는 대부분 이주가 완료된 상태로, 일부 주민만이 남아 있다.
그러다 이후에도 한두 번 더 나간 뒤부터는 그때 그 동네 골목길, 쌀을 냉큼 두 번이나 더 받아가려던 그 아저씨, 그리고 허리가 휘어 높은 언덕배기 길을 따라 오르던 그 할머니가 유독 기억에 많이 남았다. 연탄 봉사며 쌀 배달을 할 때면, 젊은 기운에 남들보다 두세 배쯤은 더 들고 다녔었는데. 왕성한 혈기에도 불구하고 땀이 줄줄줄 흐르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을 구석구석 걷다 보니, 잊혀 가는 옛 마을을 찾는 일에 점점 더 많은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백사마을’은,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기에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때 그 기다랗던 언덕배기 길을, 없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꼭 밟아보고 싶었다.
노원구 중계동은 입시 학원가로 유명하다. 강남에 대치동, 강서에 목동이 있다면, 강북은 중계동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나는 중계동을 직접 가 본 적이 없다. 그 근처 상계동과 창동을 한번 가 봤을 뿐, 중계동은 평소 내게는 아주 먼 동네 중 하나다.
학원가 현황이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사실 ‘백사마을’을 가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찾아보니, 그 마을이 중계동에 있었을 뿐이었다. 약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이, 노원구에서 가장 집 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가 중계동인데, 또 가장 살기 어려운 동네가 중계동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 중 하나인 개포동에 ‘구룡마을’이 있는 것과 같았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 나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중계동으로 간다.
중계역에 내려 두리번두리번, 큰 대로변을 옆으로 천 하나가 흐른다. ‘무슨 천이지?‘ 하며 살펴보니, ‘당현천 기억길’이라 씌어 있다. 당연히 ‘당현천’인가 보다. 초록초록한 나무 사이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한가롭고, 뜨겁지 않은 하늘은 파랑색 크레파스보다 더 파랗다.
어쩜! 나무가 초록으로 흔들어대는구나!
공원길 사이로 나무는 경쟁하듯 그의 잎으로 손을 흔들어댄다. 하늘도 가려 이곳은 하늘색이 초록이다. 백사마을까지는 중계 2•3동을 지나 3km 남짓 더 걸어야 했다. 일부러 당현천을 따라 걸었다. 옆으로 지나가며 수다로 재잘대는 아주머니 두 분도 정겹다.
중계동의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다. 지어진 지 대략 20~30년은 되어 보이는 주택공사 아파트들 사이로, 운동하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띈다. 늘 학업에 절어 있는 모습보다, 이렇게 주말이라도 운동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좋아 보였다. 그런 반면, 같은 나이 또래의 딸아이는 주말 이 시간에도 학원을 다니니… 애처롭기도 하고, 뜯어말리기란 또 쉽지 않다. 남들 다 하는데 안 시킬 수도 없다는,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한 시간이라도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더 딸아이가 안쓰럽다.
백사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저 멀리 ‘불암산’도 가까워졌다. 어느새 아파트도 드문드문 해지더니, 드디어 마을 입구가 보였다. 재개발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가득하다.
‘재개발사업구역 내, 관계자 외 출입금지’
어이쿠~ 뉴스에서 본 내용대로, 아무나 들어가기 어려운가 보다. 살짝 눈치를 보며 들어서는데, 다행히도 제지하는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역시, 마을 주민들은 보이질 않았다. 거주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아예 한 분도 안 보인다. 좁은 길가 에는 다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에 집이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창문은 깨져있고, 그 앞에는 버리고 간 세간살이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마을에 들어가도 되나?’ 아무도 없으니 참 부담스럽다. 혹시 몰라, 대 놓고 사진 찍기도 어려웠다.
도무지,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로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가끔 주차된 자동차가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살고 있나?’ 싶었다. 그늘도 없는 길을 태양이 주인 행세다. 살짝 덥기도 하고, 조용하니 저 앞의 산자락에서 새소리가 적나라하다. 골목을 꺾어져 도는데,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아휴 깜짝이야!’ 갑자기 엄청 짖어대는데도 주인은 보이질 않았다. 입으로 개구락질을 하고 손짓을 하니 그제야 짖기를 멈춘다. 가만히 보니 이 녀석 애꾸다.
이 동네에 너 혼자 사는 거?
말을 건네도 대답이 없다. 역시, 이 지역 보스답군.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경계다. 아직 허물지 않은 집들 사이로 다른 개들이 정렬을 해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살긴 사나 보다. 잠깐 멈추어 눈길을 주고 다시 산 가까이로 걸어 올라갔다. 그리 멀지 않은 길에 커다란 문이 길을 가로막고서는, 더 이상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문 가랑 사이로 녹슨 교회탑과 동네길을 숨어 보는데, 왠지 만화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길이 막혀 있으니 다시 돌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언덕배기를 발견하진 못했다. 마을길은 너무나 적막해서 한낮인데도 귀신이 한 바가지 나올 것 같았다. 한 블록을 가로질러 오르니 저 앞으로 낮은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드디어 마을 같은 곳이 보이는구나!’
예전에 백사마을은 주민들만 살던 곳이 아니라, 불암산을 오르는 ‘등산로’로도 많이 이용되었던 것 같다. 곳곳으로 등산로 안내표지판이 보였지만, 지금은 가로막혀 오를 수가 없었다. 산자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수풀을 헤치고 탐험을 도전하려 했지만, 엉겅퀴들이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너도 조금 있으면 한 순간이야. 여기 싸악 밀어버리고 아파트 들어서면, 네 인생도 끝장이라구.’ 으름장을 냈지만 도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는 글렀다.
마을길 오르막 끝으로, 제법 멀쩡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104 마을 예술 창작소’라고 씌어 있는데, 역시 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그 앞으로 하얀 백합송이가 잔뜩 피어 있고, 아무도 반기는 이 없었는 듯 내가 다가가니 좋아라 한다.
어라! 저기 언덕배기 길이 보이네?
되돌아 나오는데, 저 멀리 눈앞으로 익숙한 언덕길이 보였다. 와! 왜 이렇게 반가운지! 하늘로 뻗은 길이 천국길 같다. 꽤나 먼 곳이었지만 어떡해서든 가봐야 했다. 편안한 길은 보이지 않았고, 역시 골목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오싹했다. 다 낡은 집들이 부서지고 엉키고, 밖에서는 어둠에 보이지도 않는 문 사이로 방들마다 귀신 눈이 나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안 무서운 척, 걸음은 또 느긋하게 걸었다. 신발안의 발가락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사람이 언제 살았는지도 모를, 골목 안엔 이제 삶의 작은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새소리도 없고 가끔 스르륵 바람이 골목 안을 타고 들어왔다. 집과 집 사이가 이렇게 가까웠나 싶을 정도로, 사람과 사람보다 더 가까이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옆집에서 된장찌개를 먹는지, 몰래 둘이 치킨을 먹는지.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 또는 드라마처럼 아웅 대고 있는지 그 시절 우리는 다 알 수 있었다.
마지막 골목을 나서는데 어떤 젊은 여성 한 분이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와… 나도 무서운데 여기를 혼자 왔다고? 고양이 때문에?’ 대단하다. 보니까, 쓰러져가는 처마 밑에도, 지붕 위에도 고양이 여럿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서든 사람은 떠나도 남는 건 반려동물뿐인가 보다. 녀석들 배고프지 말라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은, 귀신도 피해 가는 그녀의 사랑이다.
이제 조금 ‘길다운 길’을 걸어 나오니, 저 반대편에서 보았던 언덕배기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크게 가파르진 않았지만, 길이는 꽤 길었다. 여기선 누구든 이 길을 터벅터벅 오르고 내려갔을 테니, 나도 그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십수 년 전, 꼬부랑 할머니가 자기 따라오라며 손짓하던 그 순간, 쌀을 짊어지고 낑낑대던 내 젊은 날의 환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흘렸던 땀은 아직 기화되지 않은 채, 먼지와 뒹굴어 길자욱으로 남아 있었다.
묘하다. 적막하지만 아련한 기억들이, 다 낡아 떨어진 시멘트 길 위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전봇대들은 성한데, 이 고을 빛은 오늘 낮이 마지막이다. 금방 해가 떨어지면, 어두컴컴한 길에서 쉽사리 방향을 잃을 것 같다. 시커먼 삽 한자루가 명화처럼 담장을 예술로 만든다.
큰길로 내려왔다. 한 바퀴를 빼앵 돈 셈이다. 이 시대 마지막 서울 달동네. 한나절을 다 돌아보고 나니, 그래도 머릿속 대뇌에 그림처럼 박힌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니… 고양이 먹이 주던 그녀와 함께 사람 냄새를 조금 남겼으니, 104의 길이 먼지 한톨만큼은 따듯해졌으면 좋겠다.
- 제1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