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성호의 편지
라나 그리고 혜정
안녕 나의 책 메이트들!
두 번째 편지네요.
새벽에 눈이 떠져 낮과 밤에는 하지 못하는 놀이를 하고 있어요.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싶은 그런 한심한 일들이요.
일단 배달 어플을 켜고 ‘와 이 시간에 이런 것도 배달해 준다고?’ 하며 놀라요. 그리고 다이어트 중이라 요즘 통 먹지 못했던 떡볶이를 카트에 담아요. 무려 우삼겹 떡볶이요. 거기에 김말이와 고추 튀김도 추가해 봅니다. 주문은 하지 않아요.
그런 후에 헤어진 남자의 인스타에 들어가 그놈의 주말을 확인해요. ‘시시하고 쩨쩨하군’ 하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려고 나를 찼나 하고 짜증이 나니까 계정을 차단해요. 나는 얼마 안 가 궁금해 또 설정에 들어가 차단을 풀겠죠. 나는 더 시시한 인간이니까요.
예전에 사놓고 작아서 못 입었던 옷들이 갑자기 생각나서 입어봐요. 단추가 간신히 잠기네요. 다이어트로 뱃살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릴스에서 보던 예쁜이들처럼은 안 될 거 같아요.
인스타에서 누가 부르던 노래를 검색해서 들어봐요. 빌리 조엘의 ‘To make you feel my love’ 이예요. 어디서 들어봤다 했어요. 멜로디는 느긋한데 가사는 아주 달콤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싶어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이 길었죠. 저는 이렇게 수다스러워요.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해요. 우리 셋의 공통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은 두 사람과 < 데미안 >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우리가 다 같이 읽고 책 모임으로 이야기도 나누었던 책이죠. 실은 그때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기억이 안 나는 걸까요?
다시 책을 펼쳐 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10장쯤 읽었을까?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난 시점부터 나오는 몇 문장에 오래 머물렀어요. 어린 싱클레어는 동네 불량한(?) 아이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면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도둑질 이야기를 지어내 친구들 앞에서 떠벌려요. 나도 너희처럼 꽤나 불량한 데다 이런 짓쯤은 아무 일도 아니야 라고 으스대고 싶었던 걸까요.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듣고 난 크로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죠. 그리곤 협박을 하기 시작해요. 네가 훔친 그 사과의 주인이 도둑을 찾고 있어, 내가 도둑을 알려준다면 과수원 주인에게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요. 네가 그 돈을 가져다준다면 아무 말 않겠다고 하며 돈을 요구해요.
혜정 언니라면 언니의 아이들에게 이입해 아이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부모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죠? 언니의 표정이 상상이 가네요. (^^웃음)
그때부터 싱클레어는 지옥을 맛봅니다.
"내 죄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왜 함께 갔을까? 왜 크로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을까? 아버지 말씀도 그렇게 고분고분 따른 적이 없는데, 왜 그 도둑질한 이야기를 꾸며 냈을까? 왜 영웅담이라도 되는 양 범죄 이야기를 으스대며 떠벌렸을까? 이제 악마가 내 손을 잡았고, 이제 적이 내 뒤를 쫓아왔다."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지 하고 마음먹던 싱클레어는 다시 이렇게 말해요.
"나는 이제 내게 비밀이 생겼으니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대장부인 척 영웅인 척했으니 이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 바로 이거예요. 크로머를 만나면서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디딘 거죠. 그리고 내 삶에 있어 전적으로 부모에게 책임이 있는 시기를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킬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하는 죄를 짓는 순간이요.
분명 데미안이 출간될 때 즈음의 한국 소설이었다면 자신의 정직하지 못함을 깨닫고 부모에게 참회한 후에 하늘을 한 점 부끄럼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채 끝났을 거예요.
헤세는 독일인이고, 방황과 고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데미안)을 만나 성장하게 되는 지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요.
제 영혼은 어쩜 유럽산일까요? 내 마음을 부끄럽게 하는 소설보다는 죄를 짓고 괴로워하다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자기의 삶을 망가뜨리더라도 자신의 욕망에 휩쓸려 가는 류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살면서 수많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요. 내가 프란츠 크로머가 되기도 하면서.
내 안에 사는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존재 말이에요.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가 내 젖은 신발을 나무라신 게 다행이다 싶었다. (중략) 그와 동시에 야릇하게 새로운 감정, 갈고리로 콕콕 쑤시는 듯한 사악하고 날카로운 감정이 내 안에서 번득였다. 내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졌다! 한순간,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르는 게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젖은 장화를 나무라는 아버지의 꾸중이 하찮게 여겨졌다.”
헤세는 어떻게 한 거죠? 이런 문장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다니요!
“그것은 아버지의 존엄성을 가른 최초의 균열이었으며, 내 어린 시절을 떠받치던 기둥들,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들을 가른 최초의 칼자국이었다.”
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자면 아주 지지리 궁상인데.. 내 부모의 존엄성은 가난 덕분에 일찌감치 갈기갈기 찢겼고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너뜨려야 하는 기둥들은 스스로 허물어져 버렸어요. 그 덕에 저는 몇 살 때부터인지 모르게 아주 작은 일부터 결혼처럼 아주 중대한 일까지 아무하고도 상의를 안 하고 독단(?)으로 처리해 버리는 데 익숙했죠.
언젠가부터 제 친구들에게는 제가 프란츠 크로머였을 거예요.
그렇게 저는 어른이 됐어요.
어른이 됐는데 왜 아직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죄는 괴로운 걸까요? 프란츠 크로머는 싱클레어 앞에서는 어른인 양 굴었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가난한 데다 때리는 아버지에게 맞고 웅크려 우는 어린아이였을 거예요.
태연한 척 굴지만 내 속의 어린아이는 아직도 엉엉 울어요. 외롭고요.
아마 프란츠 크로머도 그런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았을까요?
저는 늘 이런 식이에요. 본문에 집중하지 않고 딴 길로 새는 쪽이요.
그게 늘 더 재밌다는 게 문제예요. 여행할 때도 계획을 전혀 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벌어지는 일들에 재미를 느껴요.
큰 문제는 삶도 그런 식으로 처리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네요. 자세한 저의 이야기는 다음 편지들에서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볼게요.
데미안이 성장소설이고 청소년들에게 권한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그건 말도 안 돼요. 청소년이 이 문장과 의미들을 어떻게 이해한다는 거죠? 나도 어려운 데 말이죠.
나의 단상은 여기저기로 튀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읽고 이해하는 몫은 두 메이트에게 돌릴게요 ㅋㅋ
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아침.
그대들의 프란츠 크로머 성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