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288.12km, 오늘: 8.26km, 걸음 수: 10,842
표지사진 |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에서 바라본 월드‘
올 때, 우유 두 개만 사 와요
아내는 요즘 주말마다 길을 나서는 내게 한결 너그러워졌다. 지난 2년간 꾸준히 걸으며 글을 쓰고, 책까지 내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걷기가 내 일상이자 정체성이라 여기는 듯했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크게 대답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알았어! 우유는 저지방으로 사 오면 되는 거지? “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잘 다녀오라 눈짓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자꾸 기어나간다고 잔소리라 생각했던 말들이, 돌이켜보면 ‘나랑도 함께 있어 주오’라는 아내의 바람이었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가급적 주일과 주말 중 하루는, 아내가 좋아하는 빵집을 순례한다거나, 함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물론, 카페에 앉아 주구장창 글만 쓴다고 퉁퉁거리기는 하지만, 함께 있으니 좋다.
요즘 아내는 나를 위해 매일 아침 그릭 요거트를 손수 챙겨준다. 꾸덕꾸덕해서 멀건 요거트보다 훨씬 좋다고 하니, 애써 공들여 직접 만든다. 생각해 보면 우유를 사 오라는 부탁조차 결국은 나를 위한 일이다. 고마운 사람이다.
이번 주는 연이어 두 곳의 ‘오리엔탈 동네’를 찾아 걷는 중이다. 하나는 신석기 마을 ‘암사동’, 시대가 한참 전이다 보니 다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백제 시대의 고분. 오래되었지만, 지금의 서울과 겹쳐지는 지점이 있어 가까이 느껴진다. 오늘은 백제의 시간, 송파구 ‘석촌동’을 걷는다.
석촌동(石村洞)은 이름처럼 돌이 많은, 작고 단단한 동네다. 지도를 보면 네모 반듯한 공간에 지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네 전체가 고분(古墳)으로 향기롭고 차분하다. 송파구 가락동과 잠실 롯데월드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하철 9호선 ‘석촌고분역’과 ‘석촌역’을 품고 있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석촌동을 바로 갈 수는 있었으나, 조금 먼 길을 택했다. 마포 대흥동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 삼성역 인근에서 내렸다. 석촌동까지는 크게 거리가 멀지 않았고, 탄천을 따라 천천히 걷는 즐거움이 앞섰다.
주일 오전이라 그런지, 테헤란로와 포스코사거리마저 한가했다. 지나다니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도로에 행인들도 얼마 없었다. 포스코 본사 앞에는 주말을 이용해 건물 치장 공사가 한창이다. 쉬는 날 일하는 그들을 보면, 아무 관련 없음에도 감사한 마음이다. 노동은 언제나 신성하니까.
삼성역에 이르니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가득하다. 코엑스 건너편에 ‘현대자동차’ 사옥을 짓는다고, 지하 연결 공사가 한창이다. 삼성역 사거리를 지나 ‘삼선교’를 건너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걸었다. 날씨는 비가 온 후라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잿빛과 황톳빛이 하늘구름에 둘러싸여, 리모델링 중인 ‘잠실종합운동장’을 휘감고 있다. 탄천도 벼 익은 들판처럼, 여름인데 누렁색 가을이다.
삼전교를 건너면 바로 잠실동이다. 잠실동 옆으로 탄천(炭川)을 끼고 기다랗게 ‘탄천대로’를 걸었다. 도로 일부는 공사 중이었지만 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어서, 생각보단 조용했다. 지어진 지 오래된 우성아파트 담벼락과 플라타너스길은 울창한 그림자 숲을 만들어, 여름에도 걷기에 좋은 산책길을 만든다. 삐그덕거리는 보도블록도 좋다. 얕은 모래가 사사삭 거리는데, 이것이 모래알 소리인지 숲나무가 바람에 살랑이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간다. 온 귀를 열고 타박타박 걷는다. 내 느린 걸음을 작은 아이 둘이 추월한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귀에 들어온다. 타박타박, 재잘재잘. 이 작은 거리에 내 귀에 속삭이듯 적막한 여름길이다.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이름마저 생소한 동네를 지나칠 때가 있다. 잠실동 옆의 ‘삼전동(三田洞)’도 마찬가지이다. 잠실동 끝에 다다르니, 다시 ‘삼전로’를 건너 삼전동으로 들어간다. 삼전동은 ‘밭이 세 개 있었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특히 이 동네만 강의 조수(썰물, 밀물)가 미치지 않아 밭으로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글쎄… 눈으로 보기에는 잠실동이나 삼전동이나 높낮이는 같아 보인다. 어쩌면 재건축을 하면서 땅을 평평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잠실동을 조금 더 높게 쌓아 올렸을지도. 그의 낮았던 어깨가 조금은 올라갔을 테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꼬~
삼전동 마을을 지나 석촌동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처음에는 동네에 색다른 건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한 블록 차이의 골목을 이리저리 탐색했다. 그러다 지쳐 곁눈질만 하면서 앞으로만 걸었다. 햇빛은 짙은 구름에 숨었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다. 고새 그거 걸었다고 땀이 줄줄줄이다. 눈에 들어오는 주택과 빌라는 크게 모양새가 다를 바는 없었다. 골목에 뛰어노는 애들이라도 있으면 반가울 텐데, 이런 날엔 집에서 다들 넷플릭스라, 거리는 한산했다.
그렇게 지도도 없이 걷다가 앞에서 턱! 석촌동 고분(古墳)을 만났다. 이 작은 동네에 돌무덤이 가지런하다. 마치 소장군들이 태양신을 떠받치듯 묵직하고 고풍스럽다. 공원은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돌무덤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저 나무 아래 잠시 누워 쉬는 사람, 뛰는 사람, 자기 아들딸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예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모두, 자연의 일상이다. 낮은 돌무덤 위로 하늘 구름이 수를 놓는다. 그 뒤로 ‘월드타워’가 대장군의 모습으로 무덤을 지키는 듯하다.
신기한 전환이었다. 골목을 휘젓다 이런 곳에 이런 돌무덤이 펼쳐질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내가 바라던 새로운 건물이 아니라, 그 옛날의 생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 내 눈앞에 펼쳐진 인상이다. 정갈한 무덤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무덤 같은 인상보다도 오래전 백제 시대의 집터 같은 느낌이다. 소나무가 길게 손을 뻗어 공원길을 안내한다. 그 솔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현대식 건물들이 대조를 이룬다. 오래된 것과 새것들의 조화가 아름다운 클래식으로 강물이 된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이 고분군은 백제 한성기에 조성된 왕족 또는 귀족의 돌무지무덤으로, 1975년 5월 27일 사적 제243호로 지정된 역사적 유산이다. 과거에는 수십 기에서 수백 기가 있었으나 현존하는 고분은 4기 정도로 줄었고, 그중 3호분은 너비 약 50m, 높이 약 4.5m에 달하는 기단식 돌무지무덤이다. 일부 학자들은 왕릉급 규모로 보아 근초고왕 능일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확정된 바는 없다. 발굴 과정에서는 금제 장식, 금귀걸이, 토기, 구슬, 화장된 인골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80년대 보존운동을 계기로 도로공사 계획이 지하도로로 변경되는 등 적극적인 보존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걷기의 매력은 오래 걸어도 새로움에 있다. 서울 동네는 비슷하면서도, 그곳의 감상은 그때의 감정과 함께 문학을 창작한다. 때로는 노래 가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픈 편지가 되기도 한다. 소록소록 걷는 풀벌레의 모습에서, 새록새록 향기가 피어오르는 감상은 걸을 때만 알 수 있다.
오늘 석촌은 작은 동네였지만, 내게 단단한 인상을 남겼다.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근처에 여러 번 왔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어디에서도 이런 돌무덤을 본 적이 없다. 석촌이 품고 있는 자태는 묵직한 풍경이 되어 내 기억을 채색한다. 돌아가는 길 내내 무지개가 피었다.
- 제25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