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256.28km, 오늘: 14.01km, 걸음 수: 18,371
표지사진 | 서울 관악구 난곡동 ‘저 멀리, 난곡‘
아니, 저곳은 어디야?
이전에 금천구 독산동을 걷다가 신림동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도림천이 흐르는 옆으로 지하철 서원역 ‘신림선’ 노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저 끝 호암산 아래로 웅성거리는 동네를 보았다. 지도를 보니 ‘난곡동’이다.
난곡동?
처음 들어본 동네라 생각했는데, ‘난곡사거리’라는 이름은 꽤 익숙했다. 어찌 되었든 그뿐이었고,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사라지는 서울의 옛 마을’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검색하는데, 난곡동이 추천되었다. ‘아! 그때 신림동을 걷다 발견했던 동네?’ 1960년대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비공식 취락지가 형성된 곳이라는데, 서울에서는 봉천동만큼이나 유명한 달동네였다고 한다. 지금은 재개발로 많이 바뀌었지만, 그렇게 나의 다음 걷기 목적지는 자연스레 난곡동이 되었다.
난곡동은 서울 관악구 서남단에 위치한 동네로,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강서의 호 ‘난곡’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원래 시흥군 동면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60~70년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달동네가 형성되었다. 가파른 골목길과 판잣집이 난립하던 시절은 사라지고, 지금은 빌라와 다세대주택, 생활상권이 밀집한 주거지로 변모했다. 난곡초등학교와 약국 거리, 주민 중심의 골목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난곡 스토리’ 등 마을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설마, 오늘도 걸어?
아침부터 아내가 눈을 흘긴다. 요즘 들어 매주 걷는다고 기어 나가는 남편이 꽤나 못마땅했나 보다. 게다가 오늘은 자기 안과엘 가 봐야 하니 데려다 달라고 선수를 쳤다.
“아니? 갑자기 안과는 왜?”
“몰라, 눈에 염증이 나서 가려워 죽겠어.”
‘아니, 뭐야? 눈다래끼 정도는 혼자 병원에 다녀와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을 접고, 쉬이 ‘알겠다’고 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병원이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 신림역 근처에 365 안과 병원이 문을 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문 연 곳을 찾았어! 바로 안과에 데려다줄게.”
대충 옷을 입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물론 나는 아내를 안과에 데려다주고 나서 곧바로 신림역에서 가까운 난곡동으로 걸을 예정이었다. 집을 나서며 자가용 대신 택시를 부르니 아내가 갸우뚱한다.
“아니, 택시를 왜 불러? 우리 차 타고 가는 거 아냐?”
“어… 오늘 나, 또 걸어야 해서…”
순간 아내의 얼굴이 급 싸늘해졌다.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하니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올해 9월까지는 서울의 10곳 동네를 걸어야 해서 말이지.
아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한마디 한다. 사실 변명하기가 어려웠다. 정해 놓은 날짜가 가까워지자 내 마음이 급했을 뿐이다. 미안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안과에 내려주자마자 쏜살같이 걸어 나갔다. 죽어도 가지 말라고 하진 않았지만 맘 속에 돌 하나가 얹힌 느낌이었다. 걷다가 저만치서 뒤돌아보니, 아내의 모습이 영 개운치 않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야겠다.
6월 중순이라 태양은 벌써 한여름에 가까웠다.
‘아이구 뜨겁다. 벌써 이리 뜨겁노?’
날이 후텁지근한걸 보니 올여름도 작년 못지않게 역대급 폭염이 올 것 같았다. 2호선 신림역을 지나 그 옆으로 흐르는 도림천이 시원해 보인다. 잠시 눈으로 얼굴을 씻고, 길 건너 신원동으로 향했다. 난곡동까지는 1~2km를 더 걸어야 한다. 빌딩 숲 사이로 그늘을 찾아 걸었지만,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사실 높은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낮은 빌라와 연립주택이 대부분이었다.
난곡동에 도착했다. 동네가 그렇게 크진 않았다. 비슷비슷한 주택들은 일단 재쳐두고, 좀 더 어설픈 주택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옛 마을을 찾아 한 바퀴를 돌아도 그 자취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니, 내가 상상했던 마을이 아니네?’
어쩌면 나는 난곡동에서도 백사마을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연이 묻어나는 집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좁고 길게 뻗은 골목을 따라 오르면 흔히 보이는 주택들로 가득했다. 골목은 100여 발자국도 못 가서 다른 골목으로 꺾이곤 했다. 다시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금세 산자락 아래다. 짧은 길들이 서로 얼키어 신식을 흉내 내면서도, 이미 그 자체로 옛날 이주민들이 다닥다닥 살았던 흔적이 상상되곤 했다.
마을 끝에 걸려 있는 아파트 몇 채는 대단지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난곡 마을의 이방인 같았다. 그 앞으로 천연기념물인 굴참나무 한 그루가 제 몸을 스스로 다 이기지 못한 채 목발을 짚고 서 있다.
난곡동은 생각보다 평지에 가까웠다. 오히려 그 옆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니 난향동이 나온다. 난곡동과 난향동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동네 이름에 나란히 난(蘭) 자를 쓴다. 난초와 관련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그렇다. 걷다 보니 마을 한편에 난초를 잔뜩 심어 놓은 곳이 보였다. 재개발로 천연 난초는 다 없어지고, 동네 이름은 난초이고…. 왠지 이렇게라도 시그니처를 만들었나 싶었다.
다시 ‘난곡로’ 큰길을 건너갔다. 다소 넓고 길게 뻗은 동네길을 오르니, 저 앞으로 ‘난곡동성당’이 보인다.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네마다 성당은 반드시 거쳐야 할 의무 같은 것이, 성스러운 곳이면서도 마을의 역사를 한 몸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당의 모양새를 보면, 그 동네의 이미지를 다 가진듯한 인상이 든다.
저 멀리서도 보일만큼 웅성거렸던 집들은, 마치 내가 올 것을 알아차린 듯 침묵으로 조용했다. 높은 산 달동네라고 착각했는데, 집들은 오히려 평지에 가깝고 비탈은 생각보다 낮았다. 동네가 얼마나 한산했는지 어르신들의 장기 소리가 탁탁탁, 골목을 울렸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땀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난곡동길의 끝은 다소 오르막이었다. 높은 곳일수록 집들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화강암 가루가 묻어나는 담벼락과 붉은 벽돌은, 서울 도심에서 쉬이 찾아보기 힘든 풍경화다. 돌의 표면을 만져보니 그래도 오랜 세월을 견디었다고 근육질이다. 계단이 나오길래 돌아갈까 하다가, 마치 나도 여기 주민인 양 자연스럽게 한발 두발 올라탔다. 그 끝에 오르니 수국이 만발한 무릉도원 ‘난골정원’이 나온다. 오래된 아파트와 정원길을 하나로 엮었는데, 그 컨셉이 매우 독특했다.
‘정말 이국적이다!
서울에서 이런 정취는 참 색달랐다. 작은 골목에 불과했지만, 꽃이 만발한 정원길은 한 발 한 발이 꿈같았다. 골목을 따라 쭉 걸었다. 길이는 짧았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정원을 빠져나오니 어르신 한 분이 지팡이를 쥐고 앉아 있었다. 나를 힐끔 보시더니 이내 얼굴을 돌리신다. 피하지 않고 옆에 나도 앉았다. 저 아래로 난곡동 일대가 비탈 따라 평온했다.
- 제2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