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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08. 2020

안갯속에 달리는 자유로

Intro



안갯속에 달리는 자유로



 아침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짧은 머리 친구 셋과 함께 파주 캠핑을 떠났다. 낮부터 신나게 커피와 케이크, 고기와 탄산음료를 먹고 마시며 놀았다. 비가 내렸던 것 때문인지 온통 습한 날이었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사방에 짙은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늘막에 손을 대면 물이 모여 흘러내릴 정도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위험해질 것 같아 차를 몰고 나왔는데 이미 안개는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걸어서도 코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결국 비상등을 켜고 20킬로의 속도로 천천히 캠핑장을 빠져나왔다.


 상향 등을 켜니 되려 안개에 빛이 반사되어 시야가 좁아졌다. 가로등이 없는 도로에 접어들자 친구들은 차라리 되돌아가서 텐트에서 자자고 했다. 하지만 안개에 갇혀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 선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길을 잘못 든 사이에 뒤에 있던 차가 추월해 갔다. 터널 속을 달리는 것인지, 논밭 속을 달리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오로지 앞차의 비상등 불빛에 의지해 자유로를 달렸다.


 얼마간 달리고 나자 다른 차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앞차를 놓칠세라 두려움에 열심히 좇던 우리에게는 천군만마가 나타난 듯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앞서 달리는 차들이 점점 늘어갔다. 도시의 불빛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에야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천천히 달리던 차들은 다시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 우리를 이끌어준 첫 차가 차선을 바꿔 사라지는 것을 보며 차 안에서 입을 모아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 차 덕분에 무사히 자유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날의 경험이 비혼 주의자로서 살아가려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부장제와 결혼을 거부하고 사랑 대신 우정을 택한 우리다.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안갯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사회에서 이들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이 좋아 바로 앞에서 달리는 차를 좇아 긴 어둠을 빠져나올 수 있다. 그 차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혼을 결심하지만 미래가 안갯속에 갇혀 잘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앞을 밝혀주는 깜빡이 중 하나가 되고 싶다. 그래서 뒤따라오는 이들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글을 쓴 이유다.








10년 차 룸메입니다



 룸메이트와 나는 2012년부터 같이 살기 시작해 2021년인 지금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굳이 동거인이 아니라 룸메이트라고 하는 이유는 세 채의 집을 거치는 동안 내내 침실과 옷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에서 특별한 부분이 몇 있다.


첫째, 둘 다 비혼 주의자로, 앞으로 쭉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 생각이다.

둘째, 고등학교 동창이고, 처음부터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셋째, 10년 간 단 한 차례도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온갖 취향이 다르다.


 함께 산 지 1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꾸준히 받았던 질문들을 토대로 우리 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파트 1: 집과 함께 자란다'에서는 우리가 함께 살게 된 계기와 살아왔던 집에 대해서 소개한다. 대학생, 사회초년생, 그리고 경력직으로 이직하기까지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를 통해 비혼 여성들의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파트 2: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있어'에서는 꽤나 다른 우리 두 사람이 여태 싸우지 않고 잘 살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소개한다. 더불어 친구와 살아도 될지 고민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목록도 준비해두었다. '파트 3: 함께 더 잘 사는 미래를 꿈꾸며'에서는 지속 가능한 비혼 라이프를 위해 준비하는 것들에 대해 소개한다. 본문보다 더 야심 차게 준비한 부록에는 '우리가 잘 맞는 룸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체크리스트와, 생활 동반자법, 주택청약 등 비혼 비혈연 가족으로서 법에 바라는 점을 정리해보았다.


 이 책으로 우리와 같은 형태의 가족들이 가시화되고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기기를 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비혼 비혈연 가족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74.4%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혼. 이혼. 재혼에 대한 견해], 미혼여자, 결혼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67.2%)+하지 말아야 한다(7.2%))에게 이런 형태로 사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결혼을 전제로 괜찮은 이성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에 전전긍긍하던 20대 시절보다 비혼을 결심한 후 30대인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안정감도 있고 심신이 건강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우당탕탕 재미있게 살고 있다. 부디 재미있게 이 이야기를 즐겨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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