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가 그리고 지은 그림책 [위를 봐요]다. 표지 그림을 보면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해 있다. 제목은 한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디자인되어 있다. 인물선과 머리의 검은색 외에 나머지는 모두 흰색이다. 본문 그림도 대부분 이렇다. 검정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서 이야기를 더욱 뚜렷하게 전달한다.
표지(앞, 뒤)
면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빈 보도블록과 그 갓길에 심어진 가로수가 보인다. 표지와 면지는 보는 이의 시선이 같다.
면지(앞)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가족 여행 중이었어. ……사고가 났지. ……수지는 다리를 잃었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글에는 다섯 컷의 작은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장은 시선이 다시 표지와 면지와 같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 길에서 “쾅!” 소리가 보인다.
다음 펼침면 페이지부터는 오른쪽 페이지 절반에 휠체어를 탄 아이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이고, 보도블록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풍경만 바뀐다. 거리를 구경하는 아이의 이름은 수지이다.
수지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매일 구경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 행렬을 구경하기도 한다. 수지는 매일 이렇게 난간에 매달려 세상을 구경하는 아이다. 한창 움직이고 싶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수지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는 어린 시절 큰 사고를 겪어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수지의 마음에 더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런 시선의 그림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본문 전체 샷(shot)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수지는 조금씩 기대를 하게 된다. 아무라도 좋으니 누가 위를 좀 봐주면 좋겠다는 기대.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여기까지 읽으면서 나는 새 한 마리가 날아오면 좋겠다. 아니면 풍선 하나가 날아와도 좋을 것 같고, 민들레 홀씨도 좋겠다. 하지만 몇 번을 읽은 뒤 수지가 새나 풍선이 아닌 ‘누군가’를 원하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글의 후반부에는 그녀의 간절함에 기적처럼 한 소년이 위를 보게 된다. 수지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어떤 계기로 그 소년이 위를 보게 되었는지는 알려주고 있지 않다. 둘은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래로 내려와서 보면 되잖아.]
[다리가 아파서 못 내려가.]
[거기서 보면 제대로 안 보일 텐데.]
[응, 머리 꼭대기만 보여.]
[그럼 이건 어때?]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증으로 재빨리 다음 장으로 넘기게 된다.
다음 장에는 소년이 보도블록 위에 누워 있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 조금 놀랐다. 보통 비슷한 그림책에서는 친구가 되어 소녀의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그다음 장에는 왜 그러고 있느냐고 아이에게 묻는 엄마가, 그리고 다음 장에서는 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이 수지를 위해 보도블록에 눕는다.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 같다.
길에 누워 있는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아이를 따라 누워주는 엄마가 참 대단하다, 그래도 아직은 이 세상이 살만 하구나, 저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나라면 어땠을까, 길바닥에 누운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고 지나갔을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소녀를 위해 누울 수 있었을까.
본문 전체 샷(shot)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화자는 중년 부인인데, 타는 듯이 더운 오후, 백화점을 가는 길에, 가로수 모퉁이에서 노숙자 한 분이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중년 부인은 그 사람이 더울까 걱정은 되었으나, 백화점에 빨리 가서 일을 봐야 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오는 길, 노숙자가 여전히 그 길에 그대로 있자, 중년 부인은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 길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노숙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꼬마 아이가 할머니와 지나가고 있었는데, 할머니에게 양산을 달라고 부탁하더니 할머니의 양산과 자신이 마시던 물을 노숙자 앞에 두었다. 할머니가 그럼 자신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꼬마 아이는 할머니에게는 양산이 많지 않으냐고, 괜찮다며 씩 웃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중년 부인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된다. 아이의 마음에 콧등이 찡했을 거고, 아이가 너무 아름답게 보였을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보다 못한 자신의 모습에 조금 속상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사려 깊은 마음과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남을 돕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심성이 선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용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은 그전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던 수지의 얼굴이 부분적으로 보이고, 수지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사실 나는 이런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그림 스타일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개인적인 스토리와 그림의 취향의 문제가 아닌 큰 울림을 주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소년이 아니었으면 누가 다리가 아픈 소녀를 위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이다운 발상을 하고 소녀에게 기쁨을 준 소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전에 부산 초등학교 달리기 시합에 관한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그날 달리기 시합에서 한 명이 넘어지자, 맨 앞에서 달리던 학생이 넘어진 아이에게 돌아가고, 그 아이를 부축하며 결승점으로 돌아온 일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과 박수를 보냈고, 그 영상이 찍혀서 뉴스까지 타게 되었다. 그날 달리기 결승선에 들어온 학생 5명은 모두 1등 도장을 받았다고 한다.
이날 같은 공간에서 이 사건을 직접 본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오랫동안 이 일을 기억할 거다.
달리기라는 경쟁 상황에서도 타인의 실패를 발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달리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아가서 함께 달릴 수 있는 용기와 판단이 우리가 교육에서 가지고 가야 할 진정한 덕목이라 생각된다.
본문 전체 샷(shot)
마지막 장면이다. 봄꽃이 활짝 핀 가로수길. 이제 베란다의 수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왼쪽 하단에 작은 화분 하나가 보인다. 그곳에는 씨앗 하나가 싹을 내고 있다. 수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수지가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기를 소망해 본다. 위를 보라는 수지의 메시지에 대답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내려오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우리에게 수지가 대답하여 좀 더 관계를 넓혀가기를 꿈꾼다.
다리가 불편해도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는 휠체어가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시각장애를 체험하는 보행교육을 통해서 나는 익숙한 환경에서도 바닥의 정보만을 가지고 제대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했다. 또한, 우리의 주변 환경이 모두 정안인에 맞춰졌다는 걸 깨달았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k design)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뜻으로, 제품이나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이나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휠체어를 탄 사람이 타고 내릴 수 있는 ‘저상 버스’나 손에 힘이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전동 칫솔’과 같은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집단과 개인에 대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윤리적인 측면까지 가지고 있다. 물론 디자인이 미적 측면이 강한 분야라서 일부 사람들은 윤리적인 목적이 강하게 부여되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이 나만이 아닌 조금 더 모두를 위한 삶이었으면 좋지 않을까. 더 많은 유니버설 디자인과 환경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서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