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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10. 2020

둘이 사는 원룸, 3미터에 5미터

Part 1. 집과 함께 자란다 _ 첫 번째 집


원룸 1주일 트라이얼 버전이 1년 반 구독이 되기까지


 일주일. 방이 너무 좁으니 자칫 친구마저 잃을까 걱정이 되어, 아무 조건 없이 임시로 일주일을 먼저 살아보고 괜찮으면 정식으로 같이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하루 종일 학원에서 공부하고 잠만 자러 들어오니 문제없다고 했다. 전화를 했던 그다음 주에 아주 간소한 짐을 든 친구가 찾아왔다. 원룸에 기본 옵션으로 있던 작은 침대 옆에 요를 깔고 잤다. 혼자 있다가 옆에 누군가 있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룸메는 처음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낯을 가렸다. 고등학교 동창이었지만, 깊이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친구란 걸 새로 알게 됐다. 저녁에는 2인분의 볶음밥을 해서 나눠먹었다. 함께 편의점에 다녀오고 같이 한강을 걸었다. 나눈 시간만큼 서서히 가까워졌고, 어느 간격을 두고는 멈춰 섰다. 서로에게 편안한 거리를 찾아낸 것이다.


 함께 살면서 룸메는 전보다 학원이 가까워져서 편해졌고, 나는 월세를 받아 전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싸워서 둘 중 누구라도 집을 나가면 매우 곤란했다. 나는 취업 준비와 과제도 바쁜데 다시 알바 전선에 나가야 했을 것이고, 룸메는 다시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녀야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룸메이트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은 한 달이 되고, 일 년 반이 되었다. 혼자 살아도 부족한 그 작은 집에서 우리는 인생에서 제일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이겨냈다.






우울에 대하여


 가족에게서 학비와 주거비의 경제적인 지원은 받고 있었으나 동시에 가스 라이팅도 있었다. 걱정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간섭이 있었고, 감정의 쓰레기통 노릇을 해야만 했다. 자만할까 봐, 오빠에게 대들까 봐 그랬다는, ‘얘는 잘 못해요’라는 말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경제적 자립이 절실했다.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면 심리적으로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의 코앞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기를 지나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것은 온전히 룸메이트가 된 친구의 공이다. 좁다란 집에서 숨을 거둔 나를 발견하는 이를 상상하니, 정말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여러 번 달래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민폐가 따로 없다. 집에 왔을 때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기고 경제적인 여유가 더해지자 눈에 띄게 정신건강이 좋아졌다.


 2020년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43% 증가했다는 뉴스를 봤다. 간신히 지탱해왔던 일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심정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헤아려져 억장이 무너진다. 최선의 노력 끝에 대학에 입학하여 수많은 스펙을 쌓은 끝에 다다른 끝이 온갖 시험 취소와 기업의 채용 축소라니. 여태껏 쏟았던 에너지를 다시 주워 담을 기력조차 없을 것이다. 모든 문이 눈 앞에서 굉음을 내며 닫히고 사회에서 밀려나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살 일이 막막하고 다음 날 눈을 뜰 일이 무서울 정도의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살아서 일단 뭐라도 하면 뭐라도 남는다는 것을, 그 남은 것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고, 점점 나아질 수 있다는, 당신의 희망이 되고 싶다. 스물셋 스물넷에 우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매일 울고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 다니던 나도 살아서 서른둘이 되었다. 기다리다 보면 뿌리는 깊어져 언젠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니까. 단단해 보이는 모든 사람의 뒤에는 수십 번 무너진 자신을 다시 단단하게 세운 과정이 수백 번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에 비닐을 씌우고


 둘이서 작은 집에 살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일주일에서 시작된 동거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벙커 베드를 주문했다. 아래에 책상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긴 침대였다. 침대 아래 책상 두 개를 붙여놓았다. 공간을 세로로 쓰기 시작하자 훨씬 넓어진 기분이었다. 좁아터진 옷장으로는 두 명 분의 옷을 감당할 수 없어 2단 헹거를 화장실 문 뒤에 설치했다. 문을 반밖에 열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옷을 수납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짐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삶이었다. 화장실도 어찌나 좁은지 샤워를 하면 휴지가 물에 흥건하게 젖었다. 결국 아이디어를 낸 게 휴지에 비닐을 씌워놓는 것이었다.


 가끔 친구들도 초대했다. 다들 휴지를 보고 한 번씩 웃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요리해먹었다. 침대 아래에 늘어뜨려놓은 줄 전구를 켜고 칵테일을 말았다. 렌지장을 겸한 식탁도 있었다. 상판 한쪽은 공간박스 위에, 남은 한쪽은 다리 하나에 의지한 그 식탁은 평소에는 벽에 붙어 있다가 밥을 먹을 때면 90도 회전해서 훌륭한 아일랜드 식탁이 되었다. 음식을 엎을까 봐 조심조심 다뤄야 해서 스릴이 넘쳤다. 밥도 해 먹고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해서 온갖 게 다 있는 만물상 같은 집이었다.


 원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 되었고 룸메는 시험 막바지였다. 집도 좁은데 신경이 머리 끝까지 예민해져서 거의 싸울 뻔했다. 나중에 그 시절을 얘기하니 룸메는 내가 그렇게 예민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이 친구가 무던해서 다행한 일이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더 이상 학교 앞에 살 이유가 없었다.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다가 아주 저렴한 가격의 1.5룸 월세집을 발견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그 집을 처음 보자마자 반했다. 이전 세입자가 엉망으로 써서 지저분했지만, 쓸고 닦으면 우리에게 완벽한 보금자리가 될 모습이 보였다. 4평 원룸에서 살다가 10평짜리 집을 보니 대궐이 따로 없었다. 얼마 후 용달을 불러 이사했다. 원룸에 처음 입성할 때 박스 10개였던 살림은 박스 40개 분량으로 불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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