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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경 Sep 20. 2024

도타운 질문들

 내 글의 제목이 <기나긴 대답>인 이유는 인생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손쉽게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언제나, 매일, 매 시간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사랑할 것이며, 무엇을 바랄 것인지. 한 번 대답했다고 해서 끝나는 질문이 아니며, 적당한 답안지가 있는 질문 또한 아니다. 나는 매 순간 질문들에 응하며 살아간다.


 과거의 한 때,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고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 씻고 출근길에 올랐다. 전철은 나와 같은 무표정의 사람들을 우르르 싣고 달리며, 우르르 내뱉어 냈다. 책상에 앉아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 빠르게 훑어내고 한숨을 푹 쉰다. 해야 할 일 중 하고 싶은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꾸역꾸역 메일을 쓰고, 도면을 검토하고, 업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쥔 손에 땀이 고이기 시작한다. 곤란한 일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옆 자리 동료의 고약한 농담에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고역 같은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알알이 흩어지는 수은처럼 내 몸 여기저기가 화장실에, 침대에, 식탁 위에 조각조각 난 채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몇 달간 책은 한 줄도 읽지 못했다. 마음속에 다른 것을 받아들일 아무런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월급은 아니며, 더는 이 삶에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이 대답은 너무나 확고해서 더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퇴사를 하고 나니 그다음 질문이 내게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고 싶냐'라고. 잘 모른다.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모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간. 유의미한 어떤 것도 찾지 못한 채 무의미의 바다에 빠지게 된 시간. 깊은 해저 바닥에 단단히 파묻힌 채 흘러가는 물을, 사람들을, 하루들을 초점 잃은 눈으로 응시하던 시간.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막막하고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한가닥 희망을 잡기 전까지 말이다.


 끝까지 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또 첫 번째 대답을 해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주로 정답을 골몰하지만, 때로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번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묻고 그 대답을 고민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고난을 어떻게 도피할 것인지 물었다면 아마 더 무의미한 늪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분명히 살고 싶은, 이루고 싶은 어떤 모습이 있었으리라. 나의 질문을 떠올리며 대답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수영을 다녔다. 건강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런 생각도 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명확한 대답이 될 수는 없지만, 대답의 근간이 될 수 있다. 단단하게 대지를 닦아 두어야만 건물을 높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행복의 필수 조건은 해야 할 것이 있고, 사랑할 것이 있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상태다.

- 조지 워싱턴 버냅


 위 세 가지 행복의 필수 조건은 내가 평생에 걸쳐 삶으로 대답해야 할 질문들 같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인생의 시기마다 조금씩 변화하고 또 축적되어 갈 것이다. 내가 작은 상점을 할 때 해야 할 일과 간절히 바라는 것과 지금 남편과 공예 브랜드를 이끌며 해야 할 일, 목표로 하는 것들이 달라진 것처럼. 


 지금 우리는 단련의 시기라 생각한다. 남편은 공예 기술을 단련하고 나는 우리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필로소피를 형성하기 위해 단련한다. 우리의 목표라면, '일'을 사랑하며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이 결코 남에게, 세상에게 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나아가 이로울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도록 각자 매 순간 다짐한다. 삶에 있어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만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질문하고 대답한다. 


잘 살고 있니? 네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니? 사랑하는 것과 함께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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