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위니캇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해는 프로이트의 견해와도 다른 제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를 들어 프로이트는 ‘남성 리비도 일원론’을 제시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위니캇은 여성적 요소를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것 같고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프로이트는 ‘남성 리비도 일원론’을 주장하면서, 유아기 때는 남자나 여자나 공히 남성적 리비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관심의 초점은 여자가 남성적 리비도를 가지고 태어나서 어떤 식으로 여자가 되어 가는가에 대해 맞춰졌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남성적 리비도에서 어떻게 여성성이 분화되어 나오는가? 또는 여자란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집중했죠. 말하자면 프로이트는 사람은 공히 남성적 리비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여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 되어가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저서를 보면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여성의 ‘히스테리’ 증상입니다. 말하자면 프로이트는 여성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나온 남성적 리비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바로 히스테리 증상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는 것이 나의 해석입니다.
탐구자 : 위니캇은 많은 부분 프로이트의 입장을 계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아 초기에 발현되는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에 대해서만큼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다른 독특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군요.
분석가 : 그런 셈이죠. 아기는 - 남아든 여아든 - 초기에 어머니와의 융합 관계에서 순수한 ‘여성적 요소’를 받아 존재의 바탕으로 삼습니다. 사람이 하나의 존재로서 인생을 출발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여성적 요소’입니다. ‘여성적 요소’란 존재(being, 있음) 그 자체로서 인간 본성에 해당되는 요소입니다.
본능과 원형을 연결해서 말하자면, 여성적 요소인 존재는 ‘있음’이기에 ‘원형’과 연결된다면, 남성적 요소는 ‘행함 doing’이기에 ‘본능’과 관계됩니다. 아기가 한 인간으로서 존재임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적 요소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어머니와의 융합의 상태를 경험함으로써 어머니의 존재를 내 안으로 들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과 동류로서의 유사성을 확보하게 되고 하나의 개체적 인간으로서 고유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물론 다른 양육자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어머니가 최적의 관계 조건임)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탐구자 : 지금 말씀하시는 아기와 어머니와의 융합관계는 바로 '절대적 의존기’에 해당되는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절대적 의존 기간 중에는 아기에게는 본능 욕동의 요소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니캇에 의하면, 본능 욕동은 바로 남성적 요소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절대적 의존기가 지나서부터 들어오는 겁니다. 즉 생후 1년이 지나야 남성적 요소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절대적 의존기 동안에는 유아가 수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자신의 ‘존재(being, 있음)’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아기는 어머니와 융합상태에 머물면서 어머니의 존재를 마치 자기 존재인 것처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유아는 어머니와의 융합관계를 경험함으로써 동일성(I am)을 확보하게 되고, 그 이후에 융합이 아닌 동일시를 하는 방법으로 타자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런 후에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되고 세상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탐구자 : 남성적 요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까요?
철학자 : 여성적 요소의 대상관계가 존재 간 ‘융합’을 전제로 한다면, 남성적 요소의 대상관계는 ‘분리’를 전제로 합니다. 어머니가 아기의 존재 안에 들어갈 때 분명히 타자로서 들어가지만 아기는 어머니라는 타자를 받아들이면서 타자성을 포함한 자기 동일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때 아기는 존재로서 하나의 단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탐구자 : 만일 유아초기에 어머니라는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철학자 : 그 상태에서는 아이가 존재의 ‘자체성’ 상태에 머무르게 되면서 자기 동일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 동일성을 위한 존재 단위, 즉 개체로서의 존재단위를 가지지 못하는 겁니다.
분석가 : 그런 상태에 머물게 되면, 여러 가지 현상을 예상할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의 극단적인 상태, 즉 정신분열 상태나 자폐 상태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두 상태의 공통점은 자기 동일성을 획득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또한 우주적 존재 상태에서 지구적 존재로의 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체성(idem)의 상태라는 것은 전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이죠. 그런 증후군에 사로잡힌 사람은 개인의 존재 차원을 넘어서서 우주적 존재로 초월적 상태로 머물러 버릴 수 있습니다.
탐구자 : 우주적 존재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곧 지구적 존재로서, 그리고 개별적 존재로서 단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위니캇에게 있어 남성적 요소라는 것은 ‘분리’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타자성의 개입이 본격화되는 것입니다. 위니캇은 이 시점을 절대적 의존기에서 상대적 의존기로 넘어가는 지점으로 잡고 있는데, 그때가 바로 자아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그래서 아기는 대상에게 ‘나 아닌 분리된 존재’의 성질을 부여하게 되고, 좌절에 따르는 분노를 포함한 본능(id)의 만족을 경험하게 되죠.
탐구자 : 그렇다면 여성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절대적 의존기의 본능과 상대적 의존기의 본능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분석가 : 절대적 의존기의 본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들이죠. 젖을 빠는 행위나 우는 행위, 또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행위 등 같은 본능적 행위에는 프로이트가 거론하는 성적 본능의 요소는 없습니다. 위니캇에 의하면, 남성적 요소가 들어오면서부터 성적 본능이 들어오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 외에도 공격성의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대상을 객관화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데, 그 능력이 나옴으로써 융합상태에 있던 어머니조차도 대상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적 본능은 만족을 가져올 수 없게 되어 억압을 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지만, 공격성은 충분히 발휘되지 않을 때 좌절이 오게 됩니다. 이 좌절은 분노의 형태로 변형되는데, 그 분노는 대상과의 질적 관계에 결핍이 발생할 때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탐구자 : 아기가 여성적 요소를 받아들일 때(절대적 의존기)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는 권력구조의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첫 1년 동안 아기가 얼마나 건강한가, 그리고 향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간이죠. 권력관계로 보자면 어머니는 갑이 되고 아기는 을이 되죠. 그러나 정상적인 모성성을 가진 어머니는 아기와의 관계를 권력관계로 설정하는 대신, 오히려 아기를 그 집안의 주인공 대접을 해주면서 따뜻한 품을 제공하고 그 아기의 약함에 대해 공감해 주기 때문에 아기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여성적 요소의 핵심은 바로 공감적 능력입니다.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융합관계는 상대적 의존기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의 남성적 요소가 들어오면서 존재 분리를 일으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