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268.66km, 오늘: 12.38km, 걸음 수: 15,643
표지사진 | 서울 강남구 개포2동 ‘개포시장’
정말, 개포동은 동네 분위기가 다르구나?
자격지심인가? 넘사벽 같은 느낌이다. 날씨가 더워 밖에 돌아다니기도 힘들지만, 간간히 걷는 사람들 표정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다.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답게 길도 반듯하고, 대규모 단지는 출입구가 따로 없이 하나의 거대한 지구(地區)를 이루고 있다.
구룡마을에서 양재대로 큰길 하나를 두고, 부(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몇 걸음만에, 나의 오체 감각이 버튼 하나로 순간 전환되는 듯했다. 정갈한 아파트 보도블록은 양팔을 벌려 ‘숲’ 드레스를 입었고, 발밑의 모래알은 보도블록 사이에서 망중한으로 음악 감상 중이다. 같은 모래알이라도 구룡마을 골목에서 밟힌 그것은, ‘언제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고 꿈을 노래했었으리라.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일은, 너무나 수월했다. 근처의 다른 아파트는 정문과 후문을 막아 모든 이방인의 발길을 차단했지만, 여기 개포동 주공 아파트 재개발 단지는 그런 이방인조차 ‘어서 들어와, 나의 자태를 구경해 보라구’ 하며, 어깨가 한층 올라 간 느낌이다.
어쩜… 놀이터마저 예술이구나! 단지 내 곳곳에 놀이터가 하나씩 있는데, 마치 서로 다른 디자이너가 그림 그리듯 경합했다. 날이 너무 뜨거워 홀로 외로울 법도 한데,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작품처럼 벽에 걸린 그림 같았다.
다른 놀이터는 얼마나 멋질까? 더 찾아보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구역에서 저 구역으로 이동할 때에도, 낯선 이를 막아서는 기류는 전혀 없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자기만의 색깔로 남달랐지만, 구역을 옮기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재개발 이전의 개포1동 대부분은, 개포 주공아파트 1~3단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주공 4단지까지가 5층짜리였고, 5단지와 8단지는 고층, 다시 9단지는 저층이었다. 특히 그중 8·9단지는 공무원 아파트로, 당시 공무원들에게 특별 분양된 곳이었다.
한때는 기름보일러가 아닌 연탄보일러를 때던 아파트였고, 가을이면 단지 안 큰 나무 덕분에 온통 낙엽길로 수북했던 기억이 있다. 그저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그 낮은 서민의 기억들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렇게 높고 아름다운 건물이 들어서니, 인생 참 빠르다.
1980년대 초, 강남 개발의 물결 속에서 개포동에는 주공아파트 19단지가 차례로 들어섰다. 1~4단지는 5층짜리 저층 국민주택형, 5~7단지는 고층형으로, 당시 정부의 택지개발촉진법에 힘입어 대규모 주거지가 조성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노후화가 진행됐고, ‘강남의 마지막 서민 아파트’로 불리던 1단지는 2018년 이주를 시작해 2019년 철거됐다. 한때 박원순 전 시장의 ‘한 동 남기기’ 정책으로 일부 동이 보존될 뻔했지만, 정책 기조 변경과 함께 결국 완전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들어섰다. 15만㎡ 규모의 시그니처파크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 단지는 굿디자인 어워드 환경 디자인 부문에서 우수 디자인으로 선정되며, 개포동 재건축의 상징이 됐다.
2~4단지도 재건축을 마쳐 래미안 블레스티지, 디에이치 아너힐즈,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로 탈바꿈했고, 현재 5~7단지는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40여 년 전 서민 주거지였던 개포 주공아파트는 이제 고급 주거단지로 변모하며, 강남 주거지도의 변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아파트 안에서 만난 학생들은 저마다 바쁘게 책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마치 동네 주민처럼, 산책하듯 걸었다. 한 학생이 아파트 건물 입구로 쏙 들어가는데, ‘커뮤니티센터’ 같다. 독서실 안이 보이고 학생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특히 안경 쓴 저 여학생, 우리 딸이 오버랩된다. ’이 녀석… 아직도 자고 있는 것 아냐?‘
다들 하나같이 열심이다. 환경이 좋으니 공부하기에도 좋아 보인다. 예전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마포도 주거 환경이 나쁘진 않지만, 여기 개포동과 비교하니 마포는 시골이다.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그렇다. 기어코 환경이 좋거나 강남으로 이사를 오려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이쿠~ 아빠가 미안해~’
아파트 단지 안에는 구석구석, 작은 쉴 곳들이 많았지만 적막했다. 주거민이 떠나 아무도 없던 구룡마을과 대단지 아파트의 적막함은 같은 듯, 다르다. 숨이 멎은 곳과 숨이 안식을 취하는 곳. 같은 하늘 아래, 반경 1km도 안 되는 곳의 공기가 이렇게 다르다. 패션모델같이 기다란 풀대 하나가 아파트 벽에 기대어 잠을 청한다. 사라락! 바람도 없는데 그 스스로도 찌뿌둥한지 몸을 떤다. 나는 그늘도 없는, 정갈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후욱 불고, 땀을 한 움큼 쥐어 턱 아래로 흘려보낸다. 오래 앉아 있질 못하겠다.
그들의 구역을 나왔다. ‘개포로’ 대로변을 건너 개포1동에서 다시 개포4동으로 넘어간다. 그곳에는 이곳과는 또 다른 옛 모습의 개포동이 일부 남아 있다. 쨍쨍한 햇빛에 얼굴이 타 들어가는데, 그늘은 계속 없다. 얼굴에 바른 선크림이 땀에 녹아, 눈 안에서 따갑다. 저 앞에 ‘용바람 다리’가 보인다. 그 위로, 공원이 보인다. 얼른 올라갔다. 개포4동 ‘달터근린공원’이다.
폭염이 가득해도, 숲길은 걸을만했다. 동네 주민들도 이 정도 더위는 별거 없다며 열심히 운동 중이다. 오랜만의 끊임없는 그늘 속이라,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그래도 어쩔 테야? 생각보다 짧은 산책길이 끝나고, 주택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태양이 머리를 강타한다.
개포4동 주택가 골목을 이리저리 도는데, 이름이 익숙한 학교가 나왔다. ‘국립국악 중•고등학교‘이다. 학교는 밖에서 얼핏 봐도 꽤나 근사했다. 시끄러운 풍악이 아니라, 고요한 가락으로 ‘창‘ 하나가 들리는 듯했다. 현대식 건물과 국악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데, ‘우리 딸도 이런 곳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본다. 특출해야 오는 것을… 부러움 반, 아쉬움 반이다.
동네 한복판에 ‘수정마을’이라고, 벽으로 둘러싸인 빈민촌이 있다. 생각지 못했던 만남이다. 이런 데에 이렇게 철거하지 못한 마을이라니? 구룡마을과 비슷하면서도 나름 정비가 되어 있다. 네모 반듯하게 사방이 집벽으로 막혀 있고, 입구 하나가 보이긴 했는데 차마 들어가진 못했다.
땀이 뚝뚝 떨어진다. 도대체 오늘 기온이 몇 도나 나가는 거야? 진짜 한여름이 오면 얼마나 더워질지 가늠이 안 된다. 날이 이러니, 미친 듯이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주택가 한가운데를 걷다가, 그나마 똑같은 집들 사이로 꽃잎 같은 건물을 구경하느라 발을 멈춘다. 비슷하지만 더 여유로운 개포동의 주택들을 내 발로 툭툭 쳐 본다. 먼지 한 톨이 떨어지는데, 그마저도 한가롭다.
주택 골목을 이리저리 돌고 그 끝으로 나오니, 넓은 벌판이 나왔다. 그런데 양재천 옆으로 휑하니 뚫린 곳에 마을이 또 보였다. ‘아니, 여기도 마을이 있네?’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개포동 안에 마을이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부촌과 극단적으로 그렇지 못한 곳이 묘하게 섞여있어, 다채로운 감상을 준다. ‘밀미리 마을’이다.
오래된 집들이 얽히고설켜있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고 밖으로는 성벽을 쌓았다. 입구에는 외지인들은 암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듯, ‘길 없음’이라는 안내 문구가 성명했다. 다만, 이번에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골목 시멘트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발목이 살짝 꺾일 정도로 돌길과 흙길이 섞여 있었다. 한두 분의 주민들은 이방인에 관심 없는 듯 내 옆을 지나쳐 가거나 자기 일에 집중이다. 슬핏 곁눈질로 집들을 스쳐 보는데, 구룡마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골목은 다소 넓었고, 햇빛이 쨍하니, 마당 앞에 심어 놓은 고추나무도 반들거린다. 슬라브 가건물이 고단해 보이지만 또 공기마저 한가로웠다. 집 파리 한 마리가 웽~ 하고 날아간다.
어느 집은 이미 주인이 떠나고 없다. 풀숲이 문을 가로막고 있고, 몇 개의 창문은 깨져 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이들이 하루 내내 고민하다가, 문득 자기 삶을 사는데 정신이 없어 또 하루를 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면, 어느새 몸은 늙어가 있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정말 몇 안 남은 옛 원주민들이 강남구 개포동 한복판에 그들만의 ‘메이저리그’로 살아가고 있었다. 힘들어도 당당하게, 언젠가 내게도 한방으로 돌아올 홈런을 기다린다. 양재천을 따라 다시 개포2동으로 걸었다. 구룡중학교, 개포고등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가 주르륵 줄 서 있다. 오랜만에 들르니 그들도 반갑다고 손짓이다. 이제 저 앞의 ‘삼성로’를 건너면, 아직 재건축이 들어가지 않은 주공아파트 5~7단지가 나온다. 진심 추억이구나.
너, 미술학원 한번 안 다닐래?
엄마가 뜬금없이 미술학원에 다녀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개포동 주공아파트 5단지 내 상가에 있던 ‘베다니교회’를 다녔는데, 교회 행사 포스터를 자주 그렸다. 그때마다 허구한 날 교회 선배들이 나를 찾곤 했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엄마가 여름방학 한 달만이라도 그림을 그려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그것이 이후 나의 전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5단지 상가에 도착했다. 두리번거렸다. 아직 ‘베다니교회’가 있을까? 거의 30년 만이라 어느 위치였는지도 기억이 가물하다. 여러 상가 중 하나였지만, 교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들은 참 낡았다. 80년대 지어진 상가들은 여러 번 덧칠해 세월의 흔적을 최대한 가렸지만, 그래도 늙은 티는 난다. 나 같다.
결국 내가 다녔던 교회는 그 사이 이사를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휘돈다. 당시 친했던 형들과 누님들의 얼굴이, 눈감은 내 앞에서 바람으로 왔다가 다시 바람으로 사라진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추억은 때로는 눈물이구나.
상가 옆 ‘개포시장’은 재래시장이지만 대규모 시장은 아니다. 그 시장 골목을 따라 개포 6단지와 7단지로 건너갔다. 오늘은 결국 개포1동을 거쳐 4동과 2동까지,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일부러 7단지 안 깊숙이 들어갔다. 오래된 아파트 구조가 이제는 사라질 만큼 정겨워진다. 그 앞으로 추억의 놀이터가 보인다. 나는 오히려 지금 놀이터가 더 정겹다. 내 기억 속으로 들어가, 나는 그때의 어린 녀석이 되어 그네를 탄다. 삐그덕거리는 소리도 이렇게 좋을 수가!
아무도 없는 철거 중인 빈민촌과 한국 최고의 부촌, 그리고 아직 80~90년대 향수를 간직한 주택들, 거기에 재건축을 기다리는 고층 주공아파트까지. 내가 아는 기억과 들었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파내어 새롭게 만들어가는 개포동의 시간들이 나의 발자국을 따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됐다.
’다음에 다시 오면, 이 녀석들도 이젠 없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나는 7단지를 걸었다. 저 앞에 출구가 보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제2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