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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강동구 암사동

누적: 279.86km, 오늘: 11.2km, 걸음 수: 13,548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서울 강동구 암사1동 ‘빛나는 오후’



오빠!
내 친구 민성이 좀 데려다줄 수 있어?


꽤 오래전 일이었다. 아내가 대학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서면서 내게 부탁을 했다.

“ 민성이? 언제? ”

“ 민성이랑 이 근처에서 보기로 했는데. 오후 늦게 헤어지면, 집이 너무 멀어서 그래. “


나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바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집이 어디지?” 하고 물어봤더니, ‘암사동 현대 아파트‘란다. 암사동은 유적지로 꽤나 유명했지만 처음 가 보는 동네였다. “거기가 신석기 유적지 있는 곳인가?” 아내와 나는 둘 다 가 본 적은 없어서, 서로 “그런가?” 하고는 말았다. 그날 저녁에 암사동엘 처음 가 보고, 어언 15년이나 흘렀다.



지금까지 서울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주로 오래된 마을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오래되고 낡은, 또는 재개발 때문에 철거를 앞둔 동네가 꽤나 매력이 있었다. 그러다 아예 ‘진짜 오래된 유적지가 있는 동네’를 찾아보기로 했다. 검색해 보니,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지로는 암사동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나왔다. ‘그래~ 이번에는 여기다!’


그러고 보니, 암사동은 정말 오랜만의 방문이다. 사실 15년 전 방문을 방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그때는 저녁 늦게 올림픽대교를 타고 암사동으로 빠져나와, 친구를 내려주고는 곧장 집에 돌아왔으니까. 길은 어둡기만 했고,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파트 단지가 꽤나 대단지였었는데, 그곳에 아파트 말고 주택가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집안에 틀어박혀 검색을 통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때에는 엉덩이를 떼고 바로 일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오늘은 태양빛이 좋아서 암사동 하늘이 아주 이쁠 듯하다. 이런 날은 엉덩이도 좋아서 덩실덩실이다.


처음에는 암사동까지 버스를 타고 갈까 했다. 그런데 막상 검색을 해보니, 마포에서 무려 2시간 가까이나 걸렸다. 아무래도 이건 무리다 싶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4시간이나 소요하면서 걷기에는, 저녁 식사 전에 집에 오기가 버거워 보였다. 일단 부랴부랴 반바지에 모자 하나만 걸치고 지하철로 향했다. 목적지는 8호선 ‘암사역’이다.

강동구 암사동은 한강 동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선사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암사동 선사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약 6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정착하며 만든 집터와 토기 등이 발굴되어 우리나라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선사주거지 복원과 함께 매년 ‘암사동 선사문화제’가 열려 역사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한편, 한강과 가까워 강변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산책과 여가를 즐기기 좋은 공간으로 변모했으며, 지하철 8호선 암사역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이 발달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동네로 자리하고 있다.





지하철 ‘암사역’에 내렸다. 오랫동안 앉아 와서인지 벌써부터 찌뿌둥하다. 어깨를 툭툭 털고, 달리기 전에 운동하듯 발목을 돌려 한가해진 뼈마디를 우두둑거렸다. ‘좀 낫군’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간간하니,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훅! 사라질 듯했다. ‘오늘도 덥겠구나.’ 마음을 단단히 먹다가 이내 포기했다. 뭐, 더운 날 걷는 것이 한두 번인가? 그리고 어차피 시커메진 얼굴, 더 이상 시커 먹을 일도 없었다. 그래도 선크림으로 가부키를 만든 탓에 유리창에 비추인 내 얼굴이 웃겼다.


지하철에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암사종합시장’이 나온다. ‘거기부터 들러야겠군.’ 항상 동네마다 재래시장은 처음에나, 나중에나 반드시 들러야 할 ‘랜드마크’였다. 시장길은 깔끔하고,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재래시장은 어느 곳이나 비슷했다. 입구 근처에는 주로 과일가게가 시작하고, 이내 채소와 수산 그리고 분식과 떡집, 족발을 팔다가 다시 과일이 이어진다. 간간히 뻥튀기를 파는 곳과 홍어무침을 파는 곳, 그리고 냉장고 바지를 잔뜩 걸어놓고선, 만지지 말란다.


먹을 것을 보니 또 뱃속에서 난리다. 뽈록배를 내려다보며, ‘참아야 하느니라’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할 수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옥수수 하나를 주문했다. 꿀벌이 왔다 갔나? 완전 꿀맛이다.


암사종합시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벌써 출구가 보였다. 출구 한켠에 놓인 자전거 뒤로 교회탑과 하늘이 이쁘다. 찰칵! 이제는 동네 풍경을 찍는 일에 도사가 되었다. 저 앞으로 주택가가 가득했다. ‘아파트가 없네?’ 어렴풋이 기억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은 ‘암사1동’이다.


암사1동의 주택들도 오래되어서인지, 낡은 먼지들이 나비처럼 나풀거렸다. 그 안에서 또 오랫동안 묵혀온 동네의 포근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뭐, 감상을 하기에는 너무 더웠다. 왜 이리 뜨거운 거야? 목에도 벌써 땀이 가득이다. 저 앞으로 이발소 하나가 보였다. 더운데 이발이나 하고 갈까? 매장 앞에 걸려 있는 간판이 나를 훅! 잡아끌었다.


이용은 예술이다

바로 입장했다. 그날 나는, 처음 방문한 암사동에서 머리 깎은 ‘첫 남자’가 되었다.




암사1동에서 시작해 암사3동까지 주택가를 한참 걸었다. ‘서울명일초등학교’가 보이는데, 이 옆이 곧 명일동인가 싶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곳은 강동구 ‘고덕동’이었다. 명일동까지는 내 기억 속 구역이었으니, 결국 암사동과는 멀지 않은 셈이었다. 큰 길 건너편은 재건축을 마친 듯,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하늘로 우뚝 솟았다. 재잘대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아이들이 참 귀엽다.


이제 암사동의 진짜베기, 신석기 유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지도를 보니 ‘암사역사공원역’ 방향으로 가야 할 듯했다. 역 근처에 마을 입구가 보였다.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오래된 마을인 듯, 입구에는 옥수수나무가 가득했다. ‘와~ 여기에 마을이 있었네?’ 바로 유적지로 갈까 하다가 마을로 들어서기로 했다. 아주 조용한 동네다. 집집마다 ‘개조심‘ 문구가 살벌하기는 했지만, 어디에도 개소리는 안 들렸다. 시골도 아닌 것이 시골길이다. 좁은 길로 풀나무가 손인사를 하고, 또 저 앞으로는 작은 측백나무들이 도열을 한다.


길 끝이 막혀있었다. 다시 돌아 나와 마을을 구석구석 탐험하는데, 집들이 아주 이뻤다.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다들 왔을까 싶었다. 나름 대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정착하고 싶으나,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곳 같다. 게다가 아산병원 하고도 멀지 않으니, 노년에 살만한 동네이다. 자기 개성대로 지어진 주택들이 매력적이다. 이정표를 보니 ‘양지마을’이라고 씌어있다.


꽃들을 살피며 걷는 데, 그 마을의 또 다른 끝은 작은 동산으로 이어졌다. 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얕고, 그러나 풀은 무성해서 길이 있나 싶었다. 그냥 돌아 나갈까 하다가, 이런 데서 모험가 정신이 뿜뿜 했다. ‘그래! 가보자.’ 그래도 주민들의 산책로인지 다듬어진 흙길이 조그맣게 이어져 있었다. 나름 아마존이라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요란하다. 그 동산 위 끝에 한 노인이 잠들어 있었다. 조망할 수 있는 경치는 없었지만, 그 위에서 저 풀숲 사이로 ‘구리암사대교’가 보였다. ‘아! 여기가 그 올림픽대로를 타고 춘천을 가다 보면 나오는, 서울 끝에 무심코 지나쳤던 산이었구나!‘ 그제야, 대충 여기가 어느 지점인 줄 알겠다. 스스로 신기했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내가 굳이 걸어서 여기까지 올 일이 있었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인연인가 보다.




산길을 타고 내려오니 드디어 ‘서울 암사동 유적지’가 나왔다. 결국, 입구 쪽이 아닌 저 끝 부분으로 해서 들어온 셈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당연히 유적지를 둘러보고 가려고 했다. 입구에서 표를 끊으니 500원이다. 엄청 싸네? 하면서 들어갔는데, 아뿔싸 폐점시간까지 20여분 밖에 안 남았다.


‘이건 뭐지?’ 인포데스크에서 그 어떤 안내도 없었으니 말이다. 마지막 20분 남겨 놓고 500원 벌은 건가? 싶었다. 어쩔 수 없지. 가능한 최대한의 동선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유적지에 사람들이 당연히 안 보인다. 한 둘의 가족들은 서둘러 나가고 있다. 일단 움막을 보고, 고인돌! 하면서 찾는데, 고인돌은 아무래도 보이질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먼지 풀풀 날리도록 걷는데도 안 보인다. 이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까지 와서 고인돌도 못 보다니. 결국, 폐점 시간 1분 정도를 남기고 유적지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암사 선사유적지’에는 원래 고인돌이 없덴다. 결국, 혼자 난리였었군.



암사동 선사유적지 옆으로 대로변이 매우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 ‘서원마을‘ 간판이 보이고, 그 뒤로 산과 이어지는 ’양지마을‘과는 오랜 세월을 서로 어깨동무하며 지내온 듯싶다. 또 저 앞으로는 ‘선사마을’이 보였다. 마지막 발길을 다시 선사마을로 향했다. 서울의 끝자락이며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어 마을은 아주 조용했다. 지금은 관람객들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노을 지는 해의 뒤편에 서서 저녁 밥상을 짓는 풍경이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한적한데, 엄연한 서울이라는 것이 놀랍다.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녀봤지만, 이곳은 내가 본 ‘가장 시골다운 서울’이었다.





다시 암사1동으로 건너왔다. 태양빛이 하늘빛을 수놓는다. 파란 하늘이 이내 노랗게 물들어간다. 상상하지는 못했었다. 오늘 암사동에서 만난 세 개의 마을과 산길, 그리고 저 멀리 암사대교와 올림픽대로를 신나게 달리던 자동차 소리. 그 못지않게 컸던 산새 소리들.


하지만 또 넉넉하면서도 고요했던 마을의 정취와 짧은 여정이었지만 가장 바쁘게 사진을 찍었던 유적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돌아가는 길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많은 풍광들을 기억에 담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내게도 세컨드 하우스가 있다면 건물 하나쯤은 짓고 싶었던 양지마을도 인상적이다. 암사동 현대 아파트에 사는, 그 친구는 암사동에 이런 매력적인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 제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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