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아이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I 보림

by 곽영미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은 그림책 [고슴도치 아이]를 만나 보자. 처음 한국에 출판되었을 때와 달리 2019년 그림책은 표지갈이를 해서 선명한 녹색 계열로 바뀌었다. 전에 표지는 회색빛이어서 생동감이 덜 했는데, 새 표지는 그림이 바뀌면서 좀 더 생동감이 돈다.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강에서 아이와 엄마가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noname01.jpg 앞표지

제목 [고슴도치 아이]는 어떤 의미일지 상상이 되는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뜻이다. 부모 눈에는 자기 자식 아무리 못나도 예쁘다는 의미인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게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일까? 원제목인 ‘Jez’는 폴란드어로 ‘고슴도치’를 의미한다.

표제지에는 한 아이가 공을 들고 있는 장면이 제목과 함께 보이고, 다음 페이지에는 헌사가 들어가 있다. [피오트르에게, 엄마가]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첫 페이지를 펼치고 많은 글밥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그림책치고는 글밥이 아주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서사가 탄탄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펼침면 페이지와 두 번째 펼침면 페이지의 그림은 동일한데, 색이 다르다. 첫 페이지에 들어간 색들이 빠져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본문 첫 번째 펼침면과 두 번째 펼침면

결혼해서 자신들만의 집을 오랫동안 지은 부부는 소중한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가 오지 않자, 부부는 슬픔에 잠긴다. 그러자 부부의 집과 정원의 모든 것들이 제 빛을 잃고, 잿빛으로 바뀌고 만다. 부부는 자신들이 낳지는 않았지만 어딘가에 있을 아이를 찾아 나선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할머니’를 찾아간 부부는 아이를 찾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몇 가지 질문을 한다. 할머니는 부부에게 왜 아이를 바라는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희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고 보살필 대상이 필요하거든요.]

[사랑, 진심, 그리고 자유를 주겠어요.]

[……아기에겐 하루라도 빨리 아빠 엄마가 있어야 해요!]

부부의 진심을 확인한 할머니는 아이가 있다는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을 알려준다.

어린이집에 도착한 부부는 그곳의 여왕님에게서 자신들의 아이로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잔뜩 돋아나 있는 사내아이를 만나게 된다. 부부는 자신들의 아가가 고슴도치 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아이를 보자마자 손을 내민다. 곧 아이가 손을 잡자 부부는 이 손을 다시는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문 펼침면

고슴도치 아이를 입양한 부부는 아이에게 ‘피오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정성껏 아이를 돌본다. 그들의 부모 역시 아이를 보는 순간 자신의 손자라고 여기며 사랑을 준다. 하지만 고슴도치 아이가 적응하고, 부부가 사랑을 주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아이를 안을수록 아이의 가시 때문에 부모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부는 용기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를 사랑하며 보살핀다.

3월이 되자 엄마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아이에게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자 고슴도치 아이 몸에서 가시 몇 개가 떨어져 나간다.


다음 장면에서부터 봄-여름-가을-겨울로 네 개의 계절 장면이 펼침면으로 펼쳐진다. 봄이 되자 잿빛이었던 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색들이 살아난다. 그리고 계절마다 부모의 사랑이 계속적으로 주어질 때 아이의 몸에서 가시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가시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들이 탄탄한 서사와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그림이 함께해서 정말 감동적이다.

이제 결말에 다다랐다. 다시 봄이 온다. 피오르트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 엄마가 나를 낳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단다. ……정말 고맙게도 엄마 대신 다른 엄마가 너를 낳아 주셨단다. 덕분에 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아가야,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그날 밤, 피오르트는 한밤중에 엄마를 부르며 잠에서 깬다. 그리고 그날, 가시는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진다. 왜 가시가 하나도 남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피오르트가 진정 엄마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장면 그림은 피오르트가 가시가 떨어져 나가는 앞의 그림과 달리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작은 새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새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왜 새의 이미지를 넣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피오르트가 온전히 엄마를 받아들이고, 가족을 받아들이자 새로 변한 것이다.

본문 펼침면

마지막 장면은 이제 작은 새에서 날아오르는 기러기의 모습이 보인다. 기러기로 변한 아이는 다른 무리를 쫓아서 하늘 위로 날아간다.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새, 그리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응원하는 엄마의 목소리.

[아들아, 멀리, 더 말리 날아가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네가 어느새 씩씩하게 자라서 멀리 떠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야.]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모습에 용기를 보내고 그런 아이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아이의 성장을 즐거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졌다. 이 부분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부모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을 떠날지라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봐야 한다는 부모의 더 큰 사랑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본문 펼침면

실제 이 작품은 작가가 아들을 입양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선지 절절한 부모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나 있다. 또한 버려진 아이의 상처를 고슴도치의 가시로 상징화한 판타지 요소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할머니’과 ‘여왕’ 등의 상징적인 인물들을 활용하여 더욱 효과를 높인다.



[티모시 그린의 이상한 삶]이란 영화가 있다. 아이를 너무 갖고 싶지만 불임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던 한 부부에게 한 아이가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불임으로 인해 부부는 자신들의 아이가 어떤 아이였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적은 메모를 나무 상자에 묻고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데 그날 밤, 온몸에 흙으로 뒤덮인 소년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은 초보 부모가 겪는 다양한 실패의 경험과 아이로 인한 다양한 기쁨을 경험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아이가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종아리에 매달린 나뭇잎이 모두 사라지는 날, 아이도 함께 사라진다. 부부는 그제야 자신들이 적은 희망사항이 이뤄질 때마다 티모시의 나뭇잎이 떨어진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원하는 아이를 만들고 싶었던 부모는 뒤늦게서야 아이를 진정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파묻었던 나무 상자 안에 든 티모시의 편지를 발견한다. 뒤늦게야 좋은 부모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며 후회하는 그들에게 티모시는 편지에 그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좋은 부모였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부부가 새로운 아이를 입양하면서 끝난다. 어쩌면 티모시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부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가 아닌 아이 그대로를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왔는지 모르겠다. 생물학적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실수를 많이 하더라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다면 누구든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내라고 티모시가 말하는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Eozje6Fp9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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