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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16. 2024

포켓커피 3. 잊혀질 권리

<소설> 결말은 자유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면 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의 의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된다면 난 여전히 존재한다. 예수님의 육신은 이미 2천 년 전에 사라졌지만, 그를 믿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존재하여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완. 전. 히.


내가 사라지면 내 모든 것 또한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집, 내가 사용했던 물건, 나와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 내가 사라지면 주인 없는 물건들은 쓸모가 없을 테니 버려지거나 태워질 것이었다. 나와 밀접하게 관계했던 사람은 그나마 조금 슬퍼하겠지만, 내 이름만 알거나 얼굴만 알던 사람들은 내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여전한 삶을 살  것이었다.


나는 내가 없을 때 일어날 만약의 일을 대비해 sns를 하나씩 탈퇴했다. 내가 없는데 내 모습이 남아있는 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에 남아있는 사진도 모두 지웠고, 구글포토에 남아있는 사진도 모두 삭제했다. 쓰레기통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하지만 내 지인들의 sns는 간과했다.

그들의 계정에 남아있는 사진이 여전히 돌아다닐 줄이야....



난 그리 철두철미한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허술한 면이 너무 많아서 경은이에게 핀잔을 듣곤 했다. 왜 그렇게 앞만 보며 사냐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경은이가 말한 '앞'은 미래나 앞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내 시야의 앞만 보고 사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경은이는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시야의 360도를 모두 볼 수 있는 말과 같았다. 옆과 뒤까지 너무 잘 볼 수 있어서 일부러 가리개를 채우고 앞만 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 덕분에 매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옆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를 보지 못해 부딪히고,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규민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눈가리개였다.


피렌체로 갑자기 떠난 이유는 내 진짜 시야를 찾기 위해서였다. 내 시야를 가리는 규민이 있으면 절대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야 했다. 피렌체는 나와 경은이가 오랫동안 동경했던 도시였고, 내 시야를 되찾기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돔에 올라 내 시야로 쏟아지는 정경을 확인한 순간, 드디어 내 눈이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한국사람처럼 생겼지만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했지만, 이상하게 막힘없이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리노에 사는 그는 잠시 휴가로 피렌체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토리노가 어디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피렌체와 로마, 나폴리와 밀라노가 전부였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뭔가 어색하거나 말하기 힘들 때 나타나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마도 내 한쪽 볼엔 보조개가, 다른 한쪽엔 미소가 어려있었으리라....


규민은 이런 내 표정을 처음엔 사랑스럽다고 했고 나중엔 바보 같다고 했다. 그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모르는 남자도 꼬이는 법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나는 내 얼굴에서 보조개를 지울 수는 없으니 대신 미소를 지웠다. 그런데 두오모 쿠폴라돔에서 되찾은 내 시야 덕분에 다시 내 얼굴엔 보조개와 미소가 장착되었던 모양이다.  


한국사람처럼 생겼지만 한국말은 못 하는 남자의 이름은 루까였다. 루까는 아주아주 어렸을 적에 토리노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며 자신도 생긴 건 한국사람이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너무 힘들었겠다는 위로를 해야 할지, 그럼에도 이렇게 잘 자랐느냐는 칭찬을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네 삶을 응원한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해야 할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루까는,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괜찮아. 난 이미 익숙한 걸."

라고 말했다. 나는 "익숙하다는 것이 모두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영어로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대신 구글번역기에 한글로 쓰고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눈썹을 치켜뜨며 양손을 옆으로 흔들었지만 난 그 의미도 알지 못했다.


그는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이탈리아 사람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꾸역꾸역 모른 척 찾고 살았는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날 보니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싶다며 말했다. 그가 당한 모욕과 그가 당한 상처들, 부모님에겐 말하지 못했던 괴롭힘들.


"그걸 다 어떻게 참았어?"

나는 끝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음.... 글쎄....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어. 말 그대로 내 생각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는 거지.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 고통 역시 실제가 아니라고. 머리를 비우고 생각의 스위치를 끄면 머릿속에 캄캄해져. 암흑이 되는 거지. 마치 우주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당한 모욕과 아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혹시, 다시 이탈리아에 오게 되면 연락해. 내가 한국에 가게 되면 너에게 연락해도 될까?"


그와 헤어지며 그는 연락처를 주었다. 하지만 난 내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일도, 그가 한국에 올 일도 없을 거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평생을 후회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건네지 못했다.



피렌체에서 내가 산 건 고작 포켓커피였다. 여행자들이 주로 사 가는 기념품 중에 하나였다. 사실 냉장고 문에 붙이는 마그네트를 사고 싶었지만, 이런 물건을 사면 내가 사라질 때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대신 언제든 먹어 없앨 수 있는 포켓커피를 샀다. 어떤 물건이든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특별한 물건이 돼버리니까. 그게 무엇이든 크게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세상은 실제 세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나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육체가 없기에 좀 더 자유롭지만,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할 길은 없다.

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경은이의 페이스북에 남아있던 5년 전의 사진, 그 사진 때문인 것 같다. 경은이는 어째서 내가 남아있는 사진을 지우지 않는 것일까? 그게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페이스북 친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규민이 보이고, 규민이가 곧 결혼할 여자가 보이고, 그 여자의 친구와 가족이 보인다. 그것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띄엄 보다 보면 다시 존재하고 싶어 진다. 존재에 대한 열망은 후회로 이어지고, 내가 떠나기로 결심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쿠폴라돔에 서서 내 시야로 쏟아지던 그 정경.

이제껏 날 가리고 있던 존재들.

그게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은 내 삶의 무의미함.



나는 고민하다가 내가 남아있는 경은이의 페이스북 사진에 댓글을 달았다.


"경은아, 제발 나 좀 지워주겠니?"


나는 제발 잊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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