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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9. 2024

여행 왔어요! (2)

결말은 자유

숙소에 겨우 도착한 루까는 메시지로 온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지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상도 아니었다. 에어비엔비 사진으로 봤던 숙소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방 앞에 잔디 테라스와 미니정원이 있다고 했는데, 초록색 인조 잔디 위에 라운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것이 전부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까지 오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루까는 배가 몹시 고팠다. 짐을 대충 내려놓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뒤 루까는 밖으로 나갔다. 숙소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고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

숙소로 들어온 작은 골목을 지나자 길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뭘 먹을지 결정하지 못한 루까는 우선 골목 끝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고깃집 옆에 분식집, 그 옆에 치킨집, 그 옆에 고깃집, 마라탕 집, 중국집, 일식집..... 다양한 장르의 식당들이 일관성 없게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 루까의 눈을 사로잡는 식당이 보였다. 바로, 'Bella'라는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평생을 이탈리안 음식만 먹어 온 루까는 낯선 여행지에서 발견한 이탈리아 식당이 몹시도 반가웠다. 그리고 식당 이름 역시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이제 겨우 5시 30분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시간에 문을 여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다. 빨라야 6시 30분에 문을 열거나 대부분 저녁 7시가 되어야 저녁장사를 위해 문을 연다.

루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저하며 들어간 루까를 점원은 매우 반기며 맞아주었다.

"혼자 오셨어요?"

"엄, 쏘리, 아이 캔 낫 스피크 코리안.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오, 아임 쏘리. 예스, 아이 캔. 웰컴, 유 캔 씯 웨어에버 유 원트"

이 시간에 손님을 반겨주는 식당도 이상하거니와,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자리 아무 데나 앉으라는 말이 루까는 이상하기만 했다.

"오케이, 땡큐."

루까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원이 곧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루까는 메뉴판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파스타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그중에 루까가 평소에 즐겨 먹던 파스타를 발견했다. 해물이 잔뜩 들어간 "frutti di mare 스파게티"였다. 루까는 점원에게 스파게티와 화이트 와인을 한잔 주문한 후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서랍장에 있는 장식품과 테이블 위에 세팅한 접시 모두 이탈리아스러웠다. 하루 전에 떠나온 이탈리아에 다시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빵 향기가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이네 자신의 테이블 위에 애피타이저로 빵과 버터가 놓였다. 배가 몹시도 고팠던 루까는 빵에 버터를 곁들여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고소한 빵내음이 입안 가득 퍼졌다.

황홀했다. 이렇게 먼 나라에서 이탈리아의 맛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곧 주문했던 파스타와 와인이 나왔다. 파스타 위에 올려진 해산물이 너무나도 싱싱했다. 토마토소스 또한 신기할 정도로 입맛에 맞았다. 대충 시킨 화이트 와인 역시 해산물과 찰떡처럼 잘 맞았다. 루까는 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멀리 여행을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 느끼는 충만함. 그것은 분명 중독성이 매우 강한 것이었다.


해산물 파스타를 싹싹 비우고, 디저트로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까지 먹으니 그제야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피렌체에서 만났던 그녀를 떠올렸다.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랐다.



루까에게 인스타그램으로 디엠 온 건 2달 전의 일이었다. 루까가 올린 게시물을 보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처음엔 로맨스캠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네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 코리아에서 여행을 왔다는 바로 그녀의 친구였다.

루까는 그녀를 벨라라고 불렀다.

벨라의 뜻을 묻는 그녀에게 루까는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

"Pretty"


피렌체 두오모 앞에서 만난 그녀는 배가 몹시 고프다고 했다. 그동안 피자와 파스타만 먹었더니 속이 너무 느끼하다며 한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루까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당을 찾아주었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녀는 냄새만 맡아도 매워 보이는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루까는 그나마 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잡채를 먹었다. 잡채를 먹는 루까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식당에서 잡채를 시켜 먹는 사람은 없어. 그건 명절 때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음식이거든."

나는 그녀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이탈리아에도 훌륭한 식당이 많은데 왜 굳이 한국 식당에 오고 싶었던 거야? 내일 돌아가면 실컷 먹을 수 있잖아."

"음..... 글쎄.... 왜 그럴까? 익숙한 것이 좋아서가 아닐까?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함이지. 장소도, 공간도, 들리는 것도 모두 낯설기만 하지. 그게 처음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편해지기도 하거든. 그때 딱 떠오르는 게 고국의 음식인 것 같아. 자기 나라에서 많이 먹어 본 음식이라 할지라도, 낯선 도시에서 먹는 자기 나라 음식은 또 다른 맛이거든."

"글쎄.... 난 굳이 그럴 것 같진 않아....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음식에 도전을 해봐야지."

"나중에 네가 한국으로 여행을 와보면 알겠지."

"나, 진짜 간다? 이번 여름휴가 때 갈 거야. 가서.... 연락해도 될까?"

"글쎄.... 내가 그때도 한국에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어."

"그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린 진짜 인연인 거야."

"ㅎㅎㅎ 그런가..... 인연이라....."


이렇게 말하던 그녀는 끝내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가 보낸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올린 사진 뒷배경에 자기 친구의 얼굴이 나왔으니, 삭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벨라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벨라의 친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루까가 한국으로 휴가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루까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이면 서울에 도착하니,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그전엔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서울에 오신다고요? 저도 궁금한 게 많습니다. 저도 한번 뵙고 싶은데 언제 가능할까요?"

"저는 내일이라도 당장 가능합니다. 어차피 혼자 자유여행 하는 거니까요."

"숙소가 어디시죠?"

"홍대입구역입니다."

"그럼, 내일 저녁 8시,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쪽에 있는 달 카페에서 만나기로 해요."

"네. 알겠습니다. 내일 봐요. 아참, 당신 이름은 뭔가요?"

"저는 경은이라고 합니다. 신경은"



루까는 한국에서 벨라를 다시 만날 희망을 품고 왔다. 다시 만난다면 우린 인연이라고 했던 그 말을 벨라는 기억할까? 그녀의 친구 경은은 어떤 사람일까? 경은이 벨라에게 말했겠지? 그리고 함께 나오겠지?

천천히 저녁을 다 먹은 루까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8시가 되려면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아있었다. 동네 구경을 조금 더 하다가 약속 장소로 가면 될 것 같았다.

루까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음식은 어떠셨어요?"

"꽤 맛있었습니다. 제가 이탈리안이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맛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 세프가 피렌체에서 5년 동안 요리를 배웠거든요."

"어쩐지, 맛이 딱 이탈리아 맛이더군요. 잘 먹었습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국엔 왜 오셨어요?"

"여행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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