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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27. 2024

3. 이방인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할머니 집에서 잠시 지내보는 건 어떻겠냐고 먼저 물어본 건 엄마, 동주였다. 지아는 학교를 그리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학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아이도 아니었다. 엄마 동주도, 아빠 경석도 하나뿐인 딸이 큰 소란 없이 사춘기를 시작한 것에 안심했다.



지아는 3살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지아였지만, 집에서는 한국말만 했기에 이탈리아 말을 할 줄 모른 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첫 3개월은 그야말로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낯선 환경과 힘든 의사소통으로 어린 지아는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급기야 눈을 깜빡이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틱이 생겼다. 그렇다고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동주와 경석도 낯선 나라에서 살아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주는 디자인을, 경석은 성악을 전공했다. 둘 다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기에 아르바이트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결혼을 하자마자 함께 밀라노로 유학을 왔다. 유학 온 지 1년 만에 지아가 생겼다. 동주와 경석은 경쟁이 심한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보다 이탈리아에서 낳고 키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어와 이탈리아어, 영어를 넘나들며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이민자 2세 아이들의 모습도 좋아 보였다. 진료비와 입원비가 공짜인 것도, 경석이 학교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도 밀라노에 계속 머물 이유가 되었다. 꿈과 희망, 재능에 대한 인정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울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아가 너무 힘들어한다면 과감하게 이탈리아 삶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염려했던 것과 다르게 지아는 어린이집에 천천히 적응했고, 친한 친구들도 생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긴 했지만, 다행히도 더 심해지진 않았다. 

지아는 초등 5년, 중등 3년을 별 탈 없이 다녔다. 지아를 향해 "치네제(중국인~)"라고 말하며 눈을 양쪽으로 찢는 행동을 하는 얄궂은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동네 친구들이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지아는 역사와 문학 수업을 가장 힘들어했다. 모르는 어휘가 나와도 부모님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대신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공부했다. 다행히도 수학과 과학은 이탈리아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편이었다. 역시 한국인이라서 수학을 잘한다는 말을 곧잘 들었다.

지아에게 문제가 생긴 건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였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예술전문고등학교와 과학전문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 지아는 예술을 전공한 부모님과 다르게 예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일반 인문고로 진학했다.


지아의 담임 선생님은 50대 중반 여자 선생님으로 이민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아시아 사람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지아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수학을 잘하면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암기하게 만든다면서? 혹시 너도 외워서 풀었니?" 하며 깎아내렸다. 문학 시간에 어려운 이탈리아어를 지아가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아시아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살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라며 나무랐다. 특히 선생님의 주관적 견해로 이루어지는 구술시험 결과가 언제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낮게 채점되었다. 

이런 선생님의 영향은 다른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조금씩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아는 그저 참아야만 했다. 선생과 학생이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선생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그 학교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학교를 옮기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전학생에게는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불공정한 처사를 참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따지는 순간, 낙제를 면할 수 없었다. 낙제가 워낙 비일비재한 이탈리아지만, 지아는 그것만큼은 면하고 싶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틀어막으며 말했다.

"누가 마늘 먹고 왔니? 교실에서 마늘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창문 좀 열어. 지아, 네가 김치 먹고 온 거 아니야? 한국 사람들은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면서?"

그날 이후 지아는 등교를 거부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동주와 경석은 전전긍긍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지아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대답뿐이었다.



지아의 아빠, 경석이 음악 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극단의 오디션을 봤지만, 최종에서 매번 떨어졌다. 짧으면 1개월, 길면 6개월씩 파트타임으로 극단 공연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수입이 없으니 삶은 늘 불안정했다. 극단 파트타임과 여행 가이드 일을 병행하던 경석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가족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늘 성악과 오페라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왔던 동료 친구들 중 다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경석처럼 취직을 해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린 친구들과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그 허전함을 달랬다. 

지아의 엄마, 동주는 짧은 이탈리아어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부터 나고 긴다는 유학생들이 모인 밀라노에서 동주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온 어린 학생들은 이탈리아어도 빠르게 익히고, 유명 디자이너 아래에서 일을 배우며 공부했다. 하지만 동주는 그 시간에 지아를 낳아 키워야 했다. 낯선 나라에서 임신과 출산을 거쳐 육아를 하고 나니, 동주에게 남은 건 부끄러운 이탈리아어와 후줄근한 옷차림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전공이 패션 디자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동주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선택했다.

지아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스스로 등하교를 할 수 있는 중학생이 되고서야 비로소 시간이 생겼다. 이미 전공과는 사이가 멀어질 대로 멀어진 동주는 평소에 좋아하던 커피를 공부하고 싶었다. 마침 지역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과정을 저렴하게 수강할 수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 중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동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카페는 아침 7시 30분에 문을 열었고, 저녁 8시에 문을 닫았다. 그 카페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손님들이 원하는 커피를 만들어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밤낮으로 바쁜 부모님에게 지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탈리아에 남기로 결심했다는데….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인종차별은 부모님이 사회에서 경험한 것에 비길 바가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욕을 참으면 참을수록 지아는 자신이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았다. 쌍꺼풀 없는 눈, 낮은 코, 작은 입. 단 한 번도 자신의 외모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동양적인 외모가 싫었다.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삶을 내 탓이라고 떠넘기는 부모님도 미웠다. 그 모든 상황이 지아의 숨을 조여왔고, 사라진 줄 알았던 틱이 다시 나타났다. 손톱을 물어뜯던 습관은 점점 심해져 손끝의 살갗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피가 나 쓰라림을 느껴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지아가 학교에 가지 않은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지아야, 여름 방학 동안 한국 할머니 집에서 잠깐 지내보는 건 어때? 8월 휴가 때 데리러 갈게. 한국에서 지내보고 어디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지 네가 스스로 생각해 봐. 엄마 아빠는 널 위해 이탈리아에 남는 걸 결정했지만, 그땐 네가 너무 어려서 물어보진 못했잖아. 이젠 너도 네 삶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


2~3년에 한 번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가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던 지아는 한국의 삶이 마냥 좋게 보였다.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게 어떨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아는 당장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었다. 자신의 외모와 다를 바 없는 곳에서 마음 놓고 자유롭게 누려보고 싶었다.

"오케이, 좋아. 갈게."

열다섯의 지아는 할머니와 한번 살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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