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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3. 2024

여행 왔어요! (1)

[단편소설] 결말은 자유

비행기가 드디어 땅에 착륙했다. 루까는 안전벨트를 풀고 엉덩이를 들썩 거렸다. 하지만 사람들 모두 그 자리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광판에 안전벨트 불이 꺼지지 않았다. 루까는 마음이 경직되어 옆사람처럼 그대로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


드디어 불이 꺼졌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칸에서 본인들의 짐을 찾느라 부산했다. 그 틈사이로 루까는 유유자적하며 일어나 통로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의 짐은 검은색 배낭 하나였다.

인천공항에 처음 들어선 루까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은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깨끗하고, 이렇게나 화려하고, 이렇게나, 이렇게나.....


그는 입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섰다. 공항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길게 선 줄을 향해 말했다.

"한국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루까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긴 줄 끝에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국 분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이번엔 루까 바로 앞에서 손짓하며 말했다. 루까는 그제야 그 말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손짓하는 그를 무시하며 서있었다. 그제야 루까가 한국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은 모양인지 다른 쪽으로 가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입국 심사를 하는 사람이 루까의 여권과 루까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순간 루까는 잘못한 것도 없이 가슴이 쏴~하게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네 자신의 여권을 돌려받았다. 루까는 땡큐, 하고 작게 말하곤 입국심사를 끝냈다. 이제 정말 한국이다.



지금까지 그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내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루까에게 필요한 것은 뭐든지 사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루까는 언제나 허전함을 느꼈다. 그건 아무리 좋은 부모라 할지라도 생김새가 다른 데서 오는 공허함이었다.



자신이 부모의 생김새와 다르다는 걸 인식한 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아이들이 내 눈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내 피부를 만져보고, 내 머리카락을 한가닥 뽑아갈 때 그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다름에서 오는 호기심이었다.

그 순수했던 호기심은 나이가 들수록 거부감으로 변했다. 같은 곳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학교에 다녀도 외모가 다르면 다른 사람 취급을 했다. 그런 호기심과 거부감을 호의로 바꾸려면 자신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루까는 그중에 공부를 선택했다. 싸움엔 영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부모의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루까의 부모는 공부 잘하는 루까를 더욱 아껴주었다. 그건 어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마음이었지만, 루까는 의심의 마음을 품었다. '본인들이 아시아에서 데리고 온 아이를 이렇게나 잘 키워냈다'는 만족감인 것 같아 루까는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공부를 잘해도, 공부를 잘 못해도 불편한 그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그건 정체성과도 연결된 것이었으리라.




루까는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미리 잡아 놓은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한국이었지만, 모든 곳에 영어로 적혀있었다. 지하철표를 끊는 것이 이탈리아와 달라 조금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어렵지 않게 표를 끊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하철을 탔다.

루까는 지하철을 탄 후 한번 더 놀랐다. 지하철이 이렇게 깨끗하다니, 한 여름인데도 이렇게 시원하다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렇게나 조용하다니....


홍대입구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중엔 루까처럼 외국인도 많아 보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루까를 툭 치며 지나갔다. 루까는 고개를 돌렸지만, 그 사람은 이미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쳐 간 후였다.

출구를 찾아 나가는 동안 루까는 여러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혔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루까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홍대입구역 4번 출구로 빠져나온 루까는 에이비엔비로 들어가 집주인이 보내 준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앞으로 직진했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간 후 작은 가게를 끼고 다시 한번 왼쪽으로 들어가서 100미터 들어간 후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자신이 예약한 방이 나온다. 루까는 착실하게 집주인이 올려놓은 집을 찾아 걸었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는 설렘과 긴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루까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분명 주위엔 자기와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이 널리고 널려있었지만, 그 사실이 루까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익스 큐스미?"

지나가는 한 남자를 붙잡았다.

"네?"

"쿠쥬 헬프 미?"

"어.... 영어를 잘 못해서... 아이 캔 낫 스피크 잉글리시."

"아, 오케이."

"한국사람 같은데 왜 영어로 말하고 지랄이야. 일본 사람인가?"

남자는 루까를 힐끗 쳐다보더니 바삐 걸음을 옮겼다. 루까는 망연자실 서 있었다. 숙소에 거의 온 것 같은데 그 앞에서 헤매게 될 줄이야.

"어이, 총각~"

그때 편의점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이 루까를 향해 손짓을 했다. 루까는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총각. 자네 말이야, 이리 와보라고."

자신을 가리키는 할머니를 향해 루까는 미소 지으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가는 건데? 우리말할 줄 몰라?"

"엄, 쏘리, 아이 켄 낫 스피크 코리안."

"뭐 그게 쏘리 할 일은 아니지. 어디 차이니즈? 제페니즈?"

"노, 아임 이탈리안."

"이탈리아라고? 아시아 사람 같은데? 뭐 어쨌든, 여행 온 거야? 여행? 트립? 트레벨?"

"예스, 예스 아임 룩킹 포 마이 룸, 에어 비엔비. 캔 유 헬프 미, 플리스? 두 유 노, 웨어 잇 이스?"

"그러니까 여기를 가야 되는가 보고만. 주소가 뭐지? 여기 편의점이 85번 이잖아. 여기 보여요? 85라고 써졌잖아. 이 집이 73번이니까, 저쪽으로 가면 되겠네. 여기, 넘버. 넘버를 확인하면 돼. 언더스탠드?"

"아, 오케이, 땡큐 베리 머치!"

"그냥, 날 따라와 봐."

할머니는 뒷짐을 지고 성큼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걸었다. 뒤에서 멀뚱 거리고 있는 루까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따라오라니까. 나 따라오라고. 팔로우 미."

루까는 그제야 할머니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땡큐 쏘 머치!"

"뭐 땡큐 할 일은 아니지. 여기 오는 외국인들이 그 집을 맨날 잘 못 찼더구먼. 아니 그러면 설명을 잘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 집주인이 좀 그래. 친절하지가 않거든. 아니 그러면서 왜 그런 숙소를 계속하는지 모르겠어. 사실 그 집주인이 남은 집이 그 집 하나인데 돈 나올 구멍이 그거뿐인가 보더라고. 사진 예쁘게 찍어서 올려놓으니 외국인들은 싸고 좋아 보이니까 그냥 오는 거지. 난 좀체 이해가  안 되더라니까. 여행올 사람들이면 좋은 호텔을 잡아서 여행할 일이지. 외국인이 여기까지 여행올 사람이면 그래도 돈 좀 있는 사람을 아니야? 아닌가? 아무튼 나는 작년에 일본 여행 갔을 때도 좋은 호텔에서 지냈거든. 하긴 패키지여행이라서 내가 숙소를 구하고 그런 건 안 했지만 말이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뭐 싼 숙소에서도 잘 지내는 모양이 드만. 나도 젊었으면 그랬을지 모르지."

루까는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할머니 곁을 따라갔다. 이해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말에도 루까는 이상하게 정감이 갔다. 한국말을 좀 배우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까지 했다.

"총각, 여기야. 여기가 73번. 알았지? 이름이 뭐야? 유어 네임?"

"마이 네임 이스 루까. 앤 왓 이스 유어 네임?"

"내 이름 물어보는 거야? 아이고 내 이름을 다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 내 이름은 경자. 김 경자. 뭐 도움 필요하면 저기, 아까 거기 편의점으로 와서 김 경자를 찾아. 알았지?"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루까는 그런 할머니의 작은 뒷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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