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242.27km, 오늘: 13.79km, 걸음 수: 17,837
표지사진 | 서울 성북구 성북동 ‘구름 아래 성북‘
이번 코스는 성북동으로 잡을게요.
대사관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는데, 길도 어렵지 않고 재밌을 것 같아요!
회사에 걷기 동호회를 만들고, 이제 두 번째 걷기 코스를 설계하는 회의를 가졌다. 물론 걷기 동호회 회장이자 코스 설계자인 내가 제일 먼저 장소를 제안했다. 몇몇 안 되는 회원들은 무조건 찬성하는 분위기이다. ‘마포의 걷기 달인’이 코스를 만든다는데, 어느 누가 찬성하지 않을쏘냐? ㅋ
사실, 코스를 만든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회원들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고, 너무 많이 걷지 않아야 하며, 또 오르막길이 많아서 지나치게 힘이 들면 안 된다. 그래서 코스를 만들기 전, 장소를 정했으면 ‘사전 답사’는 필수이다. 걷기 코스를 설계한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곳을 방문하고, 여러 차례 걸어 다니며 코스의 컨디션과 회원 간의 컨디션을 서로 맞추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다. 마치, 골프장을 설계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목적지를 ‘성북동’으로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아무도, 또는 자주 가지 않는.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다채로움’ 때문이다. 성북동은 대사관저(邸)가 많은 부촌인 반면, ‘북정마을’ 같은 한양도성 성곽 아래 오래된 마을이 공존하기도 한다. 다양한 볼거리와 오르내리락 길은 걷기 동호회의 설립 모토인 ‘걷는 즐거움’을 준다. 그것이 내가 동호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봄이 성큼 와서 걷기 좋은 날에 성북동을 간다. 성북동의 비둘기는 아직 그곳에 있을까?
걷기 코스의 시작을 ‘흥인지문공원’으로 잡았다. 여기서 혜화동 낙산 성곽을 따라 성북동 초입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회원들에게 ‘혜화동 낙산 성곽길’은, 본격적으로 성북동을 오르기 전 ‘에피타이저 같은 즐거움’을 줄 것 같았다. 낙산 성곽길은 도심에서 진입하기에도 좋고, 또한 그리 높지 않은 길이라 걷기에 무난하다. 사실, 내가 혜화동 낙산 성곽길을 너무나 좋아한다. 낙산의 높이는 ‘남산의 반의 반’도 안 되지만, 서울을 두 팔 벌려 너그러이 안고 있는 풍경을 자세하게 보여 준다.
해가 쨍 떴지만 덥지 않고 맑은 날이다. 계절은 봄의 한가운데라 여기저기 꽃가루가 한창이지만,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양새가 춤을 추듯 좋다. 지하철을 타고 내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장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즐겁게 거닌다. 광장을 가로질러 ’흥인지문‘을 거쳐 낙산길로 올라갔다. “와우~ 역시 낙산은 끝내줘!”
낙산성곽을 따라 혜화동의 ‘혜화문’ 방향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가는 길에 낙산 성곽을 바라보면 꽤나 높은 성벽에 웅장함을 실감한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 성벽을 기어오를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이 높은 성벽을 통해 그들의 삶을 지켰으리라.
성벽을 두고 왼편은 동숭동, 그리고 오른편은 창신동이다. 이전에 창신동을 실컷 걸었지만, 성곽에 가까운 마을은 경험하지 못했다. 오늘도 목적지는 성북동이니 지체하지 않고 지나쳤다. 지나는 길 마지막에 커피집 하나가 있는데, 운치가 있다. 잠시 아이스커피로 목을 축이고, ‘혜화문’을 돌아 본격적으로 성북동으로 걸었다.
성북동 대사관길은 성북동의 중턱에 있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가 성북동으로 빠지면, 거기서부터 다양한 나라의 주한 대사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나는 저 꼭대기까지 걸어가야 했다. 북악산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길고, 길이 짧다 싶으면 오히려 경사가 심한 편이다.
혜화문에서 나와 골목길을 따라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까지 왔다. 여기서부터 다소 넓은 도로인 ‘성북로’만 따라 올라가도 가는 길은 쉽다. ‘하지만 뭐… 그렇게 걸으면 볼만한 사연이 없잖아?’ 나는 또 ‘사연을 만드는 사람’이라, 우리 회원들에게 걷는 즐거움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명감이 있으니 말이다. 일부러 꼬불꼬불한 길을 찾아, 무조건 위로 올라갔다.
아이고~ 힘들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오래된 집과 골목마다 먼지 풀풀 낡음이 주는 생경함은 좋았지만, 경사가 있다 보니 동호회 회원들이 걷기에는 다소 힘들겠다 싶었다. 누가 MBTI의 ‘F’ 아니라고, 남 생각하는 데는 스스로 최고다.
사전 답사인만큼 이곳저곳을 훑으며 걸었다. 여기를 올랐다가, 저기를 내려갔다가. 혼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을 머리로 느끼며 걸었다. 어느 정도 올라왔다 싶으니, 발아래로 서울 세상이 깔린다. 좋구나~ 잠시 구경하고, 다시 발을 옮기니 어느새 골목 끝은 북악산 자락으로 이어졌다. 회색이 초록길로 바뀌고, 내 발은 그나마 딱딱한 시멘트길에서 흙길을 밟으니 더 좋은가 보다. 얼쑤하며 성큼, 내 몸을 산 위로 올린다.
아무래도 ‘성북로 8길’로 올라가는 것은 답이 아닌 것 같았다. 나야 뭐 단련이 되었지만, 회원들의 컨디션은 다를 테니까. 방금 올라온 길을 돌이켜 보면, 재미는 있지만 결국 ‘성북동 대사관길’을 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여기 북악스카이웨이까지 올라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다소 경사가 심해도 ‘한신아파트 단지’가 있는 ‘성북로 4길’이 훨씬 낫고, 좀 다리가 안 좋은 친구들은 마을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합류해도 좋을 것 같았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1km 정도 걸으면 ‘북악골프연습장’이 나오고, 그 옆으로 대사관로가 시작된다. 길은 한적하고, 대사관저마다 게양된 국기가 살랑였다. 자동차는 수시로 다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쩜,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나’ 했는데, 노안(老眼)이다.
성북동 대사관길은 여러 나라의 대사관저가 모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1970년 12월, 삼청터널이 개통되면서 이곳의 교통이 좋아졌고, 이후 1972년에 일본대사관저를 시작으로 1976년 서독, 1980년대까지 호주, 캐나다, 터키 등 약 20여 개 국가의 대사관저가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성북동은 부촌(富村)이다. 집들은 한쪽에서 보면 단층인데, 저 반대편에서 보면 깎아지른 담장을 방패 삼아 고층의 저택들이다. 풍채는 단아하면서도 굳건하다. 걷는 사람들이 따로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걸을 필요 없이, 필요하면 벤츠를 끌고 장을 보러 가면 되니까. ‘아! 장 보는 일은 집사들이 하겠구나?’
담벼락 하단을 스르륵 만진다. 시속 30킬로라 씌어 있는 길을, 나는 아무리 재빠르게 걸어도 시속 6킬로도 안 나오는 속도로 걷는다. 여남은 24킬로의 여유를 길에 남기고, 나는 이쪽 길을 걸었다가 다시 저쪽 길을 걷는다.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어떤 길을 코스로 연결 지을지 생각하느라 바쁘다.
독일대사관저의 독수리 문양은 아주 멋진 것 같다. 마치 어느 유로리그의 축구팀 방패문장 못지않은 위용을 갖추었다. 독일대사관저를 마지막으로, 그 길을 따라 계속 오르니 이제 마을의 꼭대기다. 다 왔나?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저 앞에 박물관 하나가 보였다. 뭐지? 갑자기 웬 박물관? 정문에 다다르니 ‘우리옛돌박물관’이다. 돌 박물관이라… 뭔 돌을 가져다 놓았기에 박물관까지 만들었을까? 그전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장소이다. 들어가 봤다.
놀랍다. 전국 곳곳의 시골 마을 논바닥에 버려진 장승(長丞) 돌은 전부 들고 온 것 같았다. 비석 돌마다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던 듯, 지금은 말끔히 세수를 한 모양새지만 오래되고 늙었다. 박물관 안에는 공간도 작아 ‘잔뜩 뭉쳐 놓았네’라고 생각했는데,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니 커다란 산책길마다 돌들이 가득이다. 이런 전시는 처음이고 새롭다. 좋은 정도를 넘어서, “너는 이런 데 와 본 적 있느냐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니,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성북동 전경이 푸른 하늘 구름 아래 넓은 풍경화로 아름다웠다.
그래! 이런 거지!
이렇게 매력 있고 아름답구나!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사람들은 봄기운에 취하고, 나는 성북동에 취해간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성북동 대사관길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남은 곳은, 여기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북정마을’이다. 사실 한양도성 아래 성곽 마을이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는 ‘만해 한용운’의 생가 ‘심우장’이 있다. 그리고 ‘성북동의 비둘기’도 기다리고 있지.
내려가는 길은 금방이었다. 역시 오르막은 짧아도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못내 아쉬움이다. 어느 집 큰 담벼락 위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며 ‘으르렁’ 거린다. 덜컥 놀랬다가 목줄이 묶여있는 걸 보고, 큰 소리로 혼내주었다. 갑자기 더 큰소리로 달려드는데, 이번 주일 중에 가장 크게 심장이 쫄깃거렸다. ‘어이쿠~ 뭐지? 목줄이 없었나?’ 후다닥 더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마을 아래 끝 부분으로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나무 데크를 오르니 나를 ‘북정마을’로 인도한다. 다시 고불고불 골목길이 나오고, 내 몸 두세 개 정도만 지날 정도로 좁다. 한참을 걸은 후라, 이젠 경사가 살짝만 져도 힘에 부친다. 그래도 마을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심우장’이 보였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가 이런 곳을 알았을까? 왔을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커서였는지, 심우장은 작은 공간이었지만 더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심우장을 나와 다시 골목을 타고 올라가니 ‘성북동 비둘기 쉼터’가 나왔다. 공원은 매우 협소했고 조용했다.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비둘기도 없다. 이제 북정마을 사람들도 많이 떠나가고, 여러 채의 부서진 집들이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마지막 편지를 쓴다.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쉬었다. 그리고 금세 일어났다. 언제 사람이 앉았던 벤치였는지도 모르게, 먼지가 한 움큼이다. 내 엉덩이에 묻힌 녀석들이, 오랜만에 사람이라고 반가워한다. 툴툴 털고 이제 가야 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쉽지만, 성북동 비둘기를 못 보고 떠난다.
북정마을을 내려와 다시 성북로를 타고 혜화동으로 향했다. 저 멀리 노을이 탄다. 마지막 인상도 좋았다. 앞으로 성북동을 많이 좋아할 것 같다고, 들리듯 고백했다.
- 제20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