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달 Nov 05. 2019

82년생 김지영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다.

 최근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은 책으로 먼저 봤다. 2017년에 책 선물을 받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변에 추천을 많이 했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한 여성의 인생에 녹여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너무 비약을 했다는 의견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80년대생 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의 세대, 더 나아가 우리 할머니의 세대까지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2019년 개봉한 이 영화는 책 보다 좀 더 담담하게 여성의 현실을 녹였다. 



남성이 표준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작년 알쓸신잡 방송을 보다가 놀랐던 부분이 있었다. 70년대 서울대 공대에는 여자 화장실이 없었고, 화장실에도 남녀 표지판이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고도 초기에 여성 입학을 거부했었다고 한다. 물론 과거보다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있다. 나의 전공은 사회학이다. 여성 사회학, 성의 사회학에 대한 공부를 했다. 불평등 사회, 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진보와 보수, 사회 구조 등에 다양한 부분을 공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졸업한 학과의 전공 교수들 중에는 여성 정교수가 없다. 서울대학교에서도 2018년도가 되어서야 경제학과에 72년 만에 여성 정교수가 뽑혔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졌지만 아직 깨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과 영화가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에 가둬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현재 인터넷에서 잘못된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으로 페미니즘의 원래 취지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변질되고 있는 것도 너무 안타깝다. 


 우리 엄마는 6남매 중 셋째이며 첫 째 딸이었다. 큰외삼촌, 둘째 외삼촌은 대학에 갔지만 엄마는 가지 못했다. 할머니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일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66년생이다. 불과 2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여자들도 당연히 대학을 가는 분위기가 생겼다. 엄마는 아직도 학업을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갖고 있다. 

 내가 알고 지냈던 동생이 회사 상사가 성희롱을 하고 주말에도 계속 연락을 했단다. 그래서 사내에서 신고를 하는데 초반에는 위로해주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하나둘씩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을 줄을 몰라. 예전에는 더 심했는데 말이야.' '장가간 사람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어. 잘못 걸린 거지. 불쌍해서 어쩌나.' 같은 여직원들 조차도 예전에는 더 심했고, 나는 다 참아왔는데 너는 이런 걸로 신고를 하니?라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었다.


 여성들은 밤길을 무서워한다. 늦은 밤 이상한 사람이 쫓아와 소리를 지르고 뛰어서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늦게 돌아다니는 내가 잘못된단다. 할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늦은 시간에 나갈 때는 절대 치마를 입지 말고 바지를 입고 나가라고 하신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남자들은 아무런 피해를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서로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으니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공감능력이 너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며 느끼는 것이 무거운 것은 무조건 남자 직원을 시키라는 인식이 많이 박혀있다. 정수기에 물이 떨어져 생수통을 끌고 와 정수기에 끼우려는 나를 만류하며 남자 선생님께 부탁하라고 말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 힘세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얘기하고 내가 한다. 나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은 내가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여자와 남자의 신체적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내가 하고 그 이상을 넘어가는 어려움은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사회로 나아간다면 좋을 텐데..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 육아를 하며 단절된 경력으로 인한 우울감, 반복되는 일상. 매일매일 해도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을 해나가다 재취업의 기회가 생겨 알아보던 중 그 현실이 좌절되었던 시점에 남편이 이야기한다. 


'그래 우리 좀 더 쉬면서...'

'나 쉬는 거 맞아?'


 집안일을 해본 적이 있다면 집안일을 하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 지 않는 일이고 매일매일 반복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집에서 육아를 하고 일을 하는 것이 쉬는 일이라는 생각이 왜 모든 사람들의 이미지에 각인된 것일까? 집안일, 집사람, 안사람.. 왜 이 단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것일까?

 나는 방송이나 주변에서 남성이 으스대며 '나는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고.'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 일은 내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공동의 일이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내가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얼마 전 민주당에서 '남자도 힘들다.'는 논평을 남겼다. 이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여자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테다. 이제까지 남자가 힘들다는 이야기의 영화, 드라마, 책 등이 많이 있었다. 가장의 무게를 다룬 영화도, 군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남자는 울면 안 된다며 우는 남성을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많이 다뤄왔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자도 이런 힘든 부분이 있다. 노력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인식 속에서 괴로운 부분이 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에게는 엄마로서는 늘 죄인이 되는 모습 등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내가 선생님을 하다니. 그때는 누가 알았겠어.'

'언니, 우리 때문에 선생님 되고 싶지 않아도 교대 간 거지? 등록금 안 들고 취업도 바로 되고.'

'뭐.. 너희 둘 다 아직 어리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양보하는 거지.'

'그래도 미안해.'

'누나 미안해.'


 제대로 대사를 적지는 못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복기해보면 결국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양보'다. 내가 더 힘들어, 네가 그 힘듦을 알아? 서로 핏대 세우며 싸우는 것이 아닌 그래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었겠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야. 그런 힘듦이 있었겠네.. 하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이해'.



이전 09화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