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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3. 2024

친애하는 나의 인친에게 1.

<소설> 결말은 자유

핸드폰 카메라를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안경을 올려 쓰며 눈을 찡긋거린다. 충전 케이블을 휴대폰에 연결한 후 거치대에 고정시킨다. 내 모습이 잘 보이도록 한번 더 각도를 바로 잡는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라이브 버튼을 누른다. 잔잔한 긴장감이 가슴속에서부터 전해진다.  라이브방송 제목란에 "조금 더 긴 글쓰기에 대하여"라고 썼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 하단의 가운데에 위치한 라이브방송 버튼을 눌렀다. 빨간불이 깜빡거리더니 화면 가득 내 모습이 담겼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내쉰다.


@redbook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humidy333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hongrey_writing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eungi_star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입장하셨습니다.

@..... 입장하셨습니다.

@..... 입장하셨습니다.


라이브 방송을 보러 여러 인친들이 줄줄이 입장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레드북님 잘 지내시죠? 요즘 매운맛 책리뷰 잘 보고 있어요. 휴미디님 어서 오세요.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홍그레이 작가님,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은지스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입장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아이디를 부르며 안부를 전한다. 20명쯤 들어왔을 때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오늘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다들 글쓰기를 어려워하시는데요, 사실 우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모두 인스타그램 하시잖아요. 인스타그램 하실 때 글 쓰시잖아요. 그 짧은 글도 글쓰기예요. 그리고 다른 인친들 글에 댓글 달잖아요. 그것도 글이에요. 또 우리 카톡 하루종일 하잖아요? 카톡 메시지 보낼 때 이게 글이라는 걸 생각하지도 않고 하죠. 하지만 그것도 글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eungi_star : 저는 글을 길게 쓰는 게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hongrey_writing : 작가님, 전 이모티콘이 편해요. 아니면 줄임말?


"은지스타님 길게 쓰는 게 힘들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본 은지스타님의 글은 충분히 길던데요? 그리고 문장이 참 감각적이라고 느꼈어요. 요즘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모두 같은 말을 하거든요. 성공과 돈. 딱 그 키워드가 들어가야 인기를 끈다고 해요. 그런데 은지스타님의 글은 뭐랄까, 창문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작은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켜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글을 좀 더 길게 쓰고 싶으시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써보세요. 그냥 딱 한 줄로 쓸 수 있는 문장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은유적으로 쓰면 조금 더  길게 쓸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카페에서 찍은 사진에 글을 쓴다고 할 때, 어디에 있는 어떤 카페가 아니라 무엇하러 이 카페에 갔는지, 카페 분위기는 어떻고 사장님은 어떤지, 그 메뉴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지, 카페에 앉아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주위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관찰하면서 글을 쓰면 엄청 긴 글이 되겠죠? 물론 sns에서는 짧은 글이 대세지만요, 에세이를 쓰고 싶으시다면 조금 더 길게 쓰는 연습을 sns에서 해보세요."


@eungi_star : 와, 작가님 정말 감사해요. 왠지 힘이 나네요. 꼭 해보겠습니다.


"홍그리 님, 사실 저도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이모티콘이 없으면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말 열 마디보다 울고 있는 이모티콘 하나 사용하는 게 훨씬 편하지요. 이모티콘은 정말 유용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모티콘이 함축하고 있는 표정, 감정, 느낌을 글로 서술해서 써보시면 글이 좀 더 길어질 수 있어요. 만약에 조금 더 길게 쓰고 싶으시다면,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모티콘을 떠올려보시고 그 이모티콘을 풀어서 써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이런 이모티콘을 쓰고 싶네요."


나는 두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이모티콘을 댓글창에 남겼다. 그러자 엄지손가락을 추켜 든 손가락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정말 말로 하면 너무 어색하고 쑥스러울 것 같은데 이렇게 이모티콘으로 하니까 훨씬 편하네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짧은 글쓰기가 대세인 요즘, 왜 조금 더 긴 글을 왜 써봐야 할까요?"




그 뒤로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라이브방송을 보러 들어왔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내 인스타그램 방송에 50명 가까운 사람이 들어와서 들었다는 건 고무할 만한 일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책 쓰기에 관심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관없다. 이 관심이 곧 출간할 내 책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이렇게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방송을 켜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이렇게 말을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하는 이유는 모두,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함이다.

책 제목은 "이제는 긴 글을 써야 할 때"이다. sns에서 짧은 글이 주를 이루는 환경에서 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방법 등이 담겨있다. 출판사도 이제 막 시작한 일인 출판사이고, 나도 아직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손과 발로 뛰어야 한다. 이번엔 꼭 1쇄를 다 팔고, 베스트셀러 딱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이런 온라인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야 내 강의를 만들어 팔 수 있다. 그래야 나도 남들처럼 성공과 부의 법칙에 대해 떠들 수 있다. 그래야 나도 작가 인플루언서가 되어 유명해질 수 있다....


"자, 오늘도 들어와 주시고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라이브방송을 할 생각이에요. 글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말하면서 소통하니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여러분 얼굴도 직접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다음엔 줌미팅을 한번 만들어서 직접 얼굴 보며 소통해 볼까요?"


@hunihuni678 : 네. 좋아요. 작가님 저 꼭 갈게요.

@eungi_star :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했어요.

@hongrey_writing : 수고 많으셨습니다.

 @borabookidoki_ : 저도 꼭 길게 써보겠습니다


"여러분~ 라방 후기를 인스타그램에 남겨주시면 제가 커피쿠폰 선물로 드립니다. 후기 꼭 남겨주시고요, 해시태그에 #이제는긴글을써야할 때  꼭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라이브종료 버튼을 눌렀다. 1시간 동안의 라이브방송을 하느라 핸드폰이 뜨거워져 있었다. 그만큼 내 두 볼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의자에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제 온라인세상에서 진짜 내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띠링.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렸다. 누군가가 나를 태그 한 모양이다. 아까 라방에서 말했던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들인 모양이다. 고무장갑을 벗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라방 후기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다.


@eungi_star 고경 작가님의 라방.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조금 더 길게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제 피드가 인스타그램의 창문이라는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잘 담아보고 싶습니다. #고경작가님 #이제는긴글을써야할때 #라이브방송


그 피드에 바로 들어가 댓글을 달았다.


'은지 님 가장 먼저 후기를 남겨주셨어요. 커피쿠폰에 당첨되셨어요. 제 디엠으로 쿠폰 받으실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창문 같은 은지 님의 글쓰기 응원드려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고무장갑을 낀다. 한 손에 수세미를 들고 변기를 닦는다. 여기저기 묻은 때와 얼룩을 닦으며 은지 님을 생각했다.


'정말 멋진 여자야. 어떻게 얼굴도 예쁜데 글도 잘 쓰지? 요리사인 것 같은데 요리 사진도 너무 멋지고 감각 있단 말이야. 조금만 더 잘하면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훅 늘 것 같은데 왜 계속 200명 가까이에 머물러 있을까?'



은지 님과는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알게 된 사이이다. 내가 올린 글쓰기나 책 쓰기 관련 피드에 종종 댓글을 달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요리 사진에 자주 댓글을 달았다. 각자의 피드에 올라온 사진으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서로 주고받은 댓글로 말을 트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마치 함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은지 님과 조금 더 친해진 계기는 내가 은지 님의 요리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내 피드에 올린 후였다. 누가 봐도 전문가 솜씨의 요리는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아니었다. 구절판을 담은 접시 하나도 감각스러웠고, 색감도 군침이 돌게 만들었다.

은지 님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너무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실례인 것 같아 물어보지 못했다. 단지 그녀의 피드에 감탄, 감동, 칭찬, 우와!! 만 남길뿐이었다.


그녀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 책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다는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용기를 듬뿍 주곤 했다.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요리책도 한번 써보시라고,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녀에게 커피쿠폰을 주려면 전화번호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변기에 락스를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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