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3. 욕심

마음관찰, 명상과 수행

by 청춘


최근에 “사소한 불행에 인생을 내어주지 마라, -요한크라우네스“를 읽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토아철학 기원전 300년 전에 철학자가 이야기 한 내용으로 52개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책이다. 기원전 부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 이야기 많다.


어떻게 2천 전에 조상들의 놀라운 철학과 사상은 현재보다 더 훌륭한가? 기술과 과학의 발전의 2천 년의 시대를 지나, 다시 부처님, 예수님,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의 이야기에 관심과 학습, 수행이 필요한 지금이다라고 생각 든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함을 위해, 성당에서 미사 끝날 즈음에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모든 신자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웃는 모습으로 마음의 평화, 가난한 이, 마음에 단순한 사람이 되어 폭풍우가 치는 마음이 아닌 평화로운 마음으로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라는 이야기처럼…


나는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어릴 때부터 행복한 가족이 지상과제였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행복한 가족처럼 우리도 행복한 가족이 되는 것을 위해 옥상에 가서 혼자 기도도 많이 했다. 종교가 없던 시절,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인지 하나님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평화로운 가정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였다. 그리고 집안에서 문제를 안 일으키려고 얌전한 잔소리가 안 나오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로 커나간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이 아닌 곳에서 자라서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 이기적인 사고가 나의 본질적인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듯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이가 들면서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이러한 환경이나 이벤트가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나는 왜 화가 많은가? 나는 왜 잠을 자는 것이 행복한가? 그리고 난 무언가에 몰임 해 있는 수간이 행복한가? 술을 과하게 먹으면 왜 공격적이 되는가? 여러 가지 물음이 나에게 다가오고 이때 즈음에 유식경이라는 글을 보게 되고, 중앙일보 백성호종교기자를 알게 되고 우리나라 조선시대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어져 내려온 고승들을 책으로 만나게 되어 불교경전과 노자, 공자 묵자 등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이야기 및 이론은 읽게 된다.


그러한 독서의 결과인지, 내가 어릴 때부터의 소망인지 결론은 행복한 삶으로 결론 내려진다. 그럼 행복한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는 종교나 사상마다 기승전결은 다르지만, 나의 맘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진짜가 아닌 허상이라는 것, 이러한 나를 만드는 과정은 심우도에서 표현한 것처럼 나 자신의 실체, 참나를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유지하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 다른 관점으로는 나의 존재자체가 미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대자의 존재와 사랑을 풍성하게 하는 것과 그 절대자께서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면 살아가기 위한 수행을 하는 삶을 유지하는 것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자신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고 지혜롭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심우도에 대해서, [네이버 지식백과] 심우도 (한국의 박물관: 불교, 2000. 4. 20., 한국박물관연구회) ]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10단계로 그린 그림을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는데 이 불성을 소에 비유한 것이다.
좌선을 통해 불도를 터득하려는 선종(禪宗)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12세기경 중국 북송(北宋)의 곽암이라는 승려가 지은 것과 보명이 지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이 중 보명의 것은 목우도(牧牛圖)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엔 이 두 가지가 다 전해졌는데 마지막 그림에만 원상(圓相)으로 그려진 것을 보명의 목우도로 보면 된다. 곽암의 것은 모두 원상에 그려진다. 중국에는 소 대신 말을 묘사한 십마도(十馬圖)도 있고, 베트남에는 코끼리를 묘사한 십상도(十象圖)도 전해진다.
곽암의 심우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심우(尋牛) 인간이 소, 즉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원심(願心)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이다.

2) 견적(見跡)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그 발자국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오로지 목동의 마음에 달려 있다.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견우(見牛)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마음 깊은 숲 속에 방목되고 있는 소를 발견한다. 즉 자신의 성품을 보아 견성함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4) 득우(得牛) 마음속에 있는 소를 보았으니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소는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 한다.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 하는데 땅 속에서 제련되지 않은 금들을 막 찾아낸 것과 같은 상태로 많이 표현된다. 이때의 소는 실제로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삼독(三毒)에 물든 거친 본성을 의미한다.

5) 목우(牧牛) 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하여 소의 코에 코뚜레를 한다. 삼독의 때를 벗겨내는 과정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단계이다. 소가 유순하게 길들여지기 전에 달아나버리면 다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소가 차차 흰색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잘 길들여진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번뇌와 망상, 욕망이 끊겨서 소는 무심하고, 그 위에 있는 목동도 무심하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이다. 목동이 구멍 없는 피리를 부는 것은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한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에 와보니 소는 간데없고 자신만 남았다. 결국 소는 자신의 심원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집으로 돌아왔으니 방편은 잊어야 함을 보여준다. 곧 자신이 깨쳤다는 자만을 버리는 경지이다. 자만의 병은 수행자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무서운 덫이다. 이를 넘지 못하면 부처에도 걸리고 법에도 걸린다. 이것을 불박법박(佛縛法縛)이라 한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소가 사라진 뒤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야 한다. 깨침도, 깨쳤다는 법도, 깨쳤다는 사람도 없는 이것이 공(空)이다. 그래서 이 단계는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하였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텅 빈 원상 속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비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마한 번뇌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이제는 거리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는 경지이다. 이것이 부처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이때의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줄 복과 덕을 담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월드디즈니 픽쳐스/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든 인사이드 아웃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나는 불안, 화, 웃음,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에 대해서 실체가 없음을 이러한 감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뇌에서 만들어낸 작동 및 결과물에 지나지 않음을 참나, 성령을 통해서 인지하여 모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금을 만들어 내자. 하지만 이러한 수행이 순간순간 발생하는 감정과 나의 무의식 속에 저장된 자율신경계의 반응들은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통제가능함을 경험하고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래의 부처 미륵보살의 세상, 관세음보살의 만인의 부처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상,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의 오시는 날, 여러 모습으로 사람이 변화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는 성인들의 바람이 아닐까? 그래서 난 지금은 선택하였다. 가톨릭 신자, 바오로 로서, 매일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이러한 삶에서 체험하게 된다. 성령님이 오심을 수호천사님이 오심을 내가 하느님과 주예수 그리스도님, 성모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음을, 그러하기에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는 신자가 되고자 오늘도 기도한다.

우리는 존재자체 만으로도 사랑받아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항상 생각하자.

“세상에 있는 것을 내가 보는가?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있는 것인가? “


[ 사진 11. 조선시대 스님들 ]

경허선사한국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선사 ( 1849~1912 )

일화 : 한 스님이 부처가 무엇입니까? 묻자, 경허선사는 그 스님의 코를 힘껏 잡아당겼고, 아파서 소리를 지르자 웃으며 “ 이것이 부처다 “ 라 했다 합니다.


만공스님 ( 1871 ~ 1946 )
만공스님, 본공스님, 인홍스님.jpg 만공선사와 비구니 제자들

혜월, 한암, 만공 등의 제자를 통해 계보를 이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침체된 한국불교를 되살리고 선 수행의 맥을 어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후학으로 효봉, 서웅, 보월스님이 계신다.

일화 : 어떤 스님이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신발을 들어 보이며 “이것이 부처다 “ 이는 진리는 일상 속 모든 것이 진리를 담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한암스님 ( 1876 ~ 1951 )
한암스님의 좌탈입망의 입적모습으로 깊은 수행력과 정신적 경지에 이른 고승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모습이다.



경허의 맏제자 혜월스님 ( 1861 ~ 1937 )

일화 : 어떤 스님이 죽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혜월선사는 그 스님의 신발을 집어던지며 “ 네가 스스로 물어라 “ 이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깊이 참구 하라는 의미이다.


용성스님 ( 1864 ~ 1940 )

한글 불교 경전 번역과 대중화에 힘쓰시고 1919년 3월 1일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에 힘쓰셨다.






















진제스님 ( 1935 ~ ) 향곡스님으로부터 인가


송담스님 ( 1927 ~ ) 경허선사 – 만공선사 – 전강선사의 뒤를 잇는 선승으로 10년간의 묵언수행으로 묵언선사로 불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환속함.


청담스님 ( 1902 ~ 1971 )
성철스님과 봉암사 결사에서 수행가풍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불교 정화운동을 주도함.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역임함.


향곡스님 ( 1912 ~ 1979 )

경허선사 – 혜월선사 – 운봉선사 뒤를 있는 선승이며, 성철스님과 봉암사 결사하고, 20여 명의 스님과 용맹정진하였다. 깨달음을 얻고 부처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면 부처 또한 스스로 얾어매는 쇠사슬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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