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물론 그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에 잡혀있는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기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 혼자 즐길 수 있는 식당, 술집도 많이 늘어났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같이 타인에게 치이기 때문에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공휴일에 나는 오랜만에 영화를 예매하고 영화관을 찾았다. 사실은 부지런을 떨기 위한 수단이었다. 영화라도 예매하지 않으면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영화 시간에는 조금 늦었지만 무사히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서 해야 하는 공부를 했다. 해야 할 공부는 많은데 회사 야근이다 약속이다 회식이다 등등의 핑계에 공부를 안 하고 있어서 다가오는 시험날짜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약속을 미루고 공부를 했다.
문득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사람을 좋아해서 약속도 많은 편이기도 하니까. 언제부터였을까.
모순덩어리의 삶
이효리 씨가 JTBC뉴스름에 나와서 했던 말이 있다. '조용히 살고 싶은데 잊히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모순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나도 사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혼자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그립달까.
혼자인 것을 싫어하고 혼자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것 등을 못하는 친구가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혼자 있었지 밖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나도 혼자인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독립을 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놓인 상황을 즐기고, 시간이 지나며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혼자서도 무언가를 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어진 것 같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음식점으로 레벨을 나누면서 웃는 것을 보면 혼자 하는 것을 못하는 사람들도,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레벨을 따지면 중간 정도인 것 같다. 혼밥러의 최고 레벨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던가?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까지는 가지는 못하겠으니. 그러나 레벨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도 카페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는 것은 살아가며 꼭 필요한 시간이니까.
경계 지키기
최근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경계가 허물어져 있는 것 같다. 현재 회사에 단체 카카오톡 방이 있다. 나는 퇴근을 하고, 연차를 쓰거나, 주말에는 절대 답장을 하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도 단체 카카오톡 방이 있었는데 물론 너무 친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이 개인 일상과 회사 일상의 경계가 붕괴되는 것 같아 답장을 하지 않곤 했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개인의 일상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면 조금씩 허물어지게 될 경계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금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 SNS 계정을 비공개로 바꿨다고 얘기하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어서 우울하다고 했었다. 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얘는 여행도 다니네? 이렇게 좋은 곳에 가서 밥을 먹어? 이 사람은 약속이 정말 많은 사람이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지인에게 말했다.
'원래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에요.'
나는 생각보다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신경을 쓰며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것이 나를 갉아먹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내가 사라진다. 내 중심을 지켜야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 자신도 잘 자랄 수 있다.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도 결국 신경 쓰게 되어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하여 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도, 평가를 하기도 한다.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싶지만 결국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누군가의 시선과 기분과 생각을 하지 않고 내 기분과 내 생각만 할 수 있는 시간.
하루의 끝에 한강 산책을 하며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언가 기분이 산뜻한 느낌. 나만 생각하고 내가 할 일만 생각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던 조용한 하루.
혼자인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바탕에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땐 언제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