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였다. 고기 소비를 좀처럼 하지 않는 우리는 주로 미역만 넣고 끓이거나 들깨를 넣고 미역국을 끓인다. 고기 없이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 나는 미역을 가능한 오래 볶는다. 들기름과 간장을 넣고 타이머를 십분 정도 맞춰놓고 계속해서 저어준다. 계속 계속 볶으면 맛있는 마법의 수프라도 될 것처럼 타이머가 끝나도 좀 더, 좀 더 볶는다. 물을 넣고 20분씩 타이머를 맞춰두고는 중불에서 뭉근하게 끓여준다. 그러면 다른 재료 없이도 구수하고 진한 미역국을 완성할 수 있다.
나의 요리는 대개가 이런 식이다. 별 것 없는 재료라도 시간을 들이고, 찬찬히 한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이라도 외우듯 냄비 앞에 서서 되도록 길게 요리한다. 애호박을 구울 때도, 가지를 조릴 때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중불에서 오래오래 시간을 가진다. 정성을 들이면 무슨 요리든 맛이 깊어진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가능한 오래 바라보면서 빛이 피사체의 어느 곳을 비추는지, 그림자가 어느 방향에서 더 깊이를 더해주는지 생각한다. 사각진 화면 속 피사체를 바라보다 보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마음에 오래 남는 사진은 항상 이런 식으로 찍힌다.
글을 쓸 땐 깜빡이는 커서를 아주 오랜 시간 바라본다. 빈 화면 속에서 마치 글이 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속 생각을 흘러가는 대로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쓰인 글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나만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글에서 더할 곳과 뺄 곳을 찾아내며 여러 번 읽어내려간다. 언제나 행동이나 글에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 빼야 할 글도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단어를 수정하고, 접속사를 뺀다. 내 글에는 유독 '나' '내' '나의' 이런 식의 자신을 주장하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되도록 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속독에 자신 있는 편이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는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는다. 단어의 의미가 모호할 때는 여전히 국어사전을 이용한다.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일순 긴장하게 된다.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여러 번 읽고도 모자란 마음이 든다. 그럴 땐 필사를 한다.
이런 느릿한 방식들은 효율도 떨어지고, 시간이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을 갖는다.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고 빠져나온다. 뭉근하다는 것은 '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하다'는 뜻이다. 삶 또한 활활 타오르고, 팔팔 끓어 넘치기보다 뭉근해지기를 바란다.