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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Jan 10. 2019

일하면서 힐링하기

feat. 복실이와 후추

"쉬엄쉬엄해. 일하다가 더우면 꼭 쉬고! 그냥 여기서 푹 쉬다 간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아침에 잠시 밭에 들려 내가 먹을만한 식재료를 냉장고에 채워 주시곤 밭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겨두고 어디론가 가셨다. 사실 밭뿐만 아니라 밭에 딸려있는 창고형 비닐하우스(?)까지 나에게 맡겨두고 가셨다. 나는 밀양에 지내는 동안 이 창고형 숙소에서 생활을 했는데, 이곳은 잠자리와 샤워시설, 주방까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자연 속에 둘러 쌓여 인기척이 거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밀양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농사가 주업이 아니셨기 때문에, 여러 작물을 심어놓은 밭에 신경을  쓰고 계셨다. 밭에는 아로니아뿐만 아니라 풋고추, 깻잎, 방울토마토, 산딸기 등 다양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버님은 수확할 시간이 없으셨고, 작물들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님의 특명을 받아, 밭에서 딸 수 있는 모든 작물들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풀이 많이 자란 밭

텃밭이라고 하기엔 제법 큰 규모의 밭이었는데, 얼마나 신경을 못쓰셨는지 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 있었다. 어쩌다 보니 친환경 농산물이 된 작물들. 판매보단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시거나 운영하시는 식당의 식재료로 사용한다고 하셨다. (필요한 지인분들이 직접 수확해 가기도 했다)


이날은 아로니아와 고추를 수확하기 위해 복장을 갖추고 밭으로 나가는데 강아지 두 마리가 따라왔다. 이 집을 지키는 두 마리의 강아지, 복실이와 후추다. 사람을 하도 좋아해서 인기척만 들려도 아무에게나 달려가는 이놈들은 가끔 귀찮기도 했지만, 심심한 이곳에서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내가 바구니를 들고 밭으로 나가면 이 녀석들은 이미 내가 갈 곳에 도착해있었다. 아로니아를 수확하는 동안 내 주변에서 둘이 장난을 치며 놀거나, 내 다리를 건드리며 같이 놀자고 재촉했다. 그렇게 마구 뛰어놀다 지치면 내 주변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갑자기 세상모르고 자는 복실이와 후추가 부러워졌다.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뛰놀고 먹고 자고.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강아지들이 또 있을까? 자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가끔 찾아오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목이나 배를 만져주면 눈이 스르륵 감기면서 무장해제 모드에 들어가는 귀여운 모습에 자꾸만 애정이 갔다.

 

복실이&후추와 함께, 오전 일과를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아버님이 가져다주신 식재료와 밭에 있는 식재료들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복실이와 후추는 사료를 주었다)

돼지고기 볶음과 직접 수확한 방울토마토 & 아로니아(요거트 뿌려먹기)

확실히 밭에서 바로 따먹는 재료는 굉장히 신선하다. 특별한 소스를 쓰지 않아도 그 재료만이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이 뛰어나다. 괜히 몸이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소박하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더위도 식힐 겸, 근처 개울가에 다슬기가 많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기억나, 다슬기 채집통을 가지고 개울가에 나가 보기로 했다. 사장님은 식당일로 바쁘셔서 내일 아침에나 오신다고 하셨으니, 오늘 저녁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오늘 저녁으로 다슬기 라면을 먹겠다는 다짐과 함께 채집통을 들고 개울가로 나가보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다슬기 잡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속에 있는 다슬기를 잡기 위해 계속 허리를 숙이고 물속을 들여다보는데, 허리에 무리가 온다. 다슬기 라면을 끓여먹겠다는 나의 의지는 점점 꺾였고 결국, 다슬기'향'라면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소량의 다슬기를 잡았다. 


다슬기 잡기

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바구니를 들고 아로니아를 따기 시작했다. 확실히 다슬기 잡기보다 아로니아 수확이 훨씬 쉽다. 아로니아는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어서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로니아 수확을 마치고, 일하느라 잘 놀아주지 못한 복실이와 후추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하기

유유히 산책을 즐기며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평화로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이곳에 일하러 온 것인지 힐링하러 온 것이지 헷갈릴 정도다. 한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도시에서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이었다. 밭에서 따온 식재료들로 밥을 해 먹고, 개울가에 나가 다슬기도 잡고, 개들과 산책도 하고...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것처럼 마음 편히 지냈던 밀양의 어느 밭. 


"나중에 언제든지 또 쉬러 와"


그동안 복잡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갈 수 있게 해 주신 사장님과 이곳을 소개해주신 분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지역 음식과 지역 농산물을 주제로 전국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시골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집 밥을 얻어먹으며 151일간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직접 체험했던 농사일, 각 지역 농부님들의 다양한 이야기 등. 여행을 하며 느낀 모든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08.07-08.12

경남 밀양에서


@도시에서온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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