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신점을 보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당시의 나는 지금의 전공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다른 전공으로 바꿀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었다. 당시 전공은 취업이 쉬운 편이었지만 내 적성에 맞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바꿀 것을 고민하던 전공은 취업은 어렵지만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었던 학문이었다. 이전까지는 교과서와 시험공부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나는 생전 처음 부딪힌 일생일대의 고민 앞에서 장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이나 친구의 조언도 결정에 확신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정보도 지식도 없었기에 쉽게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학동기가 신점을 추천했다. 자신은 엄마와 함께 어릴 때부터 신점을 봤었는데 인생의 고비마다 꽤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서 생전 처음으로 신점을 보러 갔다.
TV에서 봤던 화려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의 장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 주택가에 위치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는 신점 장소라는 점을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평범했다. 거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안방으로 들어가 역술가를 만났다. 정확히 역술가인지도 모를 사람이었지만 절실했던 나는 마음속의 고민을 가장 솔직하게 털어놨고 진로를 바꾸는 것이 어떤지를 물었다. 그때 역술인이 했던 말은 20년이 다 된 지금도 생생하다. 그 결과 진로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을 얻었고 지금도 생업의 수단이 된 직업을 그때 선택했다.
그 기억이 있었던 탓일까.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게 된 나는 일 년에 한 번씩은 신점을 보러 다녔다.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서울과 수도권의 신점집을 순회했다. 이후 한동안 내 관심사는 연애와 결혼이었다. 독신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던 내게 역술가들은 하나같이 혼자서는 외로워서 살기 어려우니 반드시 결혼을 한다고 했고, 그 말을 위안 삼아한 해 한 해를 보냈다. 신기하게도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결론적으로 신점이 맞은 것이다.
결혼을 기점으로 신점을 통해 얻고자 하는 확신이 필요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자는 것이 내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파고를 반복하듯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신점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억누를 수 없었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대면 신점 대신 온라인으로 신점을 보게 되었다.
올해도 여김 없이 온라인으로 신점을 보았다. 작년에는 생각보다 운이 좋지 않아 어두운 시기를 보냈는데 다행히 올해는 빛이 찬란하게 비친다는 결과였다. 안도감을 느끼며 올해는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